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잔치는 끝났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어정쩡한 언저리에서 어수선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오카리나를 배우러 다녔다. 3년을 넘게 다녀도 소리는 아직도 초보 수준이다. 선생님께서 8년까지는 초보란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씀이 힘을 빼란다. 참, 내……. 붓글씨를 배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수영을 다닐 때도, 골프를 칠 때도, 댄스 교실에 나가도 모두가 한결같이 힘을 빼라고 한다. 그러니까 뭐든 고수(高手)가 되려면 힘을 빼는 거란다.
잠시 스치는 나그네처럼 살자고 다짐하며 살았다. 돌아보니 잔잔한 듯하면서 무던히도 분주하게 살아왔다. 현실의 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마음의 변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언저리에 머물며 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 났다. 지쳤다.
쇼핑을 다녀왔다.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만큼의 포만감이 없다. 돌아와 며칠째 방구석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노릇이다. 낭비했다. 소유와 공허는 정비례하는 걸까. 평생을 소풍처럼 살자던 내가 이사하는 날 쌓아 놓은 이삿짐을 보며 놀랐다. 25톤 트럭에 짐을 실어 보내며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지키려 어깨에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았다. 표리부동의 삶을 살고 있었다.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올 무렵이면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이삼일에 한 번씩 너른 대지를 적신다. 일명 고사리 장마다. 그러면 영락없이 빈들에 푸릇푸릇 새싹들이 자라고, 가시나무 엉겅퀴 거친 줄기에도 어린잎이 눈을 틔운다. 그 사이사이로 갈색의 여린 고사리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잠깐 해라도 비치면 키가 성큼 자라나 잎을 틔워 쓸모가 없어진다. 잎이 피기 직전 갈색 머리가 굽어 연한 속살을 품고 있어야 부드러운 제맛이 난다. 가시에 찔릴까 요리조리 피해 가며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 하나씩 꺾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찔한 손맛이 일품이다. 낚시만 손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하, 귀한 것은 이렇게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야 얻는 것이구나.’ 권력도 돈도 얻으려면 아부를 떨어야 얻어지는 세상 아니던가. 시중에 고사리값이 금값이다. 중국산이 판치고 있다. 그래도 맛은 우리나라 토종 고사리가 최고다. 그중에 제주산은 더욱 알아준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앞뒤 좌우 눈과 손이 바쁘다. 부지런히 꺾어 두 손 가득 따면 앞치마에 넣고 그것이 가득 차면 배낭에 넣는다. 그렇게 배낭과 앞치마에 가득하면 다음 사람들을 위해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삼일 후에 나가면 또 들판 가득 고사리가 깨어나고 있다.
마치 모세가 광야 생활 중 먹을 것을 찾아 나선 들판에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가 널려있었듯이…. 딱 하루치를 주워 와야 했다. 더 이상 가져오면 다음 날 다 녹거나 썩고 마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고사리를 꺾으며 생각했다. 하늘의 새와 들에 짐승들은 떠돌며 준비하지 않아도 사철 먹이고 입힌다. 자연의 품 안이 집이고 들판에 널려있는 것이 먹을거리였다. 누렇게 말라가던 나목이 봄이면 푸르게 새순을 내민다. 빈들에도 이름 모를 풀들이 시시때때로 색색의 꽃봉오리를 터트려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빼앗는다. 대자연이 곧 신의 품 안이며 인간 또한 그 안에서 공존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사는데 열심을 내고 죽도록 노력해도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혹자는 팔자라고도 하고 운명이라고도 한다. 각자 한 사람마다 알맞게 주어진 생이 있다고나 할까. 절대자의 섭리대로 각자 필요한 곳, 놓여야 할 곳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쉰 잔치는 끝났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일은 또 오리라. 욕심껏 살아지지 않는 세상을 탓하지 말기로 했다. 이미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수히 지나가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나에게 주문을 건다.
하루 품을 팔아 하루를 사는 품꾼같이 살다 가리라. 조용히 힘을 더 빼고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리라. 나는 본디 보헤미안의 기질을 타고난 집시 여인이었을까. 길을 떠나 방랑 소풍을 마치는 날, 비로소 천상병 시인이 노래한 그곳으로 미련 없이 귀천하리라. 그곳이 내가 가야 할 내 본향이니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글 김순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낯설고도 친밀한》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