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강박증
저장 강박증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4.01.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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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부들부들 떨며 선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숨이 멎을 듯하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흔들었다. 악몽을 꾸었다.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귀여운 갈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빨간 공을 두 손으로 공손히 주인에게 가져다준다. ‘어머나 너무 귀여운 고양이네.’ 멀리서 바라보던 나는 계속 고양이를 주시했다. 고양이는 주인에게 같이 놀자고 따라다니며 발에 밟히듯이 방해한다. 주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양이에게 성질을 부린다. 뭔가 화난 일이 있는 것 같다. 주인은 뭔가 작두 같은 기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철없는 고양이가 까불며 덤비다가 작두 틀에 끼여 살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성질이 난 주인이 고양이를 찢어발기어 어디론가 휙 던졌다. 그런데 하필 내 앞 덜미에 떨어져서 갑자기 숨이 턱 막혀버렸다. 온몸에 소름이 확 돋고 호흡이 멈추면서 부들부들 신음하고 있었다. 옆지기가 나를 흔들어 깨워 보니 꿈이었다. 어젯밤 고양이에 대한 뉴스 보도를 보면서 인상을 찌그리며 한참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래서 그런 험한 꿈을 꾸었나?

저녁 뉴스 시간에 한 아파트에서 죽은 고양이 사체 수백 마리가 나왔다는 영상이 보도되었다. 어렴풋이 영상이 그래픽으로 가려졌지만, 얼핏 보아도 어지럽게 쌓여있는 물건들과 고양이 사체들이 고물상을 방불케 했다. 홀로 아파트에서 외로움에 고양이를 의지하며 살다 벌어진 일이었다. 길고양이를 데려와 계속 한두 마리 합세하며 키우다 죽으면 냉동실에 넣고 쌓아두고 치우지 않고 또 데려오고 수년 동안 반복되면서 빚은 수난이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졌다. 동물 사체에서 나오는 썩은 냄새로 주민들 불편 신고가 잦았는데 주인의 동의 없이 집안을 수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주민복지센터 여직원이 할머니와 유대관계를 가지며 설득한 결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일인 가구 수가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더불어 동물과 동고동락하는 가구들도 많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저장강박증’이라고 했다. 혼자 산다고 해서, 동물과 함께 산다고 해서 저장강박증이 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공허와 우울증으로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 채우려고 하는 심리가 문제가 되었다.

서울에서 살 때 같은 동네 주민의 집에 온갖 쓰레기들이 난무하고 집 안팎이 온통 못 쓸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목격한 일이 있다. 단독주택인데 집안에 발 디딜 틈도 없거니와 지붕은 물론 건물 밖 담장 밖까지 온갖 생활 도구들이 즐비하게 방치되어 쓰레기 더미를 방불케 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일도 결국 저장강박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저장강박증은 필요 여부와 상관없이 저장하려는 욕구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불안과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습관이나 절약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심한 경우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이다. 의사결정 능력이나 행동에 대한 계획 등과 관련된 뇌의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랜디 프로스트(Randy O. Frost)와 게일 스테키티(Gail Steketee)가 저장강박증세의 사례를 연구하여 공저한 《잡동사니의 역습 Strff-Compulsive Hoarding and the Meaning of Things》에 따르면, 저장 강박에 관해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물질주의자들은 소유물을 성공과 부를 과시하는 외면적 징표로 이용하는 반면, 전형적인 저장강박 증상자는 공적 정체성이 아니라 내면의 개인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물건을 저장하며, 그들에게 물건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과시하는 장식적 허울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존재를 알리는 방법의 일부라는 말이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가족 간에도 끼어드는 추위를 막을 수는 없는 세상이다. 물질만능과 빠르게 변화하는 기계화된 개혁의 물결에 적응 못 하는 누군가는 존재하리라. 다소 복잡미묘한 정신세계로 인해 어떤 관계이든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어려운 세대임은 자명한 것 같다. 각자 자기를 표출하고자 하는 표현 방법도 다르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다른 강박증 치료보다 저장강박증은 치료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임상 심리적으로 물리적인 치료와 약물치료가 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뇌파의 움직임에서 오는 행동장애를 치료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의 관심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외롭고 소외된 느낌에서 오는 우울함과 적막감이 물건을 쌓아 놓아야 안심이 되는 현상으로 대치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실험사회 심리학 저널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실린 미국 뉴햄프셔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이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쏟기 쉬우며,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찾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이러한 저장 강박 증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 할머니는 복지센터 직원과 더불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주민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집을 말끔히 치우고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재발을 방지하리라.

보통 사람도 가끔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자꾸만 쌓아두려는 경향이 있다. ‘혹시 언제 이 물건이 필요할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보관해 두려는 마음. 어느 땐 아주 오래되어 소통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정리 못 하고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다. 혹시 나도 ‘사람 저장강박증’ (?)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수선하다. 창고나 집안도 연락처나 쓸데없는 생각조차도 말끔히 정리 정돈을 해야 할 것 같다.

비워야 다시 또 채워진다니…

글 김순례 

* 일부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