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 건을 이름에 새긴 ‘태조산’
태조 왕 건을 이름에 새긴 ‘태조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7.11.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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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따라 오는 짙은 산 내음에 아찔한 여름날

태조산은 천안을 대표하는 산이다. 누구든 한 번쯤은 올라 천안시내를 한 눈에 품었을 법한 친근한 산. 혹은 산을 오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산자락에 자리한 음식점이며 커피숍에 들르거나, 입구의 각원사를 방문하는 길에 슬쩍 눈에 담았을 산이다.

그렇게 친근하건만 태조산 이름의 유래를 알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유왕골, 유량동, 안서동의 이름이 태조산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아는 이는 또 몇이나 될까.

7월 15일 진행한 도솔 둘레길은 태조 왕 건의 흔적과 이야기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기회였다. 동시에 어디에서 또 만날까 싶은 솔바람에 그저 황송했던 세 시간. 이날 걸은 구간은 동국조경화원을 출발해 태조산 입구 - 청송사 - 정자 - 구름다리 - 대머리바위 - 예비군훈련장 - 유왕골약수터 - 왕자산 - 상명대 입구다.

천안의 숨어 있는 이야기를 품은 태조산 =

금세라도 굵은 방울을 툭. 떨어트릴 것처럼 잔뜩 울상인 하늘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한동안은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바짝 타버리는 것만 같아 안타깝더니, 이젠 또 연이은 비에 한숨. 그래도 한 곳 한 곳 디뎌 보기로 한 내 고장에 대한 ‘의리’로 신발 끈을 꼭 조였다. 그리고 길을 나섰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고 곧 굵어졌건만 그러면 그렇지. 걸음을 멈출 리는 없었다.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비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출발 전 이날 오르는 태조산 구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태조 왕 건과 지명에 얽힌 유래가 이날의 주제. 천안시가 적은 내용에 따르면 ‘서기 930년 고려의 태조 왕 건이 친히 이곳에 올라 오룡쟁주의 지세를 살피고 천안도독부를 설치하여 후삼국통일의 전진기지로 삼았으며 이 산 줄기에는 고려 태조가 등장한데서 유래한 태조봉과 마점산 장대산이 있고 산자락에는 왕자산토성지와 유왕골 유량동 성말 고정 둥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고 되어 있다.

굳이 설명이 없었다 하더라도 태조산과 인근 곳곳에서 태조 왕 건의 이야기는 확인할 수 있다. 도솔 둘레길을 조성하고 매월 걷기를 진행하고 있는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 교장은 “남한에서 태조 왕 건의 흔적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천안”이라고 말한다. 조금만 오르면 만나게 되는 ‘성불사’는 태조 왕 건이 왕위에 오른 후 도선국사에 명해 전국에 짓도록 한 사찰 중 한 곳. 왕이 머물렀다 해서 이름 붙여진 ‘유왕골’, 식량을 보관했다는 ‘유량동’, 그리고 군사들을 쉬게 하였다는 의미가 이름에 남은 ‘안서동’ 등 태조 왕 건의 흔적은 지명에 남아 천 년 역사를 가로질러 지금 이 시대에도 이어져 간다. 고작해야 백세인생이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이다.

 

천안에 남은 태조 왕 건의 흔적 검토에 천안시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6월 천안시청사에서는 ‘고려 시대 천안의 역사와 문화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천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려와 태조 왕 건의 기록과 유물 등의 내용을 서로 공유했고, 학술대회 내용을 토대로 역사문화 콘텐츠화, 관광자원 연계 등의 방안을 찾을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로써 천안과 함께 생각나는 단어에 호두과자, 독립기념관에 이어 태조 왕 건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나무와 풀이 연주하는 빗소리 음악과 솔바람의 환영 =

태조산에 담긴 이야기를 품고 걷기는 시작이다.

비가 오니 처음엔 평소 버릇대로 우산을 펴거나 우비를 입거나. 하지만, 곧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집어던지고 몸을 내맡기니 새로운 자극이다. 작정하고 비를 맞아본 게 언제였는지 새롭다가 오랜만에 느끼는 짙은 냄새에 아찔하다. 일상이었으면 비에 조금이라도 젖을까 봐 재촉했을 걸음이 대놓고 여유롭다. 비가 있어 숲이 전하는 내음이 진하고 나무와 풀의 연주도 있으니 어느새 발걸음이 장단을 맞춘다. 걷는 동안 계속 변화무쌍하게 찾아오는 짙은 산내음은 촉촉이 비 내리는 이날 아니면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그 역시 제대로 매력적이다.

조금 더 올라서니 솔바람길이 반긴다. 태조산 솔바람길은 유량동에서 안서동에 이르는 트래킹 코스로, 태조산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해 충남도와 천안시가 함께 조성했다. 청송사∼제1팔각정∼왕자봉∼구름다리∼성불사∼제2팔각정∼유왕골 약수터∼각원사 구간이다. 걷기에도 좋을뿐더러 걷는 내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답답한 사무실 또는 건물 안의 냉방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태조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를 건너 대머리바위에 서려니 제법 훈김이 나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천안 전체의 풍경을 품어 마음이 트이고 시원한 솔바람 마사지, 얼음냉수같은 유왕골 약수까지 만나니 더위는 저 멀리 자리 잡는다. 그러니 그저 잠시 머물러 쉬다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늘 그러했듯 많이 오갔기에 잘 알고 있다고 했던 태조산이건만 그곳에는 천안이 품은 이야기와 자연이 주는 선물이 머물고 있었다. 익숙해 편안하고 새로워 설레는 내 고장 만나기는 그래서 의미 있는 시간일 터. 8월에는 또 어떤 신선한 발견을 이어가게 될까. 8월의 도솔 둘레길 걷기는 성거산에서 또 이야기를 잇는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