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돌의 마을, 천안 백석동 지명의 뿌리를 찾아서
흰 돌의 마을, 천안 백석동 지명의 뿌리를 찾아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5.11.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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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이라는 도시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 고려 태조 13년(93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천안의 왕자봉(王子奉)에 올라 지세를 살폈을 때, “이 지세에 성을 쌓으면 천하가 편안해진다”는 예언에 따라 그 지명을 ‘천안(天安)’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유서 깊은 천안에서도 서북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백석동(白石洞)은 이름 자체에 오랜 자연의 흔적과 마을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곳이다.

지금의 백석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현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변모했지만, ‘백석(白石)’이라는 이름에는 과거의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로부터 이 일대에는 흰빛을 띠는 석회암과 화강암이 많이 분포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흰돌말’이라 불렀다. 이 별칭이 세월이 흐르며 ‘백석리’로 굳어졌고, 오늘날의 ‘백석동’으로 이어졌다.

일부 전승에서는 ‘한들’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됐는데, 이는 ‘큰 들’을 뜻하기도 하고, ‘흰돌’의 옛 발음이 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름 하나에 자연환경과 언어의 변천이 함께 녹아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백석동은 조선시대 천안군 군서면 백석리로 불렸다. 이후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송골, 산적골, 승적골 등이 합쳐져 ‘영성면 백석리’로 편제되었고, 1931년 환성면 백석리로 개칭됐다. 1963년 천안시 승격과 함께 현재의 ‘백석동’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100년이 넘는 행정 변천 속에서도 ‘백석’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을 만큼,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애착이 깊게 배어 있다.

지명 형성에는 지형과 지질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노태산 자락을 중심으로 석질이 드러나는 지대가 많았고, 답곡천 유역을 따라 돌출된 암반층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백석동 일대에는 ‘백석동 선사유적 및 백제 토성’(서북구 백석공단1로)이 위치한다.

이 유적은 해발 120m가량의 구릉 정상부에 돌과 흙을 쌓아 만든 고대 성곽으로, 흰빛 석질이 지명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연지리와 고대의 생활 흔적이 겹쳐진 역사적 공간이다.

무엇보다 지명은 단순한 행정 구역의 명칭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백석동이라는 이름은 흰 돌의 물리적 이미지를 넘어, 깨끗함과 단단함, 그리고 변치 않는 정체성을 상징한다.

도시화로 풍경은 달라졌지만 ‘백석’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옛 마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천안시가 발간한 『지명 유래집』에 따르면, 이러한 전통적 지명은 단순히 옛 흔적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특히 백석동은 선사시대부터 백제,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아온 터전으로, 지명 하나에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백석동은 교통과 상업의 요지로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이름 속에는 여전히 흰 돌의 질감과 마을의 숨결이 살아 있다.

‘백석동’이라는 이름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의 기억이 함께 빚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글 한우섭 주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