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찬 검을 내려놓으세요. 달리는 말 등에서 고삐를 놓아버린 채, 한 관 짜리 월도를 휘두르고 고구려 창업주 주몽을 닮겠다고 활시위를 당기다니, 두렵지 않나요? 만일, 내가 유니콘이 되어 당신을 날려 버린다면 어깨뼈가 부서지고, 척추가 부러져 두 번 다시 걷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다고요? 오천 년 역사를 지키고, 전통을 잇는 일이라고요? 그만 하세요. 이곳에는 오천 년보다 더 오래된, 수만 년을 지켜온 수천 종의 식물과 수백 종의 동물들이 오순도순 평화를 노래하며 살고 있어요.
당연히, 그들에겐 살상 무기 같은 것은 없어요.
칠십오 년 전, 6.25가 일어났을 때 흰둥이와 검둥이, 그리고 온갖 피부색의 인종들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증식을 위해 이 땅에 끼어들었죠. 세계대전에서 쓰다 남은 총과 대포를 몽땅 가져와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생명 있는 것 모두를 살육했어요. 그들 자신은 총알이 피해 갈 줄 알았지만 그들 역시 죽었어요. 그리고는 다급하게 허리를 싹둑 잘라 DMZ 평화지대를 만들었죠. 남북 이십 리, 횡단 육백 리의 시작점. 전류리 포구예요.
채찍을 놓고 내 등에 올라타세요.
어떻게 빈손으로 여행을 가냐고요? 수십 년 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았던 땅이라, 어디서 맹수가 나올지 몰라 무섭다고요? 연장 하나 없이 비무장 상태로 떠날 수는 없다고요? 걱정 마세요. 조금만 가면 철원평야입니다. 넓은 초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우거진 밀림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나침판 하나쯤은 어떠냐고요?
아닙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그곳엔 지금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온갖 동식물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어요. 자본에 폐허가 된 습지가, 보란 듯이 살아나고 있어요. 밤낮으로 밀려오는 파도 위엔 물별이 반짝이고, 검독수리가 아기 검독수리에게 비행을 가르치고 있어요. 조개들이 마음껏 유영하고, 여우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앞서 걷고 있죠. 사향노루와 산양은 철원평야를 지나 고성 명호리 가는 길에 서로 길잡이를 하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요. 멀리 오로라가 춤추고, 반달가슴곰, 여우, 수달, 재두루미, 노랑부리백로, 그리고 수원청개구리까지 우리를 마중하고 있어요.
살상 무기를 놓아버린 당신을 위해.
※시상노트 : 낙마를 했다. 흙바닥으로 구르는 나를 말이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것을 받아썼다.
최기영 – 시인, 수필가 산문집 《자유, 그리고 똥》 외 동인지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