한 달 만에 마주한 영희의 모습은 살짝 야위어 있었지만, 그녀 특유의 맑은 안색은 얼굴 위에 화사하게 피어나 있었다. 약속 장소에 서서 환하게 손을 흔들던 그녀가 차에 올라타자, 좁은 차 안이 금세 환해졌다.
요가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만난 세 사람. 모처럼 운동복을 벗고 번개모임을 갖기로 했다. 요가를 시작한 시기도, 흐르는 나이테의 두께도 엇비슷한 우리였다. 무엇보다 마음을 쓰는 결이 닮아 있었고, 깊은 신앙심이라는 공통의 토양이 바탕에 깔려 있어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매트 위에서 나란히 호흡을 고르고 몸을 늘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자잘한 개인사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영희는 딸의 둘째 아이 산후조리를 돕느라 한 달 남짓 자리를 비웠다가 오랜만에 함께 한 참이었다.
차를 달려 도심 외곽의 코다리찜집으로 향했다. 주차하고 내려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온전히 마주 보았을 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럴 수가. 셋 모두 옅은 하늘색 체크 남방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마치 미리 드레스 코드를 짜고 나온 것처럼 완벽한 일치였다.
전날 밤, 단톡방에 영희가 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고, 마침 모두의 시간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져 두말없이 성사된 만남이었다. 그 신비로운 우연이 못내 기쁘고 간지러워 서로를 바라보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나가던 행인 한 분이 우리의 다정한 결을 보며 "너무 예쁘다." 하며 선뜻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각의 프레임 속에 담긴 우리의 닮은꼴 모습을 보며, 우리는 또다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때 영희가 수줍게 봉투를 내밀었다. 단호박 두 개씩이 담긴 묵직한 봉투 두 개. 순간 우리의 눈길이 허공에서 반짝 부딪혔다. 제주도에서 택배로 주문해 먹어보았는데, 맛이 너무 좋아 우리 생각이 났노라 했다. 그리 많지도 않은 것을 일부러 챙겨와 나누려는 그 넉넉한 마음에 나와 또 다른 친구의 가슴이 알싸하게 뭉클해졌다.
나 역시 옥상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제라늄 모종을 포트에 담아 포장해서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은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맺힌 모양새가 꼭 부푼 내 마음 같아 뿌듯했다. 화분을 받아 든 그녀들의 입꼬리가 또 활짝 포개어졌다.
매콤한 밥을 먹었는지, 달콤한 수다를 먹었는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숲길을 걷기로 뜻을 모았다. 몸을 움직이던 이들이라 그런지 매사에 역동적이고 주저함이 없다. 태조산 데크 산책로를 걸으며 오랜만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초록을 만끽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 이튿날이었다. 누군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커다란 애호박 하나를 두고 갔다. 아기 머리만 한 호박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포장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웃에 사는 요가 친구 경애였다. 그녀 역시 자신의 옥상 텃밭에서 정성껏 키운 귀한 첫 수확을 나눈 것이었다.
"혹시 속이 너무 익어 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메시지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쑥스러운 고백이 정겨웠다.
당장 저녁 반찬으로 삼을 요량으로 칼을 대어 숭덩숭덩 썰어보았다. 염려와 달리 씨는 흐릿했고, 연노란 속살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새우젓을 조금 넣고 마늘과 들기름을 둘러 살짝 볶다가, 약한 불에 뭉근하게 푹 익혀내었다. 애호박볶음을 유달리 좋아하는 남편이 젓가락을 움직이더니 한마디 보탠다.
"음, 속이 아주 부드럽고 달달하네. 마트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게 애호박 특유의 깊은 풍미가 살아있어."
주방 창가에는 아직 볕을 더 쬐어 숙성을 기다리는 단호박 두 개가 둥근 몸을 맞댄 채 빙긋이 웃고 있다.
얼굴은 세련된 도시 여인의 모습을 하고, 마음은 시골 장독대처럼 구수하고 넉넉한 그녀들. 겉모습은 날렵하고 냉정해 보여도, 호박처럼 둥글고 푸근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 새삼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름날의 풋풋한 저녁 식탁 풍경이다.
글 김순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낯설고도 친밀한》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