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 화분이 깨졌다. 깨진 화분을 추스르다 보니 잎에 비해 엄청난 뿌리들이 보인다. 거대한 뿌리는 한 주일 넘게 물을 주지 않아도 끄떡도 없다. 거기서 봄이면 다시 솟는 많은 새싹, 그 강한 힘의 원천은 뿌리였었구나.
순간 나의 뿌리는 어디 있을까. 내 숨소리의 근원은 어디일까. 내 뿌리는 아직도 제 땅을 찾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는데. 덤덤함으로 일상을 덮고 숨죽이고 살아가지만 내 안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 절규하고 있었다. 가끔은 허전하고 굶주린 듯 허덕이고 있는 나였다. 갈증을 해소하려 멈춘 곳에서 빨대를 꽂고 해갈을 꿈꾸지만 언제나 목이 말랐다. 그 때문인지 잦은 이동하게 되었다. 뿌리 없이 떠도는 삶. 길을 나서서 길을 만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정처 없이 발을 떼었다. 수많은 길이 거미줄처럼 나를 혼동 시켰다. 어떤 길로 들어서야 할지 막막했다. 목표를 세워 가다가도 세상 온갖 변화무쌍함에 목적지를 놓치기 일쑤다. 길을 나서서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서성이고 있다. 또 길을 잃고 만다. 내가 벌써 알츠하이머 환자라도 된 건가.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옆자리의 외국인이 연필과 수첩을 꺼내더니 왼손으로 사삭사삭 글을 쓴다. 오랜만에 들리는 연필 소리가 신선하다. 갑자기 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스마트 폰, 노트 기능을 켰다.
- 시간을 조리질 하다가 길을 잃었다. -
이렇게 한 줄 쓰고 멈췄다. 붉은색 커서가 정지 신호등처럼 깜빡깜빡.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문득 공항철도 안에 붙어 있던 광고문구가 생각났다. 하늘길, 바닷길, 땅길…. 몽롱하게 먼 이국땅에라도 다녀온 듯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그새 꿈결인 듯 기내 스피커에서 곧 제주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창밖에 햇빛이 눈부시게 밝다. 멀리 보이는 제주 섬 곳곳에 엉킨 실타래처럼 갈래갈래 길들이 보인다. 유난히 밝은 햇빛 아래 바다로 향하는 길, 오름으로 향하는 길, 숲으로 향하는 길, 장터로 향하는 길, 그리고 구석구석 마을 길…. 섬 주변으로 일명 해변도로가 크게 타원을 그리며 길고 시원하게 뻗어 있다. 문득 그 길을 아우토반처럼 폭풍 질주하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길이 있다.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 길, 내 안에 수많은 마음 길…. 그 길 위를 역행하지 않고 가노라면 현실은 꾸역꾸역 내게 어떤 결과를 종용했다.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일이 코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사정에 끌려가다가 상처받고 돌아서기도 했다. 더러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려다 오히려 사람에 갇히는 꼴이 되기도 했다.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인간 바리케이드가 더 숨통을 조여왔다. 피아노 줄 같이 팽팽하고 강한 투명 끈이 나를 삶의 굴레에서 이리저리 잡아끌어 조종하는 것 같았다. 보이지도 않고 강요받지도 않았지만, 투명한 그것들이 소리 없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있던 것들을 미련 없이 툭 놔 버리고 싶었다. 책임과 의무감을 훌훌 벗어 버리고, 체면도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흐느적거리며 숨만 쉬고 싶었다. 혼자만의 방에 자신을 가두고 몇 날 며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했다. 다시 고독해지고 싶었다. 고독할 때 비로소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오곤 했다. 텅 빈 충만! 모든 것 속에 내가 있으나 그 어떤 것 속에도 내가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이라는 시에서 윤동주 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다는 그 길, 그 길에 내가 남겨 놓은 것은 무엇일까. 가시밭 돌밭 같은 이 길을 벗어나면 평평한 푸른 초원이 펼쳐질까. 그 길 끝에 내가 서 있을 수 있을까.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의 마음이 그곳에 닿으면 거기서는 더 이상 마음이 수선스럽지 않고 평안할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오늘도 풍선을 불었다. 내 마음도 그 풍선 속에 함께 구겨 넣었다.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간 그 풍선이 담 저쪽 어딘가에 착륙하여 굳게 뿌리내리기를 빌면서….
글 김순례 수필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외 동인지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