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26년 7월14일이다. 7월14일은 1789년 저 멀리 유럽에서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된 날이다. 그날 프랑스 왕정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분노한 파리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프랑스는 이날 이후 더 이상 되돌이킬 수 없는 혁명과 민주화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됐다. 이 글의 서두를 좀 거창하게 시작해봤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200여년이 훨씬 지나서 같은 날인 7월14일 오후 6시30분 나는 천안시 동남구 북면 연춘리 도로가에 있는 카페 <쉼>에서 나무탁자에 앉아 모임참여자 두 분과 함께 모두 3명이 동학의 기본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을 읽어나가기 위한 예비모임을 가졌다. 동학 하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곧바로 연상될 것이다. 프랑스대혁명과 동학농민혁명을 한꺼번에 떠올릴 수 있는 공부모임을 오늘 7월14일 시작한 것인데, 물론 이 날짜를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저렇게 모임날짜를 조정해보다가 정해진 것이었다. 이 우연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날에 겨우 모인 사람들이 왜 3명인가? 3명은 좀 우스운 모임 인원이 아닌가?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급적 알음알음으로 공부제안을 해왔으나 결과적으로 선뜻 시간을 내서 그 모임자리에까지 몸을 움직여온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공부하는 것으로 치자면 10대, 20대 시절을 지긋지긋하게 신물나는 열공으로 보낸 한국인들에게 또 공부하자는 소리는 거의 고문과도 같은 제안이 될 것이다. 공부보다는 휴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 그저 제안은 제안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3명이라는 인원수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의 위로를 해볼 수 있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의형제를 맺은 천하호걸 3명의 이야기다. 이거 또 버릇처럼 거창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옛날이야기 속에서 굳이 사람 3명이라는 숫자가 두드러진 기록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을 끝내 억누를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연춘리에서도 복구정마을이다. 오늘 모임이 있었던 카페 <쉼>도 복구정마을에 있다. 복구정(伏龜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고 해서 그 이름 그대로 복구정마을이 된 것인데, 이 마을이 역사적으로 보면 결코 평범한 마을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복구정마을이 어떤 마을인지를 역사연구 책에서 확인해보자.
“저는 계미년(1883년) 초에 보은에서 최시형에게 동학의 도를 전수받아 목천木川 복구정伏龜亭(지명)에 사는 대접주 김용희金鏞熙·김성지金成之(대접주라는 말이 김용희에게만 걸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와 한마음으로 결의를 맺고, 스스로 ‘삼로三老’라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동과 서에서 각기 포包를 설하여 동학의 도를 널리 펼 것을 도모하였습니다. 먼저 대접주 김용희와 더불어 포에 있는 돈 6,000냥을 거두어 모은 후에 『동경대전東經大傳』(온전 전全 자가 아니다) 100권을 개간하였습니다. 그 중 30권은 최시형에게 보내주었고, 나머지 70권은 저와 용희가 반씩 나누어 배포하였습니다.”
== 김용옥(2026), 「동학 초창기 역사에 있어서 천안·목천 사람들의 긴장과 헌신」, 『목천판 <동경대전> 연구』(동학농민혁명기념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 편, 2026, 통나무), 39쪽.
위의 구술은 1894년 10월27일 관군에 붙잡힌 천안지역 동학접주 김화성(金化成)에 대한 문초기록에 나오는 것이다. 김화성이 김용희와 김성지와 더불어 스스로 3명의 장로라는 뜻으로 ‘삼로’라 자칭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중국의 <삼국지연의>보다는 한국의 동학농민혁명 역사자료에서 3명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을 더욱 귀중하게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김용희와 김성지는 모두 “목천木川 복구정伏龜亭”에서 살았다는 부분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확인이 되었을 줄 안다. 1883년에서 1894년까지 천안지역 동학농민혁명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던 김용희, 김성지, 김화성 이 3명이 스스로 ‘삼로’로 일컬으며 주요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바로 복구정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복구정마을에서 2026년에 와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하여간 3명이 한곳에 자리잡고 앉아 <동경대전>을 읽는다는 것은 1883년 목천판 <동경대전> 간행사건의 주요 인물들인 삼로(三老)의 회합 장면을 143년만에 재현해보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우리의 복구정마을 <동경대전> 읽기모임은 기본텍스트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상세한 <동경대전> 풀이책인 『동경대전 2』(김용옥, 2021, 통나무)를 선택했다. 1883년 인쇄된 목천판 <동경대전> 원본은 온통 한문으로 이뤄져있어 한문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은 막바로 읽을 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동경대전> 번역과 해설서들 중에서는 김용옥 선생님의 그 책이 가장 최근에 출간된 것으로 상세하고 가장 대중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1권과 2권이 있는데, 그중 <동경대전> 원문 해석과 해설이 들어있는 책은 2권이다. 내가 왜 이런 부분을 자세히 이야기하느냐면, 혹시나 우리 <동경대전> 읽기모임에 관심이 있어 참여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 해서다. 기본텍스트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 없이 읽기모임을 즐길 수 있는 진행이 이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급적 본인이 확보한 기본텍스트 책이 있다면 더욱 편리한 읽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임에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관심만 있다면 <동경대전> 이야기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관련 글을 쓰기로 작정을 했는데, 사실 이런 취지로 이 글을 쓰는 바이기도 하다.
오늘 <동경대전> 읽기를 위한 예비모임이자 사실상의 첫 모임으로서 나는 앞으로의 진행사항에 대해 간단히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이중에서 1883년의 <동경대전>이 담아놓은 내용이 어떻게 2026년 현재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참고자료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아주 최근인 지난 4월 출간된 번역서인데 책 제목은 『선주민이 쓴 미국사』(네드 블랙호크 지음, 최재인 옮김, 2026, 책과함께)다. 원서는 2023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니 3년만에 한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 책이다. 미국의 지난 500년 역사는 유럽계 백인중심의 역사이고 거기에서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존재가 빠져있다는 것이 그 책의 문제의식이다. 그리하여 그 책은 지난 500년 역사를 다시 훑어내려가며 아메리카 선주민의 영향관계를 시기별로 빼곡하게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시각의 미국사 서술이 여태까지 한 번도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었다는 그 책의 지적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500년 지나온 해묵은 이야기이지만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한번도 실질적인 과거의 기록으로 전해져온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서술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들의 역사가 현재화되면서 동시에 역사화되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한편, 나는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매우 큰 흥미를 느끼게 됐는데, 그 부분은 이렇다.
레나페인은 추억과 이야기를 가져왔다. 다른 이주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난민들도 영국인의 근본적인 이중성, 즉 기독교 원리를 내세우면서도 인디언의 땅을 빼앗는 행위를 벌이는 위선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영적 식민주의와 정착민 식민주의를 동시에 경험한 선주민은 이들 말고는 거의 없었다.
==네드 블랙호크(2026), 『선주민이 쓴 미국사』(최재인 역, 2026, 책과함께), 289쪽.
위에서 ‘레나페인’은 북아메리카 동북부지역에 생활터전을 가지고 있었던 선주민 부족 ‘레나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터전에 영국인들이 침범해들어오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향 땅에서 쫓겨나 북아메리카 내륙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내륙지역에서 새롭게 만난 다른 선주민 부족들에게 그들의 경험담을 들려주게 된다. 그 이야기의 골자가 바로 영국인들의 위선과 관련된 것인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원리를 내세우면서도 인디언의 땅을 빼앗는 행위를” 벌이더라는 것이다. 종교와 정착의 모순적이면서도 이중적인 지배상황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책의 내용으로 보아 18세기의 상황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러한 비슷한 언급과 비판이 <동경대전>의 한 꼭지인 「포덕문」에서 보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경신년(1960년)에 이르러 나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평화롭던 동방에 나타난 서양의 사람들은 부귀를 취하지는 않지만 천하를 공격하여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당을 부지런히 세우고 그 하느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나 또한 그럴 수가 있는가,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었다.
==김용옥(2021), 『동경대전 2』(2021, 통나무), 71~72쪽
위의 인용문은 김용옥 선생님의 <동경대전> 본문 번역문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부귀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원리를 보여주는 것인데, 여기에 “천하를 공격하여 취하는” 행위를 보이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기독교 원리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결국 위선적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경대전>의 저자 수운 최제우 선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양사람들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뜻을 보여준다.
이 본문 내용에 대한 김용옥 선생님의 해설을 보면 내용은 더욱 분명해진다.
노자는 천하라는 것은 신기神器(신묘한 기물)래서 근원적으로 취할 수 없는(뺏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서양 사람들은 지금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천하를 송두리째 집어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선사람들의 부귀를 건드리지 아니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송두리째 집어 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운의 이러한 통찰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종교와 관련된 서구역사의 제국주의적 실상을 이토록 처절하고 적나라하게 폭로한 논리를 억압받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용옥(2021), 『동경대전 2』(2021, 통나무), 74~75쪽
<동경대전>을 쓴 최제우 선생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1860년에 서양사람들의 이중적 모습을 전해들었다. 그렇다고 앞서 인용한 바 있는 18세기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었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 의견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북아메리카 선주민은 직접 경험하여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난 후에야 서양사람들의 이중성을 파악했다고 하면, 최제우 선생은 아직 서양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조선 땅에서 전해듣는 이야기만으로 서양사람들의 이중성을 추정하여 인식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용옥 선생님은 최제우 선생의 통찰을 격찬하고 있으니 참말로 그 통찰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여전히 지금 시대에도 현재적이라는 것을 북아메리카 선주민 역사가 잘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동경대전>의 이야기가 결코 과거만의 이야기로 제쳐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납득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슬슬 풀어놓고 보니 <동경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19세기 중반의 조선 땅 역사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역사,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로 펄쩍펄쩍 날아다닐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게 된다. 아무튼 간에 오늘 7월14일 복구정마을 카페 <쉼>에서 3명이 모여 앉아 <동경대전> 읽기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 읽기모임은 매주 화요일 오후 4시에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관련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수시로 이 자리를 빌어 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그럼 기대해주시라.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