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다⑥ - 왕의 남자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가 깃든 ‘은석산’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다⑥ - 왕의 남자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가 깃든 ‘은석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7.11.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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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파헤친 후 비로소 알게 된 산 속 깊은 풍경

지명은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다. 천안(天安).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도시. 지명에 최고의 찬사가 담겼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의미를 지녔음에도 정작 천안의 본 모습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천안을 소개할라치면 오래도록 뜸을 들이게 된다.
3년 전 고장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도솔 둘레길을 찾고, 걷기 시작했다. 이들은 천안을 상징하는 오룡쟁주를 중심으로 12구간을 정리해 매월 한 구간씩 걷고 있다.
천안아산내일신문은 천안시민들과 함께 도솔 둘레길 12구간을 함께 걸으며 구간을 소개하는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민들이 직접 내 고장을 알아보고자 하는 소중한 마음과 함께 도솔 둘레길의 아름다움과 곳곳에 숨은 천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편집자 주>

추석명절을 쇤 하늘은 대놓고 파랗다. 높고 푸른 하늘을 도화지 삼아 점으로 선으로 흔적을 남긴 구름은 자연이 선사하는 그림. 시원한 듯 쌀쌀한 듯 상쾌한 바람이 어우러지니 밖으로 나서기 그지없이 좋다. 느릿한 걸음에도 머리카락을 흩날려주는 바람이 있고 눈 찌푸리지 않아도 온전히 모습을 내주는 하늘이 있으니 완벽한 조합이다.

10월 14일 진행한 도솔 둘레길은 은석산이다. 많은 일화를 남긴 어사 박문수의 묘소가 있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도 많아 걷는 중간 중간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천안시는 은석산 등산로를 ‘어사 박문수 테마길’로 조성해 두었다. 그와 함께 지난 여름, 엄청났던 폭우로 천안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한 곳이 은석산 인근이기에 이후 모습에 궁금함도 컸다.
10월 도솔 둘레길은 고령박씨 종중재실에서 출발해 정자 - 은석산 정상 - 박문수어사묘 - 은석사 - 고령박씨 종중재실로 되돌아오는 구간이었다.

 

 

가을 아침 파란 하늘 아래 유쾌한 걸음 =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네.’
1991년 양희은씨가, 2017년 아이유가 건넸던 ‘가을아침’의 노랫말 한 소절이 현실로 다가왔다. 삼삼오오 모이는 대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흘깃 바라본 하늘에 가을아침의 공기까지 어우러지니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딱 노랫말이었다. 그런 기대 때문이었을까. 10월의 도솔 둘레길은 가장 많은 인원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오전 8시에 모인 출발장소는 고령 박씨 종중재실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고령 박씨 종중재실은 많은 일화를 남긴 어사 박문수(1691∼1756)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1987년 충남도 문화재자료 제289호에 지정되었고, 1990년에는 원래 재실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재실을 지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윽고 출발. ‘능선바람소리길(종중재실-꽃동산길-정상)로’ 올라 ‘계곡물소리길(정상-박어사묘-종중재실)’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출발에서 정자까지 오르는 길은 비교적 거친 호흡을 필요로 하는 구간. 걷는 구간이 내내 이러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서서히 들려는 찰나 바로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 올라 숨을 고르고 막 솟으려고 하는 땀을 식히며 바라본 풍경은 역시 장관이다. 가을날 청명한 하늘이 허락했기에 가능한 전망이 마음속에까지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상쾌한 바람, 시원한 전망과 함께 은석산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 보니 산란해 마음 복잡했던 일상도 모두 대수롭지 않아진다. 정자 옆에는 어사 박문수에 대한 일화가 적힌 표지가 있어 재밌는 옛날이야기를 전한다.

걷기 좋은 자연과 이야깃거리 가득한 천안의 명소 =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걷기 좋은 길이다. 조금 오를라 치면 곧 평지. 호흡 고를 필요 없이 찬찬히 걸어도 충분하다. 계절의 배려와 은석산의 넉넉함이 어우러진 가을날의 산책을 즐기노라면 잠시 후 은석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는 박문수 어사 묘를 들를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크게 조성된 묘소에 놀라움을 표시하니 도솔 둘레길을 인솔하는 구자명 교장(한마음고등학교)은 어사 박문수를 향한 영조의 총애가 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한다. “영조는 왕비의 자로 태어난 왕이 아니기에 정통성에 대해 계속 위협을 받았고, 당시 이인좌의 난은 영조의 왕권에 대한 강력한 위협이었다. 그런데, 이를 평정해 영조가 왕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큰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어사 박문수다. 영조의 총애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어 어사 박문수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뒤따른다. 박문수는 어사로서의 행적은 물론이거니와 병조·호조·예조판서를 거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존되었다. 특히 백성들을 위한 많은 제도를 고안 또는 시행했는데, 대표적으로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기여한 ‘균역법’을 들 수 있다. 당시 박문수는 균역법을 넘어 양반 백성 등 신분에 상관없이 군포를 내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의 ‘호포론’을 주장했으나 이는 실시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라볼 때마다 달라지는 내 고장을 담는 걸음 =

박문수 어사묘를 지나 내려오는 길에는 지난 폭우의 실상이 아직 채 정돈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뿌리까지 뽑힌 나무들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계속 정비 작업 중인 흔적이 눈에 띄었다.
그 속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산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져 있다는 것. 은석산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은 달라진 모습에 굉장히 놀라움을 표시했다. 엄청난 폭우로 파헤쳐진 후 오히려 걸을 수 있는 길이 넓어졌고, 졸졸 흐르던 계곡물은 폭이 상당히 넓어진 데다 모습을 드러낸 암석들로 절경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연이 파헤친 큰 피해건만 시간이 지나니 또 자연은 절경으로 아픔을 다독인다.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자연의 계획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감탄. 그리고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  
똑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어느 계절에, 어떤 환경에서 바라봤는지에 따라 그 다가섬은 다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은 또 겨울은 저마다 그 시간만의 잔상을 남긴다. 그 잔상이 연결되어 기억 또는 추억이 되니 도솔 둘레산 걷기는 한 달 한 달 진행될수록 내 고장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 기대되는 또 다음 걸음. 11월의 도솔 둘레산 걷기는 망향의 동산(석교리) - 망향휴게소 - 요방1리 - 국사봉 - 천안 IC 전망대 - 두정동공단 - 두정역 - 두정동 선사유적지 - 노태산 - 백석동 현대아파트 구간에서 이야기를 잇는다. 도솔 둘레길은 이 구간을 ‘근대화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3년 전부터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 교장과 천안시민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천안 사랑 뽈레 뽈레 도솔 둘레길 걷기(이하 도솔 둘레길)’를 진행하고 있다. 구자명 교장은 천안을 상징하는 오룡쟁주를 중심으로 한 걷기 길 7구간과 천안의 명산 5곳을 묶어 총 12구간을 정리했다(천안아산내일신문 1228호 3면 참조).
11월 도솔 둘레길은 '근대화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망향의 동산(석교리) - 망향휴게소 - 요방1리 - 국사봉 - 천안 IC 전망대 - 두정동공단 - 두정역 - 두정동 선사유적지 - 노태산 - 백석동 현대아파트 구간을 진행(11월 11일 예정)한다.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고 싶거나 또는 구간에 대한 문의사항이 있는 경우 문자(010-6422-7580)나 이메일(wlzladl99@hanmail.net)로 연락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 구자명 교장이 조성한 도솔 둘레길 경로

1구간(박물관 길) : 천안박물관 - 청수고 - 삼거리 변전소 - 굴울마을 - 구성산(장태산) - 유량고개
2구간(왕건의 길) : 유량고개 - 태조산 - 유왕골 약수터 삼거리 - 각원사 - 24번 종점
3구간(깨달음의 길) : 청송사 - 태조산 구름다리 - 태조산 삼거리 - 유왕골 약수터 - 왕자산 - 상명대
4구간(‘나비날다’ 길) : 상명대 - 성거산 - 성거갈림길 - 운암저수지 - 망향봉 - 망향의 동산(석교리)
5구간(근대화의 길) : 망향의 동산(석교리) - 망향휴게소 - 요방1리 - 국사봉 - 천안 IC 전망대 - 두정동공단 - 두정역 - 두정동 선사유적지 - 노태산 - 백석동 현대A
6구간(선사시대의 길) : 백석동 현대아파트 - 봉서산 - 불당동 선사유적지 - 쌍용도서관 - 월봉산 - 쌍용고 - 삼일원앙A - 용곡중학교
7구간(오룡쟁주의 길) : 용곡중학교 - 일봉산 - 천안 상수도 관리소 - 남산 - 수도산 - 청수신시가지 - 천안박물관
8구간 : 태학산(풍세면, 태학산 자연휴양림 - 태학산 - 태학사 - 주차장)
9구간 : 광덕산(광덕면, 주차장 - 부용묘 - 장군바위 - 광덕산 - 광덕사 - 광덕사 주차장)
10구간 : 사산(성환읍, 직산읍, 남서울대 - 성산 - 직산 시름새)
11구간 : 은석산(북면, 병천면, 주차장 - 정자 - 은석산 - 박문수어사묘 - 은석사 - 주차장)
12구간 : 흑성산(목천면, 유량고개 - 패러글라이딩 장소 - 흑성산 - 일출장소 -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