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작은 통로, 이웃을 연결하다
장애인을 위한 작은 통로, 이웃을 연결하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2.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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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실행의제 소개

이 기사는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 천안아산신문의 협업으로 작성된 기사이며, 주민주도 지역문제해결 프로세스인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실행의제를 소개하고 성과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역사회 접근성 향상을 위한 입간판형 경사로 설치

칼국수가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이었다. 추운 겨울 가슴속까지 전해지는 칼국수 국물의 뜨끈함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의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 바깥쪽에서 주의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노부부인 듯 보였다. 머리가 백발이 된 할아버지가 전동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식당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손으로 한 뼘 정도 되는 문턱을 전동휠체어가 넘지 못해 애를 끓고 있었다. 노부부가 큰 맘 먹고 칼국수 한 그릇 먹어보려 바깥나들이를 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낭패다. 보다 못한 주인장과 식당에 있던 몇몇 손님이 가까스로 전동휠체어를 들어 옮기자 그제야 식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음식점을 비롯한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출입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하라는 ‘장애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입법예고 및 시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사로가 없는 건물도 많고, 경사로가 있더라도 규격에 맞지 않아 휠체어가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휠체어나 유모차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처음 리빙랩을 계획한 것은 나사렛대학교가 재활복지 특성화 대학교로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자주 접하면서였다. 장애인들도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하자’라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입갑판형 경사로를 설치하기 위해 나사렛대학교 주변 상가의 경사로 설치 현황 조사와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실태를 파악했다. 주변 소상공인에게 입간판형 경사로 사업의 취지와 필요성을 설명하고 참여를 유도했다. 가장 정성을 쏟은 것은 입갑판형 경사로의 소재를 정하고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사전 조사와 3차까지 시제품 제작하여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 최종 모델을 만들었다. 경사로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협의하여 안내 책자와 카드 뉴스 등을 제작, 배포했다.

리빙랩을 진행하며 주변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경사로 설치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비용 문제나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경사로 설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2장 10조) 장애인이라고 해서 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아직 사회 제도적인 부분과 인식이 부족하지만, 이번 리빙랩을 통해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작은 발판을 마련했다.

“리빙랩 통한 상인들과의 커뮤니티 확장은 큰 도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나사렛대학교 ‘NADO 메이커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김남현입니다. ‘NADO 메이커스페이스’는 누구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에요. 메이커스페이스는 전국에 200개소가 넘고, 저희는 그중 한 곳으로 재활복지 특화 메이커스페이스입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관련된 분야에서 특화된 교육이나 정보를 제공해요.

3D 프린터 업계에서 1~2년 정도 일하다가 3D 시장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창업하게 되었어요. 창업한 지 5년이 지났고, 3D 프린터로 재활을 돕는 보조기기를 만들거나, 노인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Q. 리빙랩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주변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장애 학생이 많아요. 나사렛대학교가 재활복지 특화 학교라서 장애인 친구들이 기숙사 생활이나 활동을 많이 해요. 장애인 친구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우연히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에서 운영하는 공론장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주고받다가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동권 보장이라고 생각해 리빙랩에 참여했어요.

메이커스페이스에 근무하는 연구원 한 분과 제가 참여기관 대표 역할을 했고, 나사렛대학교 재활의료공학과 근로학생 두 명이 함께 활동했어요.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다가 아이템을 만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동권을 보장하자’였는데, 뉴스 기사를 보다가 ‘입간판형 경사로’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것을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공론장이 끝나고 자료 검색과 정리를 해서 리빙랩에 제안했어요.

Q. 입간판형 경사로는 주로 어디에 설치했나요?

나사렛대학교 주변 음식점과 편의시설 위주로 10개소에 설치를 했습니다. 출입구가 좁아서 안 되는 곳도 있었어요. 저희가 선정한 10개소는 출입구 상태가 비슷한 곳이었고, 사업을 확장한다고 하면 시설에 맞게 조정해야 해요. 설치장소에 맞게 따로 제작했어요. 대, 중, 소 크기로 만들었는데 리빙랩 기간이 짧아서 큰 사이즈로 설치했어요. 나무를 재단하고, 샌딩하고, 방수 처리하고, 건조하고, 칠판 시트지 붙이고, 안전성을 더하기 위해서 부수적인 장치들을 달다 보니 하나를 완성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공장처럼 딱딱 찍어서 만드는 형태도 아니고, 낡은 건물들은 경사 각도가 높아서 큰 걸 설치해도 안 되더라고요. 경사각이 크면 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나무가 길어지면 경사로가 부러질 수 있어요. 입간판의 역할도 해야 해서 간판이 너무 길쭉하고 크면 미관상 문제도 있더라고요. 경사로 만들 때는 법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 해요. 경사로가 긴 경우에는 도로의 흰색 차선을 넘으면 불법이라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간이식으로 만들어서 입간판으로 쓰다가 휠체어나 유모차가 올라올 때 펼쳐서 쓰는 형태로 제작했어요.

Q.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휠체어를 탄 친구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해서 테스트를 많이 해야 했어요. 테스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실제로 입간판형 경사로를 사용해야 하는 학교 주변의 소상공인과의 소통이 미흡한 점이 있었어요. 경사로를 잘 사용하겠다는 동의서를 요청했는데 다행히 상인 분들이 흔쾌히 응해 주시고, 주변에 많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도 해줬어요.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으면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했을 텐데 기간이 3개월로 짧았어요. 예산 책정되고 나니 실제 작업기간은 두 달 정도였어요. 같이 작업하는 학생들 시험 기간도 겹치고, 연말이라서 저희도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어쨌든 기간 안에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텼어요. 경사로 설치하고 나서 상가 주인 분들이 좋아해 주니까 보람은 있었어요. 아쉽게도 아직 휠체어 탄 친구들이 많이 이용하지 못했어요. 방학 중에 완성되었고,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워 경사로를 이용하기 어려웠어요. 리빙랩은 마무리되었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생들이 다니는 시기가 되면, 저희가 제작한 팸플릿을 나누어주면서 이용을 독려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Q. 보람되었던 순간이 있다면?

근처 돈가스집이 기존에 경사로를 설치했는데, 법 규정 때문에 도로 흰색 선을 조금 넘었다고 결국 비용을 들여 철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설문조사를 하러 다녀보니, 상가 주인 분들이 경사로 설치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도적인 부분도 민감하고, 통행에 방해되고, 주차를 못 한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신고를 해서 경사로를 없애는 상황이었던 거죠.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시설인데, 여러 가지 문제로 경사로 설치를 못 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상인들도 설치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잖아요. 저희가 경사로 입간판을 가져다드리니 가게에 꼭 필요했었다고 하면서 고마워했어요. 그럴 때 보람 있었죠. 학생들한테도 열심히 알리고 상권이 안정화될 수 있게 홍보도 하고 경사로 이용을 독려하려고 합니다.

Q. 리빙랩을 통해 개인적으로 변화된 점은?

그동안은 주로 학생들만 만나다가 리빙랩을 하면서 상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됐다고 볼 수도 있어요. 저희가 입간판을 설치했던 상가에 가면 그분들이 저희를 정말 반겨주세요. 그러다 보니 의미 있는 활동들을 지속해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하나의 커뮤니티 형성과 관계 확장성 부분에서 저희에게 리빙랩이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리빙랩은 끝났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 나중에 AS를 해드려야 되는 것도 많을 거예요. 경사로 입간판 사업이 좋은 효과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미흡한 상태로 마무리가 되면 ‘리빙랩이 리빙랩으로 끝났다’ 이렇게 얘기가 될까 봐 우려되기도 해요. 사후 관리 부분이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됐을 때 저희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리빙랩을 끝내고 보니 너무 바삐 달려와서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리빙랩이 하나의 좋은 프로젝트 사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장성과 지속성을 띠면 좋겠어요. 자체적으로 입간판형 경사로를 만들어 보급하거나, 경사로를 많이 구비해 두고 대여소를 운영해 필요한 소상공인 분들이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사렛대학교 근처의 상권만이라도 휠체어를 타고 못 가는 곳 없는 기반 시설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문의: 041-574-9897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글: 지역콘텐츠발전소 문수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