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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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5.11.2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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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큰오빠 대학을 위해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내가 3살 때이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시골 논밭 팔아야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서울 작은 땅을 사서 아버지가 손수 일본식 미니 이층집을 지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아버지의 경제관념과 손재주가 빛을 발했다. 서울역에서 가까운 독립문 근처는 일자리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온 이들이 올망졸망 살아가는 서민들의 터전이었다. 서대문 교도소 앞에 전차 역이 있었다. 어린 내가 큰언니 손잡고 독립문역에서 전차를 타고 서대문역에 내려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극장에서 내 생애 첫 영화를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다다미로 만든 2층 방은 큰오빠 방이고 다락방은 작은오빠 방이었다. 어린 나는 오빠들 방이 늘 궁금했다. 다락방 낮은 천장과 비좁은 계단 위는 나에게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빠들이 없는 대낮에 몰래 다락방에 들어가면, 오래된 책 냄새가 먼저 반겨주었다. 먼지 낀 책장 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활자들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끌어당겼다. 쪽 창문 빛으로 책꽂이에 꽂힌 책을 펼쳤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그 순간 다락방은 더 이상 어둡고 좁은 공간이 아니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천장이 되었고, 때로는 바람 부는 초원의 텐트가 되었으며, 바다 위의 배가 되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어린 나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고, 나는 그 불씨를 안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심오한 생각들이 들어있는 것 같았고, 글을 읽은 후에 나는 점점 더 멋진 아이로 성장할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아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을 만났고, 언어로 길어 올리지 못한 울음을 배웠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다락방 어둠 속에서 움튼 빛을 다시 꺼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테스』 『전쟁과 평화 』 『대지 』 『빙점 』 『빠삐용』 등. 뭐가 뭔지도 모르며 읽어 내려가며 아스라이 노을이 질 때까지 다락방은 나의 놀이터였다.

저녁 먹을 때에야 엄마가 나를 찾아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내 안에 문학적 태동이 터를 잡고 있었다.

중학교 국어 시간, 자기 고백적 수필을 써 오라는 선생님 과제가 있었다. 교복을 입고 등굣길에 한 남학생이 나를 따라오는 느낌이 싸했다. 무섭고 떨려 빠른 걸음으로 학교까지 무사히 도착하여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남학생은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자기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 두근두근하며 가슴 떨리고 무섭던 심정을 에피소드로 써냈다. 과제를 돌려주는 날 선생님께서 내 글을 제일 먼저 내 주며 앞으로 나와서 낭독하라 한다. 부끄럽지만 떨리던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께서 칭찬과 더불어 친구들에게 모두 박수를 권했다. 내 가슴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후끈 느껴졌다. 그 뒤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고 꾸준히 무언가 긁적이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등단과 함께 문학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린다.

삶이 고단하다고 느낄 때나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마주할 때 나는 마음속 다락방으로 간다. 문학의 자궁, 그 은밀하고 아늑하던 공간 속으로….

글 김순례 수필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외 동인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