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철학사산책07]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신성한 장소
[천안철학사산책07]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신성한 장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4.01.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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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있게 이어가야 하는 이 시점에 2023년에서 2024년으로 해도 바뀌고 해서 잠시 분위기도 환기할 겸 또달리 색다른 이야기를 하나 덧붙여보고자 한다. 물론 시작점은 앞서 소개했던 우리의 철학자 곽청창이다. 지난번에 곽청창의 시에서 ‘해함(海涵)’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서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는 넓고 큰 포용력을 풀이해봤었다. 그래서 이참에 아예 곽청창의 철학을 ‘해함의 철학’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함’이 어려운 한자말이니 다시 쉬운 우리말로 바꿔보면 ‘바다품’을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해함의 철학’의 옆에 나란히 ‘바다품의 철학’이라는 말을 함께 붙여두면 되겠다.

혹시나 ‘바다품’이라는 합성어를 이용해 뭔가 작품을 만든 이들이 없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최근에 인디가수로 유명한 최동희 가수가 역시 동일한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 이런 우연의 일치라니.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니 곽청창의 시와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바다 海涵天日晩(해함천일만)

꽃은 일년 내내 붉구나. 花續一年紅(화속일년홍)

- 곽청창의 시 중에서

노을이 뜨거운 몸을 담그는 곳에

- 최동희의 노래 ‘바다품’ 중에서

저녁해가 지는 바다 풍경을 보고 바다가 노을을 ‘꽃’처럼 또는 ‘뜨거움’으로 품어내는 모습으로 비슷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최동희의 노래는 바다의 포용력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동안 산업폐기물을 해양투기하는 바람에 바다의 아픔이 커져만 가고 있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는 하다.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바다의 포용력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곽청창의 ‘바다품의 철학’에 대하여 현대적인 차원에서 주제곡으로 최동희의 ‘바다품’을 선정하기로 했다. 인터넷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틀어놓고 기분좋게 휴식하고 그러면서 곽청창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 한번 찾아서 들어보시라. 노래가 아주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수의 목소리도 무척 감미롭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풀어놓고자 하는 진짜 색다른 이야기는 그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시작해야겠다. 2023년 12월31일은 일요일이었다. 오전에 출타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버스 400번을 타고 앉아서 2023년의 마지막날을 무엇으로 기념할까 궁리해보았다. 그러던 차에 버스가 독립기념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 오랜만에 독립기념관이나 한번 휘휘 둘러보고 집으로 가자. 중앙진입로가 매우 황량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이 날의 독립기념관 분위기는 삼삼오오 짝지어 걸어다니는 많은 관람객들로 풍성해보였다. 이것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정말로 이젠 계절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전천후 관광 명소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돌아봤기 때문에 다 아는 전시물들을 조용히 산책하듯 다시 둘러보는 것도 내 나름의 취미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젊은 부모를 보는 일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아이가 손짓하는 전시물에 대해 잠시 주저앉아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의 모습! 아무튼 관람객들을 유심히 관람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날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독립기념관을 찾은 것이기도 했다. 원삼국시대의 마한의 영역을 알아보기 위해 지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기념관 제1관 겨레의 뿌리 전시관에서 고조선 이후의 여러 나라라는 이름의 지도. 마한의 위치가 아산만 일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쳐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립기념관 제1관 겨레의 뿌리 전시관에서 고조선 이후의 여러 나라라는 이름의 지도. 마한의 위치가 아산만 일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쳐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립기념관 제1관인 겨레의 뿌리 전시관에는 선사시대 전시물들이 제법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고조선 이후의 여러 나라들의 영역을 나타내주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만주 쪽으로는 부여와 고구려가 있고 함경도 쪽으로는 옥저와 동예, 그리고 한반도 남쪽에는 마한, 변한, 진한, 이렇게 삼한이 자리잡고 있다. 마한의 영역은 가운데에 아산만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경기 일부지역까지, 남쪽으로는 전북 일부지역까지 이르고 있다. 아산만에서 내륙으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바로 천안이다. 이 지도로만 보면 천안은 마한의 중심부, 아니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이 지도에는 삼한을 동그라미 속에 표시하고 ‘천군과 소도, 계절제’라는 설명문구도 달아놓았다. 오홈! 내가 진짜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소도(蘇塗)’인 것이다. 소도에 대해 가장 오래된 것이면서 가장 잘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는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다. 서진(西晉) 시대(265-316)에 진수(陳壽, 233-297)라는 역사가가 저술한 역사책이다. 최근에 중국 4대 사서 속의 한국 관련 기사만을 오려내서 번역한 책 『고조선과 동이』(김호숙·마석한, 2022, 한국학술정보)가 나왔는데 원문과 대조해서 번역어를 달아주는 친절한 책이다. 이 책에서 ‘소도’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

우제국각유별읍 명지위소도 입대목 현영고 사귀신

=또 모든 나라에는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을 소도라고 한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고 귀신을 섬긴다.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好作賊

제망도지기중 개불환지 호작적

=어떤 도망자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으니 도둑 만들기에 좋다.

- 『고조선과 동이』(205쪽)

위의 인용문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도망자라도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으니’라는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어떤 도망자라도’라는 조각과 ‘아무도’라는 조각이 특히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도에서는 그 안으로 찾아온 도망자에 대해 절대로 선별(選別)하지 않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흉악한 죄를 지은 도망자이든 가벼운 죄를 지은 도망자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원래 함께 지내던 이웃 도망자이든 전혀 낯선 이방의 도망자이든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과연 피하기를 바라고 찾아온 도망자에 대해 있는 그대로 품어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언급했던 바다품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 곽청창에게는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바로 포용력의 상징이었다면, 시대를 옛날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저 먼 선사시대로 가서 마한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찾아들어가면 바로 신성한 장소인 소도가 바로 바다와 같은 포용력의 실제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도 이야기를 전하는 『삼국지』의 저자는 이런 모습에 대해 ‘도둑 만들기에 좋다’라고 비판을 한다. 소도의 세계관과 윤리관에 대해 『삼국지』의 세계관과 윤리관은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이를테면 ‘타자(他者)’로 취급해버리고 있다. 여기서 ‘타자’란 중국 중심의 시각에서 ‘오랑캐’에 해당된다는 것을 일컫는다. 『삼국지』가 올바르고 소도는 틀리다. 『삼국지』가 ‘일자(一者)’이고 소도는 ‘타자(他者)’다. 이런 논법의 표현인 것이다. 『삼국지』는 소도의 포용적 신앙을 배척하는 나름의 합리적 사상을 들이미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고대한국이 고대중국과 갈라지는 중요한 근거를 파악하게 된다. 소도의 포용적 세계관이 고대한국의 고유종교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고대중국과는 다르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삼국지』의 소도 비판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곽청창의 바다품의 철학은 어쩌면 저멀리 2천년 전 마한 소도의 세계관에 기원을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내고 이윽고 나는 2024년의 첫날을 어떻게 기념하며 보낼지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천안에 마한 시대를 알려주는 선사 유적지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이런저런 자료들을 통해 알아채고서 그중에 대표 유적이라 할 만한 청당동 유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 <디지털천안문화대전>의 청당동 유적 표제항목에서 알려주는 주소를 곧바로 찾아가기는 어려웠다. 주소체계가 바뀌기 전의 옛 주소를 현재 주소체계와 잘 대비하는 변환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인데 곧바로는 못하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작업하기로 했다. 대신에 청당동을 그저 한 바퀴 돌아보며 산책해보기로 했다.

천안청당초등학교 전경. 마한 대표 유적인 청당동 유적이 있는 지역의 학교인데 아이들에게 마한의 존재를 알려주는 안내판 같은 것을 설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2024년 첫날 길바닥에 발자국을 찍어가며 걸어본 곳이 청당동이었고, 그나마 공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천안청당초등학교 교정을 기념으로 사진에 담아보았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고 공부하고 있는 이곳이 그 옛날 소도가 있었던 마한의 심장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바로 당장에라도 알려주고 싶어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다. 새해 첫날 휴무일 교정은 텅비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마한의 역사를 알려주는 공상을 하며 나의 2024년 첫날은 그렇게 채워져갔다.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