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비극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수천 명의 희생자들은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하지만 시민사회 곳곳에서 이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작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엿장수 구학영》은 그 흐름 속에서 태어난 그림책이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조선인 희생자들 가운데, 일본 사이타마현 요리이 마을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 구학영의 삶을 담아냈다. 이 책은 잊힌 역사를 다시 일깨우고, 그 자리에서 기억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다.
《엿장수 구학영》은 2021년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뒤, 시민들의 힘으로 일본어판과 영어판으로 번역됐다. 일본에서는 시민 강연과 전시, 수업 자료로 활용되며 일본 시민사회가 ‘간토대학살’이라는 금기어를 다시 마주보게 했다. 특히 책을 만든 작가의 초청 강연이 여러 차례 열렸고, 일본 언론에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작은 그림책 하나가 국경을 넘어 연대와 성찰의 움직임으로 번져간 것이다. 이후 영어판은 미주 지역의 동포 사회와 다양한 인권 네트워크로까지 확산됐다. 이러한 흐름은 잊힌 역사를 국경을 넘어 기억하고자 하는 연대의 증거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은 독일어판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여정은 지난 2023년 여름, 한 청년의 작은 연결에서 시작됐다. 독일에서 자란 이다산 씨는 대학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그는 천안의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엿장수 구학영》을 처음 만났다.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엿을 팔던 조선 청년 구학영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야기는 이다산 씨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罰日本罪無(벌일본죄무): 일본을 벌하라, 나는 죄가 없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구학영의 삶은,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던 모든 이민자의 삶과 닮아 있었다. 이다산 씨는 자신이 살아가는 독일 사회에도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이다산 씨는 독일 이민자 2세다. 그는 직접 이 책의 독일어판 번역을 시작했다. 단순한 언어의 전환을 넘어, 이주민의 손으로 ‘이주민의 역사’를 전하는 작업이기에 더욱 뜻깊다. 이는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그 기억을 전하는 목소리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치의 범죄를 철저히 반성하며 ‘기억의 문화’를 지켜온 독일 사회에서 이 책이 소개된다면,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함께 성찰할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일 이민자 2세 청년의 손으로 번역되는 이 책은 ‘이주민이 전하는 역사’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독일어판은 한국어와 병기하여 출간될 예정이며, 독일에 사는 한인 2세, 3세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도 소중한 자료로 쓰일 수 있다.
이번 독일어판 출간은 단지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작업이 아니다. 이는 언어의 다리를 놓고,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국제적 연대의 움직임이다. 카카오같이가치에서 진행 중인 모금 프로젝트는 바로 그 연대의 일환이다. 《엿장수 구학영》 독일어판 번역 출간을 위한 이 모금은, 구학영의 이야기를 독일 사회와 이주민 공동체에 알리고, 잊힌 역사를 다시 기록하며,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새기기 위한 자리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그 기억이 새로운 언어로 번역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 작은 그림책이 독일어로 옮겨져 나올 때, 국경을 넘어선 기억의 힘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구학영의 이야기, 그리고 이주민의 삶을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참여를 원하는 이는 카카오같이가치 모금 페이지(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127057/story)를 통해 이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