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을 사다 심었다. 상추, 고추, 부추, 그러고 보니 추 자매다.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시장에 나가면 모종 내놓고 파는 가게가 성황이다. 3년 차 도시농부다. 제주 살 때 넓은 밭에 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은 규모의 상자에 흙을 넣고 겨우 몇 포기씩 심어 눈으로 즐기고 하나씩 따 먹는 재미도 소소하다. 다음날 고맙게도 마침 비가 내려 어린싹이 뿌리내리고 적응하도록 도움이 되었다. 잘 견디는지 궁금하여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다행히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두 개가 약간 잎이 시들하다. 돋우려고 물을 주기도 하고 뽑아서 뿌리를 잘 내리게 다시 심어도 보고 며칠 동안 애간장을 태우며 신경을 써 봤는데 결국 시들시들 죽고 말았다. 애초에 약하게 태어난 아이인지, 아니면 모종 이동하면서 제대로 관리 못 해서인지, 심는 과정에서 뿌리를 다친 것인지 원인을 모를 일이었다. 한번 다쳐서 소생 불가능한 생명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안 되는 거였나 보다. 결국 빈자리에 다시 새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고추 모종이 땅에 적응 못 하고 시들어 갈 때 아무 조치도 안 했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살려보고자 마음을 기울이고 온갖 성의를 표현했기에 다시 새 모종을 사다 심을 수 있었다. 하물며 사람에게랴.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하던지 혹은 불치병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수술과 치료 뭐든 최선을 다해 붙들고 정성을 다할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순간이기에 모두 당황하고 결정 내리기에 서투르리라. 그렇게까지 해도 결과가 원치 않는 상태로 남겨질 수 있다. 남은 가족들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그러기에 그 순간에 당사자의 의사가 최우선이 될 것이다.
‘생명 연장 거부 신청서’를 작성했다. 자주 다니는 요가 수업 장소 1층 로비에 봉사자들이 신청서를 상시 받고 있었다. 오가며 계속 신경이 쓰였고 시간 내어 신청해야지 하며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작성을 마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20여 년 전 ‘장기기증 신청서’도 냈다. “이젠 마음 놓고 죽을 준비가 다 되었다.” 농담처럼 웃으며 가족에게 당당히 말했다.
죽음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가 되었다. 병들어 죽으면 어쩌나 노심초사 걱정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의료보험 공단에서 제시하는 정기 건강검진을 꾸준히 잘 받고 있다. 운동과 소식(小食)으로 건강관리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건강하게 살다가 죽음이 조용히 찾아온다면 미련 없이 보내 줄 각오가 되어있다. 예고 없이 질병이 찾아온다 해도 치료가 가능한 한도 내에서 진료받고 억지로 산소호흡기 등 생명 연장을 위해 비루한 처치를 받고 싶지 않다. 본인도 괴롭고 남은 가족들도 힘든 그 과정을 무의미하게 이어간다는 건 모두에게 비생산적이다. 국가적인 낭비이며 의료진의 헛수고와 병원만 배 불리는 처사가 아닐까.
소생 불가능한 뇌사상태의 생명은 빠른 처치와 즉시 장기기증으로 다른 이들에게 얼마든지 새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다. 무의미하게 생명 연장에 돈과 시간 낭비하고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짐을 안겨 줄 수는 없다. 내 의식이 또렷하게 정상 작동할 때 내 생각을 미리 기록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식불명 위급한 상황이 와도 미리 작성한 당사자 의지대로 진행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도 미리 이런 절차를 밟아 두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이 절차를 통해 오히려 죽음이라는 거대한 행사가 무덤덤하게 느껴지고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았다. 죽음과 생존은 늘 삶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말이다. 물리적인 인체의 죽음으로 인한 마지막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생 살아온 영혼(靈魂)에 대한 시작이 아닐까. 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그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이며 생존이다. 다시 말해 그 정신의 부활이며 새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리라. 또 혹시 장기기증으로 인한 새 생명이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 멋진 마지막이 없으리라. 엄밀히 말해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그 후손이 후손을 낳고 그 정신이 정신을 낳고…
“내가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는 곳, 모든 것이 너무나 명백하게 종말을 가리키는 곳에서 희망을 걸었다.” 니체의 말이다.
죽음의 순간에 내 의식에 반한 희망! 멋지지 않은가! 진정한 부활이다!
글 김순례 수필가 - 수필집 《마음속 풍경》 외 동인지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