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기
밑줄 긋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6.01.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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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시인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를 읽고 있다가 자꾸만 연필로 밑줄을 긋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작가 이력과 글솜씨에 반한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쉽게 글을 쓴다. 그녀의 시와 수필 모두가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삶을 노래하는데 절규가 깃들어 있다. 사람을 그려내는데 눈물이 흘러내린다. 차분하게 호소력 있는 잔잔한 글 속으로 자꾸만 마음이 기울어진다. 글 안에 정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 속에서 그녀는 대어를 낚는다. 그야말로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럴 땐 딱 내 글쓰기를 멈추고 싶다. 내 글이 하찮아 보이고 밑그림만 그려대고 있는 것같이 볼품없어 보인다. 하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매번 좋은 책과 글을 접할 때마다 나는 충격을 받는다. 어쭙잖은 글쟁이로 머무르고 있음에 자책한다.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닫는다. 눈만 돌리면 수북이 쌓아둔 읽어야 할 책들 속으로 피신한다. 정신없이 몇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속에 고여지는 생각을 토해내는 작업이다. 그 생각이 곧 그 사람이며 생각이 글이 되고 책이 되는 것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어 밑줄 그어지는 날이 있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갑자기 두려워지기도 하고 두근거려지기도 한다.

책과 그 그늘 밑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 권의 책이 되어있으려나. 많은 글 선배들이 말했듯이 우직하게 읽고 쓰라는 말이다. 다시 지울지라도 부지런히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흔히 우리가 편하고 쉽게 느껴지는 문장들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 혼의 결과물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향해 묵묵히 걸으라는 말이다. 그 한 길을 향해 우직하게 걷노라면 길이 보이고, 꽃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숲도 보이리라. 경지에 오른다는 말은 한 방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말일 게다. 거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자기가 좋아하고 기쁨이 있는 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그 영혼의 결과물이 남 보기에 하찮아 보일지라도 자기 마음속에 고인 생각을 토해냈으니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고치고 수정하면 될 일이다.

류시화 시인이 《내가 생각한 삶이 아니야》에서 이런 글을 썼다.

“가장 후회되는 글은 생각만 하고 쓰지 않은 글이다. 내게 실패한 글은 쓰지 않고 미룬 글들이며,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글은 ‘쓰지 않은 글’이다. 가장 후회되는 여행은 ‘떠나지 않은 여행’이다.”

생각만 하고 행하지 않은 일들은 존재가치가 없음이다. 어찌 되었던지 나는 오늘도 주절주절 글을 쓴다. 생각의 나락을, 마음의 갈피를, 떠도는 몽상들을 제목도 없이 노트북 바탕화면에 퍼 나르고 있다.

좋은 책 속의 글에 밑줄을 그으며 음미하듯이 삶에도 밑줄을 그으며 살아 볼 일이다. 우리의 모든 순간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글 김순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낯설고도 친밀한》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