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의 교육칼럼
이연정의 교육칼럼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6.07.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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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른을 존경할 때, 세상은 아이들의 것이 됩니다.”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사)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 감사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사)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 감사
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

 

학생부장을 맡았던 시절의 일이다.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의 보호자가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해서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힘겨운 시기였다. 당시에는 학생과 교사 관련 민원은 의례 학생부장 몫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이 민원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밤 12시만 되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고, 수화기 너머로 술에 취한 아버님의 주정 섞인 고성과 욕설이 쏟아졌다. 학교폭력 담당자로서 서운한 점부터 잘잘못 따지기, 자녀 양육의 고단함, 가족을 위한 본인의 희생을,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 학교와 가족에 대한 원망까지 밤새 이어졌다.

평생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해왔기에 경청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욕설과 고성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매번 전화 민원의 마지막 단계는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왜 늦은 밤 전화를 받았냐고 묻는다면, 받지 않았을 때 곧장 학교로 찾아오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보호자가 학교로 찾아오는 순간, 그날의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수업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웹툰을 매우 좋아한다. 2020년부터 연재된 웹툰 <참교육>도 그때 접했다. 처음 웹툰을 접했을 때는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암투가 매우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교단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필자에게 웹툰의 비현실성은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필자가 배우고 실천해 왔던 ‘참교육’은 학생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돕는 교육적 접근이자 학생·교사·보호자가 소통하며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 비폭력, 인권 존중, 전인적 성장의 관점에서 학생을 함께 성장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 가·피해 학생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언행을 조심하는 것, 이것이 내가 배운 참교육이자, 실천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웹툰과 드라마가 보여 준 ‘참교육’은 이와 정반대였다. 드라마 ‘참교육’은 감정적 스릴과 통쾌함을 주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초법적인 ‘교권보호국’의 존재.

서이초 참사 이후 약 10만 명의 교사들이 거리에 나와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사건은 <참교육> 5화에서 재현된 바 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사가 무분별한 고소·고발에 직면해 있으며, 교실이 아닌 법정에 서야 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선생님들의 외로운 싸움은 이제 단순한 교육을 넘어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투쟁’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학교폭력이나 생활지도 업무는 기피 순위 1위가 되었고, 학교를 위축시켰으며, 교육계의 갈등을 유발하는 불씨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 모든 현상이 학교만의 책임으로 치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학생과 교사, 보호자와 지역사회 등 교육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전 국민적 관심사이자, 단 한 명의 아이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근 교육계의 수장이 바뀌며, 기대 어린 소식이 들려온다. 새로 취임한 이병도 충남교육감은 1호 결재로 ‘교육감 직속 교권보호관 추진단’을 발족했다. 그리고 취임식에서 “어떤 정책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제도보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먼저 믿으며, 어떤 성과보다 아이들의 행복을 먼저 살피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교권 보호가 교원의 보호만이 아닌 학생을 중심에 둔 교육공동체 모두를 보호하는 일임을 명시한 것이다. 교권 보호를 향한 교육감의 뚜렷한 방향성과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기에 깊이 환호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실 속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교실 안팎의 학교폭력을 완화하는 대응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가 위축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지나친 법적 처분은 행정심판 및 소송 남발, 교권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제’를 적극 활용하여 교사가 가·피해학생을 직접 조사하면서 겪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사안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 면제의 법적 기반을 공고히 다져야 한다.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신속하고 결정을 지원할 인력 확충도 시급하다.

둘째, 교권 침해 발생 시 신속하게 대처할 틈새 보강이 필요하다. 교육활동 침해 사건이 발생 하면 사건조사, 법률·행정 지원, 상담과 치유를 아우르는 ‘교육활동 사안처리지원단’이 즉각 가동되어야 한다. 현재 충남에서는 아동학대 신고나 악성 민원 등으로 조사나 수사를 받게 되었을 때 변호사 동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꼭 필요한 지원이지만 교원이 직접 신청서를 접수해야 해서 개인 신상 노출이나 절차상의 번거로움이 따른다. 현장 중심의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행정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제도적 면책권과 권한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의 교사보호법(Teacher Protection Act)은 정당한 교육활동 중 발생한 피해에 대해 연방법으로 ‘민·형사상 면책권’을 보장한다. 더불어 즉각적인 ‘교실 퇴거권(Removal Power)’을 부여하고, 보호자에게 연대의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하거나 자녀 수업 참관을 강제하기도 한다. 영국 역시 교육청과 사법기관이 강력하게 개입한다. 교사 역시 공무원이기 때문에 학생이나 보호자가 교사에게 폭언·폭행을 가하면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와 모욕죄, 상해죄로 엄중히 처벌한다. 영국과 핀란드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정당한 물리력 행사를 법으로 허용하며, 악성·허위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재판 확정 전까지 교사 신원 공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권 회복의 출발점은 ‘아이를 중심에 두는 교육’이다. 교육 현장은 흑백논리나 이분법적인 제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며 함께 나누는 하나의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책, 제도, 성과보다 ‘먼저’ 아이들을 중심에 놓겠다는 충남교육감의 취임사 속 의지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정책과 제도, 성과 탓만 하며 뒤로 숨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보호자, 그리고 사회는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결국 교권 확립은 학생과 교사, 보호자와 지역사회까지 교실을 평화롭게 가꾸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디딤돌이다.

드라마 <참교육>의 명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요, 세상은 망하는 겁니다.”

참으로 무겁고도 무서운 경고다. 필자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존경할 때, 세상은 아이들의 것이 됩니다.”

보호자가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며 행복을 느끼듯, 교사 역시 아이들 성장을 바라보며 성취와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을 존경하고 존중하게 된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교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 것이다.

이제 곧 다시 교단으로 나서는 필자 또한 이 다짐을 가슴 깊이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