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국이라는 간판보다 중요한 것
사회연대경제국이라는 간판보다 중요한 것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6.08.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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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본, 청년의 기회를 연결하라

 

박찬무 대표
사)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장
행복도시락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회적기업 즐거운밥상 대표

새로운 행정조직이 만들어지면 기대가 커진다. 국장이 생기고 과가 늘어나며 예산이 확대되면 지역의 문제도 해결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조직은 어디까지나 그릇일 뿐이다. 그릇이 크다고 음식의 맛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이다.

충남도가 사회연대경제국 신설을 추진하며 세 개 과를 두는 조직안을 마련했다. 최근 전병규 경제정책과장과 현장 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는 9월 초 도지사 주재 대토론회, 10월 연구용역 착수, 내년 7월 민선 9기 사회연대경제 청사진 제시 계획 등이 소개됐다.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조직과 일정이 마련됐다고 해서 정책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회연대경제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조직이 지역의 사람과 자본, 청년의 기회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이다.

먼저 정책 기능과 현장 지원 기능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정책 기획, 금융 지원, 공공구매, 민관 협력 등을 담당하는 기능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기능은 서로 달라야 한다.

한 부서가 인증과 공모, 신고, 보조금 정산까지 모두 담당한다면 국은 만들어졌지만 정책은 남지 않을 수 있다. 사업의 숫자는 늘어나도 지역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충남의 현장에는 지원이 줄어든 이후에도 자리를 지킨 활동가와 기업가들이 있다. 주민을 설득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을 판매하며, 실패와 갈등을 견뎌온 사람들이다. 그 경험과 노하우는 행정 예산만으로 살 수 없는 지역의 자산이다.

행정은 민간에 한 번 의견을 묻고 계획서를 완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책의 기획 단계부터 실행과 평가 과정까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육성위원회와 실무협의회 역시 단순히 사업을 보고받는 자리가 아니라 중요한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민관 협력의 장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공기업과 대기업을 지역 사회연대경제와 연결하는 일이다.

충남에는 발전 공기업을 비롯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 기반이 있다. 이들 기업은 ESG 경영과 지역사회 기여를 요구받고 있지만, 사회공헌 활동이 여전히 기부나 일회성 지원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사회연대경제와 결합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대기업은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기술과 품질 향상을 지원할 수 있다. 공기업은 주민 에너지협동조합이나 지역 기반 에너지 사업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 대학과 기업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 창업팀을 육성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다. 지역에 일자리와 관계, 문제 해결 능력을 남기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협력이다.

세 번째는 청년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일이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애향심 부족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주거, 문화, 성장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지역에 남으라고 설득하기 전에 남아도 괜찮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청년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지역에서 발견한 문제를 사업으로 해결하며 스스로 직업과 기업을 만드는 길이다.

빈집을 활용한 청년 주거와 워케이션 공간 조성, 고령층 돌봄 서비스, 지역 농산물 가공, 문화관광, 자원순환, 재생에너지 등 지역의 필요를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다만 청년에게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게 하고 창업지원금을 지급한 뒤 성과를 요구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경험 있는 선배 기업과 연결하고, 대학의 기술과 공간을 활용하게 하며, 공공기관이 첫 구매자가 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 청년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기업 몇 개가 늘었는지만으로 사회연대경제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역에 남은 청년이 얼마나 늘었는지, 취약계층의 소득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돌봄 공백이 얼마나 줄었는지, 지역에서 생산된 돈이 얼마나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좋은 일을 하는 작은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다. 지역의 사람과 자원, 자본을 연결해 지역 스스로 살아갈 힘을 만드는 경제정책이다.

충남은 전국 최초 수준의 사회적경제 관련 제도를 만들며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경험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새로운 조직과 정책 환경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시점이다.

천안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장기수 천안시장은 사회연대경제 특구 조성을 공약했고, 8월 중순 사회연대경제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공약이 행정 계획으로 이어지고, 현장의 경험이 정책에 담긴다면 천안은 충남 사회연대경제를 이끄는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씨앗과 흙, 햇볕은 이미 준비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간판을 세우고 변화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행정과 민간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가꾸는 일이다.

충남과 천안의 사회연대경제가 다시 꽃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과 현장을 연결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