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쯤 풍경 하나
여기쯤 풍경 하나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4.01.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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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산책을 다니는 한적한 길이 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뭔가 할 일이 생각나지 않지만, 우두커니 앉아있고 싶지 않을 때, 저녁 먹고 배가 그득해서 걷고 싶을 때, 운동은 하고 싶은데 멀리 가고 싶지는 않을 때 입던 옷에 슬리퍼만 신고도 부담 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던 길이다. 집에서 나와 대로변을 따라 걷다가 조금만 벗어나면 서오능 숲이 있다. 그 한적한 숲속이 내 마음속 호흡과 삶의 질서를 잡아 주는 힐링 장소이다.

늦더위가 한창이던 휴일 늦은 오후, 그날도 습관처럼 그 길을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6차선 대로변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 하나가 오래도록 내 발걸음을 붙들었다. 자주 지나치는 길인데 오늘 처음 그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의 각도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른 것인가. 처음엔 “꼴 꼴 꼴” 소리가 청각을 사로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야트막한 돌절구 위에 대나무 막대 반쪽을 잘라 삐딱하게 내리꽂아 물이 떨어지게 장치했다. 작은 조롱박 하나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어 물을 떠먹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그 주변엔 들꽃들이 올망졸망 놓여있고 주변에 이끼도 자라고 있다.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탄성이 나왔다.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니 카센터와 천막 가게 사이에 멋진 풍경이 연출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대로변 삭막해 보이는 그곳에 반 평도 안 되는 애교스러운 풍경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미소까지 번지게 했다. 장난스럽게 예쁜 간판도 보였다. 두 줄 체인에 나무 옹이가 그대로 박힌 단면을 타원형으로 잘라서 손 글씨로 썼다. 이름하여 ‘여기쯤 풍경 하나’ 그 순간 아! 하고 짧은 탄성이 나왔다.

한때, 내 딴에는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어도 누군가 한 존재에게 그 사람의 가슴속 미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되지 않으리라. 공해에 찌든 삭막한 이 도시에, 일상에 지친 삶의 수레바퀴 위에, 관계의 서글픔에 목말라하는 도시인들의 가슴 위에, 짧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고 그 곁에서 쉬고 싶은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존재의 깊이에 깊게 파고들어 쉼을 허락하고 감정을 나누며 살고 싶었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깊은 그늘 같은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인간이 ‘나’라는 실체에 파고드는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아픔 속 거리마다 작은 풍경 하나쯤 만들어 잠깐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부처는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팔고(八苦)의 아픔을 논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고통을 앓아야 하며 이어서 괴고(壞苦)와 행고(行苦)를 거쳐야만 한단다. 괴고(壞苦)란 원인과 결과에 따라 모든 존재가 고정됨 없이 항상 변화하여 수시로 무너지는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을 보고 살아야 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고통,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 이는 행고(行苦)로 ‘나’라는 실체에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고통을 말한다. 인간의 심신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오음(五陰)과 오온(五蘊), 그중 오온(五蘊)은 물질과 정신을 다섯 가지로 분리한 것으로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에서 오는 고통이다. 이렇게 여덟 가지 고통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겪어야 하는 팔고(八苦)다.

이 거대한 물결인 인인애(忍人愛)의 회오리들을 내가 어이 다 감당하리오. 인생을 살면서 팔고의 관문을 통과하여야 노후의 순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 스스로 존재의 성찰도 아직 못하고 있는 나 아니던가. 분명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나이 60이 넘으면 많은 것을 두고 누리고 여유가 생길 줄 알았다. 아니,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또 그만큼 공허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였다. 애초에 너무 거한 꿈을 꾸었던 것일까. 미천한 내가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는 상상이 조크였던 것인가.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결정하는 거였고 단지 나는 도구가 되는 거였다. 그저 죽는 그 순간까지 꾸준히 나는 내 몫의 바닥짐을 짊어지고 주변과 상생하며 가노라면 먼 훗날 후세들이 결정해 주는 인생 성적표였다. 그것도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내려지는 평가였다. 가장 근접해 있는 가족들에게조차 성실치 못한 내가 다른 누구의 가슴 미어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고, 100층 빌딩도 첫 삽부터 시작이랬지? 어딘가에 구겨 던져놓았던 내 마음을 다시 끄집어냈다. 꼭 완벽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가 최고일 필요가 있을까.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를 할 수는 없지.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이념에 배신하지 않고 그대로 살면 되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지. 끝이 어딘지 가늠하지 말고 그냥 가 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디쯤 닿아 서 있겠지.

그래, 다시 한 발짝 희망의 발걸음을 떼어보자. 언제 어디서건 내가 서 있는 그곳에 그 주변에 걸맞은 풍경 하나쯤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향해.

글 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