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교수
무대미술가
도시공학자
서곡지구 환원, 잊지 말아야 할 원칙
독립기념관 서곡지구 환원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공간을 시민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 되살리려는 움직임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환원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되찾은 공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원칙과 철학으로 채워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무대미술가이자 도시계획을 연구해 온 사람이다. 두 분야는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왜 이 공간에 머무르는가?"
좋은 무대는 화려한 장치만으로 감동을 주지 않는다. 작품의 이야기를 살아나게 하고 배우의 움직임을 돋보이게 하며, 관객이 작품의 감정과 의미를 온전히 경험하도록 만드는 공간이 좋은 무대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주인공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시민은 만들어진 공간을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도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배우이자 공동 창작자다.
오늘날 많은 도시가 문화예술을 도시재생의 해법으로 내세우지만, 빌바오의 성공을 단순히 랜드마크 건축의 효과로 오해한 사례도 적지 않다. 빌바오는 미술관 한 채 때문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교통, 문화정책, 시민 참여가 함께 변화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랜드마크는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이 교훈은 서곡지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발의 목표는 화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 있어야 한다. 도시는 건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쌓이는 사람들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서곡지구는 잠시 들러 사진만 찍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머물고 배우며 예술과 자연을 함께 경험하는 체류형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화는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시설보다 프로그램이 먼저여야 한다는 점이다. 전국에는 훌륭한 문화시설이 많지만, 지속적인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해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곳도 적지 않다. 공연장이 공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공연이 공연장을 필요로 하듯, 콘텐츠가 공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사업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다. 공공예산은 사업을 시작하는 마중물일 뿐이다. 지원이 끝나면 운영도 끝나는 사업은 결국 빈 건물만 남긴다. 교육과 창작, 전시와 공연, 체험과 놀이, 국제교류, 지역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스스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예술은 비용이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이 사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시민은 완성된 시설의 이용자가 아니라 기획과 운영에 함께 참여하는 공동 창작자다. 시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때 비로소 문화도시는 지속가능해진다.
서곡지구 환원을 추진하는 주체가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원칙도 분명하다. 내용은 빈약한데 포장만 화려한 사업은 결국 '이상한 괴물'만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기억한다. 기술은 콘텐츠를 대신할 수 없고, 시설은 도시의 철학을 대신할 수 없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살아 있는 무대다.
서곡지구 환원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관광시설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의 역사적 정신을 오늘의 문화예술과 시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천안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좋은 무대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 기억된다. 서곡지구도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한다. 다시 찾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으며,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은 도시의 무대. 건물을 남기는 개발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개발, 그것이 서곡지구의 미래이며 우리가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될 원칙이다.
무대가 배우를 빛나게 하듯, 좋은 도시는 시민을 빛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