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한 농촌 주민들의 도전기
행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한 농촌 주민들의 도전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2.16 08:2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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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실행의제 소개

이 기사는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 천안아산신문의 협업으로 작성된 기사이며, 주민주도 지역문제해결 프로세스인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실행의제를 소개하고 성과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혁신형 농업 폐비닐 재활용장 구축

 

농촌에 살다보면 농업에 사용된 비닐이 수명을 다하고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흉물스러운 광경을 보곤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가벼운 흰색 비닐이 춤을 추듯 하늘로 오르며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밭에 방치된 비닐이 흙속에 깊게 파묻혀 수거하기 위해서는 굳어진 흙을 들어내기 위해 꽤나 힘을 써야 한다. 농촌의 곳곳은 비닐이 점령하고, 가까스로 모아진 폐비닐은 분리 배출 되지 못해 유해물질을 방출하며 태워진다.

보령시 성주면 개화1리 조남현 이장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분리되지 못한 영농폐비닐이 그냥 소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리 배출만 잘 하면 재활용 업체가 수거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리빙랩을 기획하고, 주민들과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섰다.

농촌 마을에 폐비닐 수거장이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가 맞지 않아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농촌에서의 영농폐비닐은 크게 세 가지로 배출된다.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는 검은색 비닐, 흰색 비닐, 비료포대이다.

마을의 유휴공간에 폐비닐 재활용장을 만들고 주민 스스로 발생시키는 폐비닐을 분리배출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문제 해결 방법도 단순했다. 하지만 리빙랩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현실적인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폐비닐 재활용장도 혐오시설이었다. 재활용장은 찬성하지만 마을 주민 누구도 내 집 앞에 설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폐비닐 재활용장을 우리 마을에 만들면 옆 마을 쓰레기까지 오게 될 거라는 부정적인 의견까지 합세해서 앞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모임도 만들어서 영농폐비닐 재활용장은 지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환경교육이 되고, 이런 과정들이 ‘지구를 지키는 용사’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힘겹게 마을 어른들을 이해시키고 나니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재활용장을 구축하는 행정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어느 정도 규모로 만들려하니 건축물 허가부터 세금까지 하나의 마을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점점 커져갔다.

어렵지만 조남현 이장과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영농폐비닐 재활용장을 만들고 운영방법을 모색했다. 기존 재활용장이 대부분 한 칸으로 만들어지는 데 반해 개화1리는 비닐의 종류에 맞게 세 칸으로 만들었다. 흰색, 검은색, 비료포대 3가지로 배출되는 폐비닐을 미리 고려한 것이다.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주민들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이었다. 또한 쓰레기 불법 투기를 막기 위해 재활용장에 도어락을 설치하고 CCTV도 설치했다.

농업 폐비닐 재활용장 구축에 성공한 조남현 이장은, 문제 해결이 100이라면 이제 25만큼 왔다고 앞으로의 운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운영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있을 테고,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주민들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폐비닐 재활용장을 구축하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를 하겠다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폐비닐 재활용장 구축과 운영을 배우러 전국에서 선진지 견학을 오게 만드는 것, 그런 마을을 꿈꾼다.

[인터뷰] 조남현(보령시 성주면 개화1리 이장)

“문제를 공감하고 도와주는 분들이 생겼어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11살 쌍둥이 딸과 9살 막내딸을 둔 딸부자 아빠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젊어서 이장이 된, 개화1리 이장 조남현입니다.

Q. 리빙랩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저희 마을에 대농이 한 분 계세요. 쪽파농사를 짓는데 비닐하우스에서 폐비닐이 대규모로 나오거든요. 이 폐비닐을 내놓으면 업체가 수거를 하니 별 생각이 없었는데, 수거한 비닐이 그냥 소각된다는 걸 아신 거죠.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소각하는 건 아니다 싶어 알아보니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면 재활용 업체가 수거를 해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마을에도 농업 폐비닐 재활용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셨죠.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폐비닐 재활용장이 혐오시설이란 인식 때문에 개인 땅주인들의 반대가 심해 무려 3차례나 장소를 변경했어요. 건축과, 도로교통과, 농정과 등 행정부서별 기준도 다르고 법률상의 제재도 많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설치하고 나서도 문제가 계속 이어졌어요.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거업체가 수거를 하지 않더라고요. 운영비가 없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성도 고민입니다. 농어촌 현실에 맞는 폐비닐 재활용장 구축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관청에서 지정한 쓰레기 처리 업체가 폐비닐을 무상 수거하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그냥 내놓기만 해도 가져가니 굳이 분리수거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폐비닐 재활용 업체가 이익이 되는 폐비닐 수거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잘 분리되어 있는, 이물질이 없는 폐비닐만 돈이 되니 그것만 가져가겠다는 거죠. 저희 마을의 경우 버섯농가에서 쓴 폐비닐이 있어 분리수거 해두었는데 그건 이물질 때문에 못 가져가겠다고, 오히려 처리 비용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Q. 변화된 점이 있다면?

리빙랩이 마을환경교육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식사 자리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저희 활동이 ‘지구를 지키는 거’라고 설명하니 대부분 이해를 하시더라고요. 행정에서도 그렇고 조금씩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지금 성주면 사거리에 가보면 ‘지구를 지키는 용사님’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있거든요. 그게 향후 폐비닐 재활용장을 함께 운영할 활동가를 모집하는 현수막인데 의외로 멀리계신 분들도 연락을 줬어요. 그 분들과 함께 폐비닐 재활용장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Q. 리빙랩 이후 향후 계획은?

농촌에서 나오는 폐비닐은 검은색, 흰색, 비료포대 이렇게 기본 세 가지입니다. 폐비닐을 분리해야지만 재활용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행정에서 지원하는 기존의 분리수거장은 한 칸이에요. 배출하는 공간 자체가 3칸이어야지만 더 정확히 분리수거가 되는 걸 이번 리빙랩을 하면서 경험했어요. 현실에 맞지 않는 행정지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싶어요. 농림부나 환경부를 통해 전국 농촌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분리배출장이 잘 운영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에요. 기존의 분리수거장이 쓰레기장으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 정말 많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도어락과 실시간 모니터가 가능한 CCTV를 설치했어요. 물론 별도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실제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을 수 있을지 아직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왕 시작한 재활용장을 제대로 한 번 운영해보려 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리빙랩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었어요. 지역의 쓰레기 문제도 제가 관심 있던 분야거든요. 제 경험상 뭐든지 진입장벽이 낮은 건 수월해요. 누구나 할 수 있죠. 헌데 정말 어려운 일, 문제가 심각한 일은 쉽게 할 수 없어요. 많은 이장님들을 만나봤지만 다들 ‘농촌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해요. 너무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란 거죠. 하지만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우리 마을이 또 하나의 이슈가 되고 전국에서 선진지 견학을 오겠죠. 또 다른 면으로는 기회인 셈이죠. 폐비닐 재활용장 하나가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재활용장 만들면서 문제를 공감하고 도와주는 분들이 생겼어요.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어요. 근데 어떻게 하면 해결할지 모르겠는데 좀 도와줄 수 없을까요? 이렇게 자꾸 이야기 하다보면 사람들이 모여요. 그렇게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 해결이 100이라면, 이제 25정도 채운 것 같아요.

문의: 041-574-9897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글: 지역콘텐츠발전소 정수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