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 - 이호열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전 푸른들영농조합 대표)
집중 인터뷰 - 이호열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전 푸른들영농조합 대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6.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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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농업 위해 후계농 양성과 농촌 복지 준비해야”

1974년부터다.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조차 유기농이 무엇인지 몰랐을 시절 이호열(62)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는 전국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관행농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우선 목표였던 과거 농촌 현실에서 유기농을 지속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과 철학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소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호열 대표는 지금까지 45년 넘게 유기농을 지속하며 농민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농업, 협업과 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농촌을 이끄는 일에 앞장서왔다. 또한 1996년 한살림아산생산자연합회를 시작으로 350여 농민회원 100%가 40억을 출자해 현재 12개 사업장에서 연 400억의 매출을 달성하는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하 푸른들)’을 키워왔다. 푸른들과 함께 30년간 아산에서 한살림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 이 대표는 전국한살림생산자연합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평생 지역농업을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농부의 길을 걸어온 이호열 대표를 만났다.

전국에서 유기농을 최초로 시작했다. 동기는 무엇인가

1974년 쌀농사로 시작했다.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일대는 이순신 장군의 14대손 이호열 대표가 살아온 이씨 집성촌이다. 산정리 농민들은 관에서 주도하는 화학 농업을 고집스럽게 거부했다. 이순신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지역 특성이 있었고 모태신앙인이었던 나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농법을 하고 싶었다. 깊이 생각해보니 그게 유기농이었다. 이때부터 유기농을 공부하고 실천해왔다.

판로 개척이 힘들지 않았나

80년대 서울과 직거래를 열었다. 그것도 전국 최초이지 싶다. 이익이 생기면 소를 사서 키웠다. 근데 망했다. 유기농답게 좋은 값을 받았지만, 유기농이 여전히 생소한 때라 소비가 늘지 않았고 지금처럼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서울 전체를 돌다 보니 물류비용이 많이 들고 수금도 어려웠다. 급기야 1984년 솟값 파동이 나면서 지역 청년들이 하나둘 떠났고 지역농업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너무 일찍 시작한 거 같다.(웃음)
그러다 1987년 한살림 운동에 뛰어들면서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푸른들영농조합을 12년이나 이끌며 상당히 규모 있는 성장을 일궈냈다. 푸른들영농조합이 성공적인 조직으로 인정받는 비결이 있다면

생산 가공 유통 소비가 순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996년 한살림이 지역순환농업정책을 발표했다. 덕분에 계획생산이 가능해졌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내겐 화두였다. 당시 아산에는 한살림 조합원이 19명이었는데 아산생산자연합회를 조직해서 지역순환농업에 참여했다.
쌀과 콩나물 두부 등을 생산유통하는 푸른들의 부산물인 콩깍지 콩비지와 지역에서 재배하는 유기 쌀의 쌀겨 등을 유기 축산 사료로 활용해 지역 유기 축산농가에 공급했다. 푸른들은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가공, 유통을 담당하고, 한살림천안아산소비자생협이 판매를 책임지는 지역순환 경제체제가 된 것이다.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농·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 개인의 힘보다는 함께 가려는 전체의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현재 푸른들은 푸른들축산(유기 사료) 한들식품(한우 가공유통) 면 단위 영농조합(제터먹이 송악골 어진고을 아름드리) 등 총 12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거대한 조직을 이끌려면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농업을 지속하는 농민들 삶의 복지를 설계하려고 푸른들을 만든 거였다. 사람과 조직 관리가 어떻게 쉬울 수 있겠나. 제 이익만을 챙기려는 농사꾼을 보면 얄미웠다. 이럴 땐 평생 생명운동을 해오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을 되새겼다. 장일순 선생은 ‘니가 그 사람 속에 들어가 보았냐’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게끔 가르치셨다.

이 대표의 제안으로 제터먹이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발했다. 순익을 배당하지 않는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 조합원들의 불만은 없었나

물론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조합원들이 제터먹이의 ‘사회적 의미’에 동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농업소득만으로 삶의 질을 높이긴 어렵다. 넉넉함을 떠나 베풀고 나누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지역에 봉사하고 인재를 키우는 일에 이익을 쓸 수 있다. 지역을 이끄는 건강한 조직이 많아지고 협업 협력이 잘되면 농촌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푸른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현재 농사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층이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농촌이 유지될 수 있을까. 농촌의 마을공동체가 남아 있게 하려면 후계농을 육성해야 한다. 푸른들은 조합원 자녀가 농업 관련 대학에 진학하면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주고 있다. 푸른들 직원들이 대학원을 진학할 때도 장학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농업관련학과에 진학하는 자녀들은 거의 없다. 안타깝다.

지속적인 농업이 가능해지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농업을 하겠다고 들어오는 청년들이 있어도 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적으로 배운 농업과 실제는 다른 데다 기존세대들은 청년들을 위해 양보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다. 농사만으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농촌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농민들의 노후 복지까지 책임지는 농업의 필요성이 매우 절실해졌다.
농촌의 복지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유기농업이 도태되면 도시민들도 안전한 먹거리를 취하기 어려워진다. 지속 가능한 농업은 농민과 소비자, 정부가 함께 책임져야 할 국가의 우선 과제다. 이게 바로 생명운동이다. 특히 국가는 목숨을 걸고 후계농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농민과 농업이 살며 국민 전체가 살 수 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