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있는지 조석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평생 친구인 동반자와 단 한 가지 맞는 것이 있다면 ‘산책하는 일’이다. 이사를 여러 번 다녔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산책코스를 찾아 나섰다. 하루 중 지루하거나 심심해지면 슬쩍 한 사람이 시동을 건다.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하거나, 할 일 없이 먼 산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도 한다. 그러면 둘 중 "나갈까?" "나가자." 말이 떨어지면 누구랄 것 없이 후다닥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챙긴다. 먼저 준비한 사람이 벌써 운동화 신고 현관에 서 있다.
여름이 깊어질 무렵 한낮을 피해 초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섰다. 먼바다에 지는 노을도 보고 동네 어귀 커다란 팽나무 그늘 옆 선선한 바람 줄기도 반가운 시간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산들바람 불며 코끝이 상쾌하게 기분 좋았다.
귤나무들이 한창 익어가는 골목을 한 바퀴 돌아오니 제법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숲속에서 단체 회의라도 하는지 유난히 참새 소리가 요란스럽다. 하늘빛이 점점 더 회색빛으로 짙어 가고 동백나무 숲속에서 갑자기 수백 마리 참새떼 지저귀는 소리가 "뚝" 동시에 끊겼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어둠이 성큼 내려왔다. 대장 참새가 지시라도 내린 걸까? "쉿! 다들 조용히 해. 어둠이다!"
한참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공항을 이용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와 검사받으란다. 우리 좌석 근처에 감염자가 있어서 예방 차원에서 검사하란다. 결과는 양성이었지만 잠복기 동안 각자 떨어져 생활 하라는 것이다. 마침,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던 2층을 나 혼자 단독으로 쓰며 며칠을 보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오히려 여유를 즐겼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드라마와 영화도 맘껏 보고, 눈치 보지 않고 오카리나 연주도 실컷 하면서….
습관처럼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기도하고 묵상하며 모닝 노트를 쓰려고 시동을 걸었다. 아직 어둠이다. 맑고 상쾌한 공기가 ‘훅’ 후각으로 밀려왔다. 동쪽으로 난 창 저 너머 들녘, 하늘이 맞닿은 곳에 어둠을 뚫고 검붉은 보라색과 주황빛이 그러데이션 되어 조금씩 고개를 쳐들고 있다.
순간, 어디선가 “찍” 하고 소리가 난다. ‘어? 새가 벌써 깨어났나? 아직 어둠인데…’ 다음 순간 다시 “짹짹” 소리가 났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 새 소리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하늘을 바라보니 서서히 새벽 여명이 움직이고 있다. 이젠 종류도 다양한 모든 새가 한꺼번에 지저귄다. 소음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대장 새가 구령을 외친 걸까? “모두 아침이다. 기상!”
그때 알았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침묵과 소음이 병존하고 있음을 보았고 들었고 느꼈다. 초자연적인 환경, 제주도이기에 가능했을까? 마법의 시간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에서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다. 멀리서 보이는 짐승이 양몰이 하는 개인지 양을 물어갈 늑대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미묘한 시간대를 말한다. 동양에서는 박명(薄明)이라고도 표현한다. 일본어 ‘타소 가래;たそがれ’(황혼:黃昏)의 어원은 “거기 뉘시오?”라는 옛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표현 모두 저물녘 황혼과 새벽 여명의 시간을 일컫는다.
빛과 어둠, 침묵과 소음의 경계, 사람과 귀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던 신비스러운 마법을 경험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을 더듬노라면 신화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툭 튀어나오듯 꿈결처럼 아련하고 몽롱해진다.
글 김순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낯설고도 친밀한》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