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살았던 서울 생활이었다. 삶의 밑바닥에서 중산층까지 오르며 열정을 다했다. 생활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조금씩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희미했던 신앙생활과 문학의 길을 더듬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를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가 평화롭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못 되더라도 수신제가(修身齊家)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보았다.
두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과감히 서울을 떠나 제주로 향했다. 하지만 거기서 또 큰 바위를 만날 줄이야….
건축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온 식구가 매달려 손수 집을 지었다. 집을 지으며 주변 밭에서 던져놓은 돌들을 주워다 돌담을 쌓았다. 큰 돌과 작은 돌들을 적당히 어우르며, 넓적한 돌과 뾰족돌도 상황에 따라 쓰임이 있었다. 돌 하나하나가 내 아픔이고 슬픔이며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상처와 아픔들을 잘게 부수어 아름다운 담을 쌓는 기다림으로 버텨냈다. 삶의 허망한 것들이 내 삶의 중앙에 조금씩 담처럼 쌓여갔다. 제주 돌담처럼 차곡차곡 엉성하게 쌓인 내 삶의 일면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렸지만 한편,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힘들어도 아파도 여지없이 새벽은 온다. 그 새벽 서재 문을 열며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다녔다. 몸이 아프던 어느 날부터 혼자 서재에서 그분을 만난다. 내가 마음을 열어 성전에 그분을 초대하면 교회가 되는 것. 기도하고 성경 읽고 묵상하며 하루의 시작과 더불어 모닝 노트가 시작되었다. 주절주절 감정의 파편들을 토해 놓으며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러기를 여러 해.
말은 안으로 주워 담고, 문장은 하나씩 건져내며 모닝 노트가 쌓여갔다. 어정쩡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는 삶. 신앙생활도 문학인으로의 삶도 변방의 삶이다. 모든 면에서 열정적이지도 못하고 완전 아웃 사이더도 아니며 어물쩍 발만 담그고 있는 모양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결국 내 탓이다. 실력도, 경력도, 인정받지 못함도 다 내가 모자란 덕분이리라. 이른바 삼류의 삶이다. 그런들 어떠하리.
오, 신이시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나를 용서하소서!
바람이 잦은 섬마을 돌담은 구멍이 슝 슝 뚫려서 바람이 새어 나가지만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버팀의 힘이 있다. 태풍과 비바람 작렬하는 태양에도 끄떡없이 견뎌낸다. 얼기설기 별생각 없이 놓여있는 거 같지만 돌 하나하나가 과학이다. 근사하게 꾸며놓은 현대식 담은 아니지만 모양도 가지각색이고 크기도 각자 다른 돌들로 얼기설기 꿰어맞춘 돌담이 못난 나 같아서 더 정이 간다. 그 돌담에 세월이 흐르면 이끼가 끼고, 석화도 피고, 담쟁이덩굴도 타고 올라가고, 작은 벌레들도 오가며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그곳에 또 다른 생들이 켜켜이 묻어있다. 모든 생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은근히 눈길이 가는 섬마을 돌담처럼, 숲속 마르지 않는 깊은 샘처럼 오래된 것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묵묵한 기다림과 무언의 철학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내 안에 오욕들이 쌓여 꼭 보아야 할 것을 가리고, 안 봐도 되는 것들을 바라보며 눈뜬장님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수신제가(治國平天下) 치국평천하(修身齊家)는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인데…
글 김순례 수필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외 동인지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