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함에 대하여
삐딱함에 대하여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6.06.08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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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서너 됫박이 주방 창가에 까르르 쏟아져 내린다. 손으로 빚어 울퉁불퉁 기우뚱한 다유기 화분 몇 개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가 반짝 햇살에 화들짝 놀라 더욱 기우뚱해진다. 나도 같이 햇볕바라기를 하며 그 요망한 것들과 조잘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움찔!

돌아보니 식탁엔 먹다 남은 찻잔이 식은 채 덩그러니 앉아 있다. 싱크대에는 빈 그릇 몇 개가 쌓여있고 수도꼭지에서는 덜 잠근 물방울이 똑똑 소리 내어 떨어지고 있다. 거실 소파에는 금방 일어선 듯 찬기가 가시지 않은 무릎담요가 흐트러져 있다. 그 옆엔 보다가 만 책 몇 권과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TV 리모컨이 나뒹굴고 있다.

평소 나는 삐뚤거리고 기우뚱하고 반듯하지 않은 것들을 못 견뎌 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야만 생각도 일도 술술 풀려나간다고 생각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잔소리와 지적질이다. 사람도 깍듯하지 않으면 싫어했다. 처음 보면서 반말 비슷하게 말을 잘라먹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런 내가 피곤한지 가족들이 슬슬 내 곁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삐딱하고 기울어진 것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곧았던 허리가 앞으로 자꾸만 쏟아졌다. 누구보다 반듯한 자세를 가졌다고 칭송을 받았었다. 스스로 평소 곧은 자세에 만족하던 바였다. 골다공증인지 아니면 다리를 꼬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조금씩 상체가 앞으로 쏠려야 허리가 편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등이 쑥 뒤로 빠지면서 배는 겹 살이 되고 턱은 쳐들고 앉아서 무언가 열중하고 있었다. 컴퓨터 하다가도, 식사 하다가도, 영화 보다가도, 차 마시다가도 불쑥 무언가 불편해서 보면 자세가 삐딱하게 굽어있었다. 왜 자꾸 앞으로 몸을 숙이느냐는 남편의 지적에 농담 삼아 머리에 든 것이 많아서 앞으로 쏠린다고 말했다. 아들의 째리는 눈빛이 삼박사일 동안 치워지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좋았다. 조급함이 사라지고 편안하고 릴랙스함이 생겨났다. 등이 굽었다는 것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굽 높은 하이힐을 즐겨 신던 내가 바닥이 납작한 플랫 슈즈가 좋아지니 말이다. 딱 붙는 옷을 좋아하던 내가 헐렁한 옷들을 즐겨 입는다. 화장하지 않고 외부 출입 못 하던 내가 이젠 뻔뻔하게 맨얼굴로 동네방네 나다닌다. 덕분에 눈 밑엔 주근깨가 조근조근 앉았다. 흰머리가 하나씩 생겨나면서 머리 염색을 했다. 검은 머리가 반란을 시작했다. 이것도 자주 하다 보니 머리숱도 적어지고 단백질이 빠져나가 결이 점점 더 푸석해졌다. 작은 놈 결혼까지만 자연 모를 유보해 놓았는데 왠지 그때까지 갈 것 같지가 않다. 이 또한 자연의 순응에 맡기고 삐딱함을 즐겨야 할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 노처녀였던 친구가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짝을 만들었고 체게바라도 김지하도 삐딱하게 세상을 보다 혁명 하였고 어릴 때부터 엉뚱했던 빌게이츠는 컴퓨터 신화를 이뤘다. 꽃을 삐딱하게 바라본 보들레르는 악의 꽃으로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고 노인들도 중심을 구부려 지갑을 열듯 자신을 비워간다. 시도 돈도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 슬쩍 기울어져 볼일 -

문숙 시인의 글이 문득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따지고 파고들고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나사 하나 빠진 듯, 조금은 부족한 듯, 알고도 모른 척, 느릿느릿한 발걸음들에 마음이 쏠린다.

무언가 결단의 갈림길에서 본의 아니게 취향과 선택이 달라져야 할 순간도 있다. 그 결단의 주체, 즉 수혜자가 나였는지 아니면 상대였는지 모호할 때가 있다. 상대를 위한다는 결론이 나를 위할 때가 있었고, 나를 위한다는 결론이 오히려 불이익이 올 때도 있었다. 이렇듯 계산하지 않는 미숙함이 오히려 인간미가 흐르고 친근감이 생긴다.

경제관념이 별로인 나는 마트를 가든지 재래시장을 가든지 현금거래를 하면서 물건값보다 더 주거나 거스름돈도 안 받고 오기가 일쑤다. 이런 내가 불안한 가족들은 잔소리를 해대지만 나는 또 역시나 실수투성이다. 다행스럽게 신용카드 결재 덕분에 이제는 그런 걱정에서 풀려났다. 손해 좀 보면 어떤가. 조금 모자란 듯 보이면 어떤가. 깔끔하지 않으면 어떤가. 고두밥으로 식혜를 만들고, 살짝 골은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지 않던가. 모자란 것들이 시간이 흐른 후 더 깊은 맛을 내지 않던가. 빈틈없이 깍듯한 것들에서 벗어나 조금은 엉성한 것에서 한 박자 쉬어가며 삶의 여유를 찾아가면 좋겠다. 내 어수룩함 덕분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다. 남편은 물론 두 아들, 친구들, 형제들…….

더러는 삐딱함과 기울어짐이 주는 계산되지 않은 시너지효과가 쏠쏠한 요즘이다.

글 김순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낯설고도 친밀한》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