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기념사업회
이사골목상권 살리기 충남지부장
1987년, 민주주의와 경제의 전환점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 정치와 경제 모두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6월항쟁과 6·29선언을 거치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이후 선거와 헌법적 절차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부활했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한층 확대됐다.
경제적으로도 1987년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크게 개선됐고, 임금 상승은 가계의 구매력과 소비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수출 호조와 기업의 투자 확대, 산업구조 고도화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는 빠른 성장을 이어갔다. 그 결과 1인당 GDP는 1987년 약 3,500달러 수준에서 1994년 1만 달러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성장의 이면, 커지는 경제적 격차
이후 한국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성장의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바로 경제적 불평등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19 충격을 거치면서 빈부 격차와 자산 격차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모든 계층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더욱 분명해졌다.
성장의 숫자는 커졌지만 삶의 격차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늘어나면서 산업 내부에서도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제 경제성장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복지정책과 조세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보다 공정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된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경제민주화의 주체가 되자
경제민주화는 거창한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 역할을 지방정부가 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의 기업과 소상공인, 노동자,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조직 등 다양한 경제 주체와 직접 만나는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이다. 따라서 지역경제의 질서를 바꾸는 실질적인 정책도 지방정부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가 공공조달과 각종 관급 용역을 추진할 때 노동자의 경영 참여, 이익의 공정한 배분, 협동조합적 운영, 사회적 책임 등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기업에 일정한 가점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히 가격이 싼 기업을 선정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에 어떤 경제적 가치를 돌려주는 기업인가를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금융과 재정 지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과 보증, 기업지원 사업에서 노동자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갖춘 기업에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지역경제의 운영 방식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에서 성장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경제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요한 것은 특정 지역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현실에 맞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 부가 순환하는 경제를 만들자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선택적인 의제가 아니다.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지금 AI와 첨단산업, 대규모 개발사업과 도시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삶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투자 실패로 삶의 기반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회성 지원만이 아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경제의 구조가 필요하다.
한때 미국의 유머 작가 윌 로저스가 부유층 중심의 경제정책을 풍자하며 비판했던 ‘낙수효과’에만 기대어서는 더 이상 지역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위에서 아래로 부가 흘러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부가 순환하고 기회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경제가 아니라 사람이 경제의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지역사회 전체로 순환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경제민주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사람이 경제의 주인이 되는 지방정부
이제 지방정부가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실험에 나서야 한다.
거대한 개발과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의 뒤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역의 기업과 노동자, 소상공인과 시민이 함께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돈 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지방정부.
그런 지방정부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