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천 방천(防川) 공사가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다시 시작해 가을이 되어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음 해로 넘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곳만 특별히 비가 많이 오는 탓인가 아니면 지형이 난해한 탓인가. 어쨌든지 이곳은 유난히 홍수 피해가 큰 것은 사실이다.
2017년 여름 축사를 옮기기 위해 부지를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적당한 자리가 있다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고 아우내 시장을 찾았다. 자동차 유리창을 가리는 빗살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축사 이전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아우내 시장에 도착했다. 도로와 상가 모두가 물에 잠겨 말 그대로 물바다였다. 당시 비가 많이 내린 탓이라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축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동안에도 매년 여름 장마철이면 아우내 시장과 장산리와 오창 성재리와 호죽리 모두가 물에 잠겼다. 그럴 때마다 소방 공무원과 행정센타 공무원이 도로를 막고 먼 거리로 우회하도록 하였다.
병천천은 용(龍)이 태평스럽게 휴식을 취하는 자태다
매년 병천천 주변 홍수 피해가 큰 것이 지형 탓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이 염치를 버리면서 생긴 결과물이었다. 병천천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산마루에 올라 사람 살기 편안한 지세(地勢)를 보고 천안(天安)이라 했다는 천태산에서 샘물이 발원한다. 실개천은 생명 있는 모두가 한울님이다며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던 수천의 동학혁명군이 산화한 세성산 샘물을 안고 흘러 미호천과 만난다.
병천천 지류는 승천하는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태조산에 턱을 기대고 미호천까지 수십km 샛강에 꼬리를 늘어트리고 태평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용(龍)의 자태를 뽐내던 병천천이 난도질당했다.
1970년대 군부독재 집단이 권력을 위해 매일 같이 긴급조치와 포고령을 발표할 때였다. 그때 생명 있는 무엇도 숨쉬기 힘든 시기에 독재자 박정희에게 충성을 맹세한 완장을 찬 부역꾼들이 있었다. 박정희는 그들의 충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당(私黨)이었던 민주공화당 간부들에게 국가소유인 하천부지를 헐값으로 나눠줬다. 그것은 병천천 용의 허리(하천부지)를 난도질해서 살점을 나눠준 것과 같았다. 하천부지를 독재자로부터 불하받은 부역자들은 소유지를 지키기 위해 하천에 말뚝을 박고 흙을 퍼부었다.
섬이 물길을 꽉 막고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이여
그 후 하천은 소유자가 바꿀 때마다 수만 평 모래사장과 갈대밭이 좁아졌다. 방천을 쌓고 하천부지를 논밭으로 개간했다. 그렇게 병천천 하류인 송정리와 오창 성재리 인근에 인공섬 하나가 생겼다. 동남구 다섯 면에서 흐르는 물길이 좁아져 매년 장마철이면 황토물이 물길을 찾아 천변 마을로 범람하고 있다.
물길을 막고 있는 섬을 방치한 채 오늘도 병천 아우내부터 장산리, 송정리 인근에 하천 모래를 파고 둑을 쌓고 있다.
장산리에서 낳고 자란 75세 박씨 할아버지가 쯔쯔 혀를 차며 말한다.
“어려서 이렇게 장마철에 마을 전체가 물바다가 된 적이 없어. 저 밑에 섬이 물길을 꽉 막고 있는데 물이 어디로 갈 것이여. 갈 데가 없지. 동네로 들어와야지. 공사 백날 해봐야 소용없는 짓이지.”
글 최기영 마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