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사람들, 일한 대가로 고작 각설탕 하나야
사람을 등에 태우고 살아온 시간이 얼마인데 아직 본능을 버리지 못한, 아니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달리던 그들의 조상처럼 달리려는 말이 있다. 주몽승마장에 있는 동백이란 녀석이다. 난 녀석에게 수시로 코치님 몰래 각설탕을 입에 넣어준다. 코치님이 기승 전에 주지 말라고 하지만 설탕 하나가 문제인가 싶다. 동백이는 하루도 쉼 없이 우리를 위해 등을 내준다. 고생의 대가로 고작 각설탕 하나 주는데 코치님은 그것마저 못하게 한다. 말에게 너무 잘해 주면 기승자를 무시하는 나쁜 습관이 생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늘 역시 동백이는 내가 주는 각설탕 하나를 낼름 받아먹었다. 그리고 하나를 더 내놓으라고 무거운 몸을 딱 버티고 섰다. 각설탕을 하나 더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코치님 눈을 피해 각설탕 하나를 살짝 입에 넣어주고 등자(발걸이)를 딛고 안장에 앉으니 부조에 따라 착하게 속보, 구보를 해줬다.
나는 각설탕 하나 얻어먹고 순종하는 모습이 귀여워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안장에 앉았다. 한참 동안 말과 하나가 되어 승마를 즐기던 중에 동백이가 갑자기 360도 원을 그리며 획 돌아버렸다. 예상치 않은 동작에 놀라 고삐를 힘껏 당기니까 다시 고개를 획 앞으로 숙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균형을 잃고 말 아래로 꿍 떨어지면서 고삐를 놓쳐버렸다. 동백이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앞발과 뒷발을 번갈아 차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니 뛰기 시작했다.
말은 원래 겁이 많아 기승자가 안전하게 승마를 즐기려면 말보다 먼저 사물을 보고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코치님 몰래 각설탕까지 주면서 잘 태워달라고 부탁했는데 얄미웠다. 바람에 날아온 비닐 조각 하나에 나를 떨어트리다니, 말의 본능을 각설탕 하나로 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각설탕 하나로 말의 본능을 살 수는 없었다
나를 안장 아래로 던져버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같이 운동하고 있던 여러 말과 말 사이를 누비며 신나게 내달렸다. 히잉거리며 마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후 다시 내 앞에 딱 섰다. 각설탕을 달란다. 미워서 모른척하니 움직일 때마다 강아지처럼 졸랑거리며 따라왔다. 그 모습이 귀엽고 웃겨서 각설탕 하나를 입에 물려주고 다시 말안장에 올라탔다.
운동을 마무리하고 동백이를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안장을 벗길 때는 항상 마구간 잠금쇠를 확인하고 안장을 내려야 하는데 깜박했다. 아니 나는 삼동 추위에 땀이 흥건히 적시도록 난리를 쳤으니 더 이상 뛰지 않겠지 했다. 착각이었다. 마구간 문을 살짝 열어 둔 채로 안장을 내려 줄 때였다. 고삐와 굴레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 문틈을 밀고 나와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를 쳤다. 찰라였다.
나와 코치님은 한참 동안 뛰었으니 쉽게 잡힐 것이라 믿고 여유를 부리며 녀석을 따라갔다. 녀석은 우리가 천천히 다가가면 천천히, 빠르게 쫓아가면 빠르게 나 잡아 보라는 듯이 잡힐 듯 말 듯 이리저리 피하더니 결국 승마장 옆 골짜기 입구로 가더니 산 능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행여 동백이가 산 넘어까지 도망갈까 걱정이 되어 숨을 헐떡거리며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니 넓은 분지가 보였다.
초지를 달리는 말에게서 남태령 수만의 불빛이 반짝였다
동백이는 분지에 도착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넓은 초지를 한참 동안 이리저리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뛰어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각설탕보다 더 맛있는 건초가 여기 있다는 듯 한입 주워 물면서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약 삼십 분 동안 한참을 안 쉬고 뛰더니 잠시 멈춰 한숨 고르기를 했다. 우리는 다 놀았나보다 싶어 손바닥에 각설탕을 보이며 가까이 가자 녀석이 풀밭에 벌렁 누워 구르며 모래찜을 했다. 그리고 일어나 몸을 붙은 풀 부스러기를 털고 일어나 네발을 들고 히잉거리며 공중부양을 했다. 마치 유니콘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동백이는 그만 집에 가자는 우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자유를 보란 듯이 질주하다 풀 뜯기를 반복했다. 한 발 한 발 뛸 때마다 힘들게 얻은 자유를 빼앗기기 싫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말들은 너희(사람)와 함께 오래 살아왔다. 그동안 너희의 발과 의자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원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할 본능이 있다. 항상 자갈이 입에 채워져 있어도 단 한 번도 본능을 잊은 적이 없다.”
그때 나는 동백이가 몸으로 외치는 자유에 대한 절규에서, 얼마 전 서울 남태령 고개를 지키던 수만의 농민이 침탈당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영하 20도 강추위 속에서 촛불 하나를 들고 당당하게 서 있던 모습을, 코치님과 함께 보았다.
우리는 더 이상 동백이를 잡으려고 쫓아가지 않았다.
글 박수아 (불당중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