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터, 잡초 속에 묻혀 흔적 찾기 어려워
도동서원 터, 잡초 속에 묻혀 흔적 찾기 어려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4.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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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병천면 병천6리 일대에 자리했던 도동서원의 터가 지금은 잡목과 수풀이 뒤덮여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도동서원이 있었던 서원마을 

병천6리에는 도동서원이 있었던 서원마을이 있다. 대록지 기록에 따르면, "도동서원은 은석산 아래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치 좋은 곳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 서원터는 접근이 어려워, 과거 이곳이 교육과 예를 행하던 중요한 장소였음을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도동서원터로 추정되는 곳은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이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이었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서원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국가에서 토지와 노비, 서적 등을 지원하며 공인한 서원으로, 성리학 발전과 보급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도동서원은 성리학을 조선에 널리 알린 주자와 탁영 김일손, 한강 정구, 후천 황종해를 배향하며 지역의 학문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 특히, 김일손이 죽림서원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도동서원이 시작되었으며, 정구와 황종해가 서원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서원이 증가하고 붕당정치의 중심이 되면서 재정적인 부담까지 더해지자, 흥선대원군은 1868년 서원 철폐령을 내렸고, 도동서원도 이때 훼철되었다. 이후 서원의 흔적은 사라져가고, 현재는 안내판조차 설치되지 않아 이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알 방법이 전무하다.

풍세면에 있는 검계서원

한편, 2019년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 9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서원은 단순한 사립 교육기관을 넘어 지방 문화를 이끌고, 성리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조선 시대의 핵심 기관이었다.

천안 지역의 향교는 잘 보존되어 있는 반면, 도동서원터는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역 유일의 사액서원이자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도동서원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후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글 김경숙 마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