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목) 오후 4시에는 복구정 읽기모임의 『(도올) 동경대전 2』 첫 진도가 나가는 공부시간이 있었다. 범위는 별로 크지 않았다. 11쪽부터 16쪽까지였다. 주된 내용은 본격적으로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예비적인 안내 정도 된다. <동경대전(東經大全)>의 이름풀이가 있었고, 도올선생이 책 속 강의의 저본으로 삼고 있는 텍스트의 판본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이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동경대전>의 “동(東)”이 과연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동경東經”이라 할 때의 “동東”은 단순히 “동학”의 의미로만 새겨지지는 않는다. “동”이란 본시 “해동”을 의미하며, 조선의 문화전통 전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동경東經”은 단순히 “동학의 경전”이라는 뜻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나라 조선의 땅에서 태어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의 경전”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모든 서양의 바이블이나 고전이 “서경西經”이라고 한다면 이 동학의 경전이야말로 우리민족 고유의 “동경東經”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동경東經”을 “우리민족의 바이블”이라 칭하는 소이연이 있는 것이다.
== 김용옥(2021), 『동경대전 2』(통나무), 12쪽.
도올선생이 <동경대전>의 “동(東)”이 “동학”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래의 별칭인 “해동”의 그것이라 언급하는 부분은 나로서는 정말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결국 <동경대전>이 동학도인들만이 동학교단 내부적으로 읽어가는 폐쇄적인 경전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누구나 어디서든 읽어갈 수 있는 개방적인 경전이라는 뜻으로 더 넓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읽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더욱 확대될 수 있는 해석도 낳게 된다. 한국어는 한국사람들이 쓰는 언어이지만 외국사람도 얼마든지 배우기만 하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개방적 언어인 것이다. 이런 언어의 습득과 활용에 관한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한편 <동경대전>이라는 경전의 이름 속에 “동”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바깥의 어떤 생각들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직접 체험해서 만들어낸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온 중국인들의 생각들과는 다른 생각들이라는 점, 더욱이 근대시기에 이르러 새로운 격변을 몰고 오게 된 서양인들의 생각들과도 다른 생각들이라는 점이 “동”이라는 글자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이 있다.
이 가운데 서양인들의 생각과는 다른 “동”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우선적으로 이 연재글의 첫 회에 언급했던 “서양문명의 이중성”에 관한 문제의식, 즉 겉으로는 하느님의 도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의 땅을 빼앗으려는 데 대한 깊은 우려와 특단의 대응방식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에서는 <동경대전>에서 지적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이중성”은 결코 당시 조선에서만 우려 섞인 예측으로 접하게 된 것이 아니라 18세기 북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실제로 겪은 사실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사적인 문제이기도 했다는 점을 적시해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의식을 간략하게나마 조금 더 넓게 살펴보았으면 한다.
“조선 천지에도 당신의 믿는 예수교회가 방방곡곡에 있지마는 하느님도 역시 정도령과 같이 허깨비가 아닌지요? 그러면 하느님이 언제 죄악세상을 구해본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복음이어요?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거짓말이니까요!”
== 이기영(1926), 「외교원과 전도부인」, 『서화』(1992, 풀빛), 113쪽.
위의 인용문은 천안 출신 작가인 민촌 이기영(1895~1984)의 1926년 단편소설 작품 「외교원과 전도부인」의 일부분이다. 이 작품 속에서 보험회사의 외판원(작품 속에서는 “외교원”)이 기독교 교인인 돈 많은 중년여성(작품 속에서는 “전도부인”)에게 “예수교회”의 “복음”에 대해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것”이라며 따져물으며 나오는 대화 속 발언이다. 기독교가 당시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보여주는 양태는 비록 전국 곳곳에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수용되어 정착하는 상황에 있기는 하지만 정작 기독교가 추구하는 종교적 가치들이 사회 속에 실현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언행불일치의 모습이 아니냐는 다소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언행불일치의 문제제기는 아니나 다를까 앞서 <동경대전>에서 제기했던 “서양문명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의식과 사실상 평행한 것이다.
민촌 이기영의 이 작품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동경대전>은 서양문물이 개항과 함께 본격적으로 국내로 들어오기 전의 우려와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의 소설작품은 이미 서양문물이 국내로 들어와 어지간히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그 우려와 불안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시대를 넘어서 보여주는 연속성이 매우 놀랍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혹시 민촌 이기영이 <동경대전>을 깊이 탐독했을까? 이런 문제의식의 연속성은 과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등등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길게 논의를 이어볼 필요가 있으니 여기서는 질문으로만 남겨두도록 한다.
위에서 간략하게 들여다보았듯이 <동경대전>과 민촌 이기영의 사이에는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반을 이어주는 서양문물 전래상황에서의 문제의식이 하나의 연속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것은 민촌 이기영의 작품 속에 표현되어있듯이 한데 아울러 “언행불일치 비판의식”이라고 명명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한편 이러한 “언행불일치 비판의식”이 서양문물이 부정적 영향을 끼치며 전파되는 비서양 지역에서만 발현됐는지 또다른 의문도 생기게 된다. 서양에서도 자신의 문명이 무조건 옳다기보다는 뭔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또다른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일단 내가 지금까지 좁은 독서량으로 겨우 찾아낸 두 가지 책이 있다. 그런 의문에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만한 시사점이 있다고 봤다. 그 두 책이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이다.
이중에 우선 『걸리버 여행기』의 한 대목을 들여다보자.
나는 육체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고 정신도 평온했다. 친구의 배신이나 변덕, 공개된 적이나 드러나지 않은 적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었다. 지체 높은 사람이나 그의 하인에게 호의를 얻자고 뇌물을 주거나, 아첨하거나, 뚜쟁이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몸을 망가뜨리는 의사도, 나를 파산하게 만드는 변호사도 없었다.
나의 언행을 지켜보거나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허위 사실로 나를 고소하는 정보원도 없었다. 여기엔 조롱하는 자, 비난하는 자, 험담하는 자, 소매치기, 노상강도, 침입 강도, 변호사, 포주, 어릿광대, 노름꾼, 정치인, 재주꾼, 성마른 자, 지루한 연설가, 논객, 강간범, 살인자, 강도, 거장인 체하는 사람도 없었다. 파당과 파벌의 지도자나 추종자도,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여 악덕을 권장하는 자도 없었다.
== 조너선 스위프트(1726), 『걸리버 여행기』(이종인 역, 2019, 현대지성), 338쪽.
위의 인용문은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인 걸리버가 여러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거의 마지막에 다다른 곳으로 인간처럼 이성(理性)을 갖춘 말[馬]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다스리는 이른바 “후이늠”의 나라에서 점차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는 그곳의 언어와 풍속을 익히고 거의 안정감을 가지며 생활하게 된 때에 자신의 조국 영국의 추악함을 회상하며 서술한 부분이다. 비록 환상적 풍자문학의 형식으로 구성된 허구의 작품이지만 18세기 영국의 부도덕한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여실히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걸리버는 그런 악덕들을 거의 무한하게 나열하는 가운데 제일 처음 언급하는 것이 “배신”과 “변덕”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바로 그것이 “언행불일치”의 폐해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악덕이 아니겠는가? 걸리버가 비판하며 서술하는 내용 중에 “언행불일치”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그의 서술은 “언행불일치”가 만연한 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백화점처럼 나열되는 것이다.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사람이다. 웬만하면 조국의 흠집을 가리려는 마음이 있는 애국자이겠지만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신랄하게 자기 나라의 문제점들을 통탄스럽게 하지만 여전히 풍자의 정신으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결코 서양에서도 자기 문명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증좌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의 한 대목을 옮겨와보자.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착취가 문명의 기초인 만큼, 문명의 발전은 끊임없는 모순 가운데서 진행된다. 생산에서의 온갖 진보는 동시에 피압박계급, 즉 대다수의 생활 처지가 낙후됨을 의미한다. 한쪽을 위한 온갖 선(善)은 필연적으로 다른쪽에게는 악(惡)이며, 한 계급을 위한 온갖 해방이 다른 계급에게는 새로운 억압이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지배계급은 사회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마치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은 전체 사회에도 좋은 것처럼 말한다. 그러므로 문명은 전진하면 할수록 자신이 생산한 부정적 죄악을 점점 더 사랑의 보자기에 싸서 미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만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이전의 사회형태에서는 물론 문명의 첫 단계에서조차 모르고 있던, 즉 관례로 된 위선을 부리지 않으면 안된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1884),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김대웅 역, 1987, 아침), 239~240쪽.
위의 인용문은 서양문명 내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지배계급이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고 이로 인해 “생활 처지가 낙후된” 피지배계급에게 “부정적 죄악”이 전가되면서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미화”하거나 “기만”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국 “언행불일치”의 한 극단으로 볼 수 있는 “위선”이 지배계급 차원에서 사실상 체제적인 특성으로 고착되어 이행된다는 것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보면 서양에서도 서양문명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사상이 자체적으로 구현되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내용을 가진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1884년도에 출간되었음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목천판 <동경대전>이 인쇄된 연도가 그보다 한 해 전인 1883년이기 때문이다. 사실 1883년은 그 책의 저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둘도 없는 학문적·정치적 동료인 카를 마르크스가 별세한 해이기도 하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의 서양에서도 “언행불일치” 문제를 문명체제의 계급적 지배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는 이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지금까지 이리저리 언급해놓은 이야기를 간략히 다시 정리해보자. <동경대전>의 “언행불일치 비판의식”은 이후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민촌 이기영과 같은 소설작가에 의해서 그 연속성을 드러내며, 비록 직접적 영향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나 그 문제의 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문명의 일단에서도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적 이론과 실천 속에 면면히 비슷한 문제의식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내용은 “언행불일치 비판의식”의 세계사적 맥락을 부분적으로나마 묘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1860년대의 수운 최제우 선생은 서양문명이 어떤 폐해를 몰고와서 조선땅을 휘몰아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예측의 한계 안에서 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언행불일치”가 핵심적인 서양문명의 도덕적 문제라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조선사람들의 대응책은 당연히 “언행일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언행일치”의 추구를 위해 문제삼아야 할 “언행불일치”의 부도덕한 모습들을 적시하는 것이 절실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로서는 우선적으로 <용담유사>의 한 부분에서 대책의 한 부분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성인들의 가르침은 이와 같다: “귀로써 음탕한 소리는 아예 듣지를 말라! 눈으로써 조잡한 경관을 아예 보지를 말라!” 이와 같이 하여 근원적으로 시비를 피하라! (...)
어질도다! 무극대도를 따르는 제군들이여! 이러한 훌륭한 성현들의 말씀을 본받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한 마음으로 지켜내면 도가 이루어지고 덕을 세울 수 있으리라. (...)
그러나 일단 동학에 뜻을 두었던 그 마음을 번복하게 된다면(※배신한다는 뜻) 그대는 천리를 거스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갖가지 물욕에 번갈아 물들게 되면 그대는 비루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의 가르침과 무관한 헛된 말로써 사람들을 유인하면 그대는 곧 혹세무민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면으로는 불량한 생각을 품으며 겉으로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꾸며대기만 하면 그대는 곧 하늘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짓거리들은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분간하기가 어렵다.
==김용옥(2022), 『용담유사』(통나무), 281~285쪽.
<용담유사>의 「도덕가」는 성현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듣지 못할 것, 보지 못할 것을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강하게 조언한다. 그러면서 동학에 뜻을 두고 배신하지 말 것, 물욕을 내지 말 것, 헛된 말을 하지 말 것, 속 다르고 겉 다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꼭 지키도록 당부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도덕적 약속들을 행하지 않으면 서양문명의 폐해와 같이 “언행불일치”를 스스로 자행하는 일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부도덕을 도덕으로 다시 극복하는 과제를 일러준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서양문명의 엄습으로 그 우려와 불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동경대전>이 적절한 방식으로 적시한 “언행불일치 비판의식”은 그 자체만으로는 서양문명을 물리쳐낼 만큼의 물리력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세에 휩쓸려 무비판적으로 서양문명의 폐해 속으로 스스로 빠져드는 몰지각한 행동은 힘들더라도 방비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부도덕을 도덕으로 치장하는 기만을 알아보는 방법은 늘상 경계하는 마음으로 “언행불일치”의 세태를 엄정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데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문제는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근대시기에 끝나서 해소된 것이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불거져있는 문제이고 어느 때라도 당장 사람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사태를 만들어낸다는 게 더욱 큰 어려움이 됐다. <동경대전> 읽기는 이런 문제의식을 긴장감있게 되새기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너무 진지해졌나 모르겠다. 아무튼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