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 - 음악미식가 나사렛대학교 조대성 교수
집중 인터뷰 - 음악미식가 나사렛대학교 조대성 교수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5.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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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행복의 원천은 음악과 아이들이에요”

“음악이 좋았다. 중학교 다닐 때였다. 무심코 들은 파이프오르간 소리…. 신비로웠고 숭고함이 느껴졌다. 평생 나를 이끈 음악과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절 거의 다 그랬듯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연주 음반을 살 형편은 더더욱 안됐다. 하지만 매일같이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신비롭게 귓가에 맴돌았다. “없는 형편에 용돈을 긁어모아 레코드 가게를 뒤져 아쉬운 대로 백파이프 음반으로 달랬던 적이 있어요.”
음악미식가로 불리는 나사렛대학교 조대성 교수의 음악 입문기다.

조 교수가 보유한 음반만 해도 무려 6000여 장이다. 장르 불문이다. 중2 때부터 모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콘솔 피아노와 한국에서 보기 힘든 하프시코드(쳄발로), 포지티브 오르간까지 그의 집엔 보기 드문 악기가 많다. 그가 음악과 함께한 인생을 보여주듯 그의 집은 세계 유명 오디오는 물론 스피커까지 조 교수가 수집한 악기와 음반, 음향기기로 가득 차 있다. 최상의 음질을 즐길 수 있는 드넓은 뮤직룸은 마치 중세 음악가 집에 당도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조 교수의 음악에 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음악이 이끈 삶

가정 형편상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교회를 다니고 음악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깊게 의지했다. 행복했다. 어느덧 신앙과 음악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조 교수는 기특하게도 미리 인생 설계도를 그렸다. 교회음악에 깊이 매료됐기 때문에 교회음악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바흐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CD가 처음 나올 때 누나 따라 서울 구경 갔다가 바흐 칸타타 전집을 구매했다.
바흐는 어려웠다. 이걸 못 즐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다. 운동하듯 극복하듯 그렇게 5년을 들었다. 어느 순간 다른 세상을 보는 감동이 밀려왔다. 소름 끼칠 정도의 엄청난 감동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굉장히 다른 차원이었고 환희를 느낀 듯했다.
“바흐의 왕팬이라고 자부합니다. 아직도 질리지 않은 가장 이상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바흐 작품은 버릴 게 없어요. 끊임없이 흐르는 생명수 같아요.”

“세상 모든 음악을 다 듣고 싶었어요” =

 

오디오 기기
오디오 기기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듣고 싶었다. 하루도 음악 없는 삶을 살지 않은 것 같다.

나사렛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교회음악 전문가가 되고 싶어 97년 미국 이스턴 나사렛 대학에 진학했다. 일반 음악학 학위를 먼저 받았다. 2년 만에 마치고 미국 북가주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전례음악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바흐는 교회 전례음악에 기초를 두고 작곡했다. 결국 바흐를 모르면 교회음악을 제대로 전공했다고 할 수 없다. 조 교수는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진학해 교회음악 박사과정 지휘전공을 공부했다. 바흐를 완전히 꿰차고 있던 그였지만 무려 7년을 공부했다.

음악, 특히 교회음악으로 전문가 대열에 합류한 그는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In Search of Lost Time’ 타이틀의 음반을 작업했다. 조윤성의 기발한 즉흥반주에 고음악 발성인 그의 목소리를 덧입힌 아름다운 음반이었다.

“죽음을 앞둔 성가대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두 달 내내 이 음반만 들으셨어요.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지막 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눈물로 인사하셨죠. 이 한 분만으로도 음반을 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평생 음악을 듣다시피 한 그다. 그러한 조 교수의 음악감상법은 어땠을까.

“라이브가 최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상적인 공간에서 음악의 특징을 가장 잘 받쳐주는 오디오와 가장 어울리는 스피커를 통해 들으면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고 더 즐겁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인지, 어떤 턴테이블과 어떤 스피커가 그 음반을 최상으로 연주할 수 있는지 그는 척척 구분해낸다. 그리고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음악을 즐긴다. 음악으로 귀가 활짝 열려 있어야 가능한 경지다. 

 

”사운더블 예술단은 내게 활력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조 교수는 성당에서 9년간 음악감독 일을 맡아 했다. 보수가 좋았고 대우도 괜찮았지만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모님 건강이 편치 않았고 오래도록 타국생활로 고국이 그리웠다. 그때부터 조 교수는 나사렛대에서 강의를 펼치고 있다.

음악실
음악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가장 마음에 든단다. 지난해부터는 발달장애인합창단 ‘사운더블 예술단’ 지휘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조대성 교수는 이 아이들을 만나는 게 매우 행복하다.
“이 아이들이 좋아요. 사랑스럽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해서 정말 기뻐요. 삶의 즐거움이죠. 빈 소년합창단보다도 뜻깊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연결해준 조명숙 아르크 이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려요.”
온갖 음악에 심취해본 음악미식가 조대성 교수. 그가 최상으로 여기는 연주는 바로 사운더블합창단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