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가 수업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지도를 받는다. 그러자니 요가복이 일상복이 되었다. 요즘은 운동복을 입고 뭐든 하는 세대이니 나 또한 시류에 동참한다. 특별한 일 없는 나의 일상이니… 보통 때는 요가복을 입고 풍성한 남방셔츠 하나 걸치면 되고, 겨울엔 누비 통치마를 겹쳐 입고 두툼한 스웨터를 걸치고 목도리 하나 휙 두르면 변신이 가능해진다. 요가 끝나고 바로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실 수도 있고, 가벼운 산책도 가능하고, 가까운 마트에 들러 장을 봐 오기도 한다. 튀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남의 눈에 거스르지도 않으니, 맘에 든다. 그저 수수하고 편안하다.
과거에 20년 넘게 여성 의류를 취급했었다. 직업상 옷을 오래 다루다 보니 겉모습 속에 감춰진 사람의 내면이 조금씩 읽힌다.
옷차림에는 그 사람의 나이는 물론 개성과 사회적 위치까지도 적당히 묻어난다. 성격이나 습관 멋과 순간의 심리상태까지 다 드러나는 것이 옷차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연예인, 정치인, 내로라하는 재벌들도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날의 일정에 따라 연출하고 도움을 받는다. 액세서리 하나로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있고 넥타이 색상 하나로 호감을 얻어 낼 수 있다. 머리모양과 가방 취향과 구두 스타일로 성격이 가늠된다. 하여 신입사원 면접관이 첫인상을 볼 때 옷차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옷차림을 보고 다음은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말하는 습관, 그리고 굵거나 가늘고 종종 쇳소리를 내는 사람. 경박하지 않은 말투에 고급언어를 쓰는 사람, 반면 상소리가 입에 버릇처럼 남아 있는 사람, 그 습관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지나온 과거의 삶이 읽힌다.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 가치관, 의식 수준이 드러난다.
의사, 변호사, 샐러리맨, 노동자, 식당업, 생선 장사……. 수많은 직업에 맞추어 옷차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옷차림으로 시작된 첫인상은 언어 습관과 교양 수준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대충 들여다볼 수 있다.
외모는 최고급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추었는데, 말투나 행동은 경박하고 이기적이며 최하의 교양 수준인 사람. 겉모습은 수수하고 튀지 않지만, 대화를 나눌 때 눈을 조용히 응시하며 상대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행동하는 사람 등.
사회 어느 집단에서든 골치 아픈 존재와 선한 능력의 사람은 항상 있고, 자기 본성은 어디서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군들 이런 부류의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까. 다만, 상황을 지켜볼 뿐이란 것을 본인만 잘 모르는 것 같다.
대추 한 알이 익어 가는 데는 사계절이 묵혀야 제맛이 배어난다. 나목에서부터 시작하여 긴긴 겨울밤 영하의 추위와 눈 덮인 살얼음을 잘 견뎌야 따뜻한 봄날을 맞을 수 있다. 새순 돋는 봄날이라고 다 좋기만 할까. 심술 맞은 봄바람과 입춘 추위를 견뎌야만 예쁜 꽃봉오리를 맺을 수 있다. 꽃이 핀다 한들, 미처 피워보지 못하고 비바람에 휩쓸려 떨어지기가 부지기수요. 남은 꽃은 따가운 햇살과 쏟아지는 장마와 비바람 천둥 번개를 수십 개 맞아야만 열매 맺는다. 그 열매 중에 또다시 태풍과 재해로 솎아지고 겨우 남은 열매가 먹을 수 있는 대추가 되는 것이다. 개중에 몇은 새들과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자연은 그렇게 사계절을 품으며 서로에게 자기 품을 내어준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사계절을 잘 견딘 열매는 맛이 있다. 나무 입장에서 고통과 아픔이 많았을수록 맛은 더욱 좋고 당도도 뛰어나다. 아무런 풍파 없이 자란 나무의 열매는 풍미가 덜하고 덤덤한 맛을 낸다. 대추 한 알에도 1년이라는 생이 묻어나는데 하물며 인간에게랴!
상처 많은 나무가 단단하듯이 아픔을 앓았던 사람은 그 자체가 풍부한 가치의 저장고가 된다. 삶의 변수 앞에서 의연하다. 충격이 와도 경험 많은 사람은 덜 아프다. 예방접종 맞은 것처럼 면역이 생겨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첫인상이 생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선, 첫 면접, 첫 출근, 첫 소개팅….
자기 인상(印象)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어져서 한 사람의 일생이 된다. 부모 잘 만나서 처음부터 많은 것을 갖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태생부터 빈곤과 고통 속에서 대를 이어가며 악순환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보면서 현대는 빈부격차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아 가슴 한쪽이 서글퍼진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한탄만 하며 살 수는 없잖은가. 이 세상 그 누구도 가만히 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차곡차곡 자기 인생을 완성하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서 나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시작은 쉽지만, 끝까지 해 내기는 쉽지 않다. 내 스스로 의지가 굳어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닐까.
물리적인 노력만으로 삶의 갈림길에서 헤어날 수 없다면, 정서적인 노력 ‘독서’와 ‘영화 감상’으로 위로와 지혜를 얻으라고 권하고 싶다. 혼자서도 큰돈 들지 않고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도전이다. 시간을 내서 그저 즐기면 된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생각 없이 독서나 영화에 빠져보라. 좋은 책과 명화가 주는 위로와 경험들로 마음이 부자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장담한다. 혹자는 너무 고전적이며 고리타분하다고 질책할 수 있으나 책 속에 길이 있다. 그것들과 함께 한 시간만큼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 간접경험도 재산이 된다. 외부의 우연이 내부의 필연을 변화시킨다.
인상(印象)은 과거의 체험과 현재를 연결하는 정신작용이다. 마음 안에 이러한 완충제가 차곡차곡 쌓여간다면 매사에 담대하고 여유로우며 인상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리고 곧 인격(人格)이 보이리라. 외모(옷차림)에 가리어 내면을 보지 못하는 그런 편협한 시각 말고, 진짜 인상(印象)이 편안해지면 인생(人生)이 윤택해지는 것은 자명한 순서 아닐까.
글 김순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