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아르티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
천안시청소년교향악단 음악감독
월간리뷰 편집위원 및 음악평론가
오래된 음악은 왜 오늘도 우리 곁에 있는가?
우리는 음악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출근길에는 이어폰을 끼고, 잠들기 전에는 또 다른 음악을 찾는다.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취향을 분석해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까지 추천해 준다.
음악을 듣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수많은 음악이 눈앞에 펼쳐진다. 과거에는 공연장을 찾아가거나 음반을 구매해야 했던 음악이 이제는 우리의 주머니 속에 들어와 있다.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음악을 더 빨리 소비하게 된 것일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조금 지루하면 영상을 넘긴다. 음악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음악은 가까워졌지만, 음악에 머무르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에 수백 년 전의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참 묘하다.
바흐와 헨델,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와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오랜 시간을 지나 오늘도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녹음 기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의 연주자들이 다시 연주하고, 오늘의 관객들이 다시 듣고 있다.
왜일까?
클래식 음악이 단순히 오래된 음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랑과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별과 슬픔, 외로움과 불안, 분노와 갈등,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까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이 그 안에 있다.
수백 년 전의 사람이 느꼈던 슬픔과 오늘 내가 느끼는 슬픔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달라졌을까?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과 실패했을 때의 좌절은 오래전과 지금이 그렇게 다를까?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음악이 때로는 최신의 음악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어느 날 우연히 들은 클래식 음악 한 곡이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을 때가 있다.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작곡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마음이 잠시 멈춘다.
‘왜 이 음악이 지금 내 마음과 닮았을까?’
그 순간 음악은 더 이상 수백 년 전의 음악이 아니다.
바로 지금, 나만의 음악이 된다.
이것이 음악이 가진 놀라운 힘이다.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작곡가의 이름부터 낯설고, 작품 제목도 복잡하다.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같은 용어도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진다. 한 작품의 연주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도 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음악을 잘 아는 사람만 듣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이론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사를 먼저 공부하지도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은 이해한 다음 들어야 하는 음악이 아니라, 듣다 보면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음악이다.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던 음악이 어느 날 문득 좋아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교향곡의 한 악장이 어느 날은 이상할 만큼 마음에 와닿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같은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음악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쓸쓸하게 들리기도 하고, 젊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음악에서 어느 날 깊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음악이 변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변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악을 평생 여러 번 들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내가 듣는 음악과 10년 뒤의 내가 듣는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클래식 음악에는 그런 시간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몇 초 안에 재미가 있어야 하고, 지루하면 바로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무엇이든 빠르고 간편해야 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속도를 요구한다.
한 곡을 끝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 악장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던 선율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음악이 나에게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음악의 속도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호흡이 조금 느려지고, 생각이 잠잠해진다. 바쁘게 움직이던 마음이 잠시 멈춘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클래식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듣는 법을 다시 가르쳐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음악에만 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듣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는 시간은 부족하다.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다.
클래식 음악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클래식 음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같은 음악도 매번 다르게 살아난다는 데 있다.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이라도 어떤 지휘자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처럼 들릴 수 있다. 같은 협주곡도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온도가 달라진다.
악보는 같지만, 음악은 같지 않다.
왜 그럴까?
음악에는 연주자의 삶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악보에 적힌 음표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 기쁨과 슬픔, 음악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그 음악을 관객에게 건넨다.
관객 역시 자신의 삶을 가지고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같은 공연장에 앉아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사람마다 마음속에 남는 이야기는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된다.
이것이 클래식 음악이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음악은 악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은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오래된 유물이 아니다. 오늘의 연주자가 연주하고, 오늘의 관객이 듣는 순간 클래식 음악은 다시 현재가 된다.
물론 클래식 음악이 앞으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의 작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연주 방식도 필요하고, 다른 장르와의 만남도 필요하다.
국악과 클래식이 만나기도 하고, 재즈와 클래식이 서로의 언어를 나누기도 한다. 영화음악이나 대중음악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무대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클래식 음악의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이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다.
역사를 돌아보면 클래식 음악 역시 끊임없이 변해왔다.
바흐의 시대와 모차르트의 시대가 달랐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도 달랐다. 베토벤 이후에는 브람스와 차이콥스키, 드뷔시와 말러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클래식 음악은 처음부터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변화하면서 살아남은 음악이다.
따라서 21세기의 클래식 음악도 변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고, 젊은 세대와 만나야 한다. 공연장이라는 공간의 문턱도 조금 더 낮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이 음악을 한번 느껴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은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도 없다.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사람은 베토벤의 음악에서 힘을 얻고, 어떤 사람은 쇼팽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젊은 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수백 년 전 누군가가 쓴 음악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다. 새로운 음악, 새로운 영상,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정보.
하지만 새로운 것이 반드시 오래 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바로 그렇다.
한 번 들었을 때보다 두 번째 들었을 때 더 많은 것이 들리고,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 다시 들었을 때 더 많은 이야기가 들린다.
음악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음악을 통해 현재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수백 년 전의 작곡가가 남긴 선율이 오늘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시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에는 300년 전도, 200년 전도, 오늘도 없다.
오직 음악과 나만 남는다.
어쩌면 이것이 음악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음악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과거를 얼마나 완벽하게 보존하느냐에 있지 않다. 과거의 음악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살아 있는 음악으로 들려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 다음 세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클래식 음악을 높은 곳에 올려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편하게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도록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다.
퇴근길 지친 사람이 잠시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을 수 있고, 아이가 처음 오케스트라를 듣고 눈을 반짝일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한 곡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순간 클래식 음악은 살아 있는 음악이 된다.
수백 년 전의 음악이 오늘도 우리 곁에서 울리고 있다.
그것은 클래식 음악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좋은 음악은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음악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게 달려가고 있기에 잠시 멈출 음악이 필요하고,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기에 조용히 들을 음악이 필요하다. 서로의 목소리를 쉽게 판단하는 시대이기에 다른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음악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말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한 곡을 끝까지 들어보라고.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남는지 가만히 들어보라고.
오래된 음악이 오늘도 우리 곁에 있는 이유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시간은 흘러도 사람의 마음은 음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음악이 아니다.
오늘의 음악이고, 어쩌면 우리의 내일을 위한 음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