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 부모를 위한 ‘헨젤과 그레텔’
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 부모를 위한 ‘헨젤과 그레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2.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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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도 생명이 있어서 세상에 태어나 쓰임을 다하면 사라집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글로 읽히다 어느 순간 소멸합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제 생겨났는지도 모르는 오랜 옛이야기가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 이야기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의식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까요? 오랜 생명력을 지닌 옛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엄마로서 고민이 듭니다. 옛이야기는 주로 거칠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 그림책에 나옵니다. 잔인하지요. 아이에게 읽어줘도 괜찮을까? 교육적이라는 이유를 먼저 내세웁니다.

『헨젤과 그레텔』 그림 형제 (글), 앤서니 브라운 (그림) / 비룡소
『헨젤과 그레텔』 그림 형제 (글), 앤서니 브라운 (그림) / 비룡소

저는 잔인하다고 하는 <헨젤과 그레텔>의 힘을 믿었습니다.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저처럼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힘을 믿는 출판사들이 많았습니다. 출판사마다 쏟아낸 <헨젤과 그레텔>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출판사마다 이야기가 달라 책 선택이 어려웠습니다.

옛이야기 공부를 시작했고 조금씩 알게 된 내용을 써보겠습니다. 마녀를 죽이는 잔인한 내용부터 해보겠습니다. 마녀는 확실하게 죽어야 합니다. 마녀가 살아 있다면 아이들은 불안합니다. 마녀가 나를 괴롭힐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야기일 뿐이야, 실제로 마녀는 없어.”라고 안심시켜도 꿈속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레텔이 마녀를 죽여야 합니다. <헨젤과 그레텔> 등장인물 중 가장 나약한 인물인 그레텔이 죽여야 합니다. 가족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은 그레텔을 보며 나도 위험에 처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주체적인 자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녀가 애매하게 사라진 책은 아이를 혼돈에 빠트립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텔은 혼자 오리를 타고 강을 건넙니다. 같이 건너자는 오빠의 제안도 거절합니다. 오빠 없이 혼자 할 수 있다는 그레텔의 의지입니다. 그레텔은 이미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은 채록하여 문자로 옮겼습니다. 그림 형제와 샤를 페로가 대대적인 문자 작업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엄마를 새엄마로 바꾸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이야기를 글로 남기려니 끔찍했을까요? 친엄마를 새엄마로 바꿉니다. 굳이 새엄마로 바꾸지 않아도 친엄마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 뉴스는 요즘도 많습니다. 그림 형제와 샤를 페로가 친엄마로 살려두었다면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합니다. <헨젤과 그레텔>도 새엄마가 나옵니다. 아이를 버리자고 합니다. 막상 버리고 나니 아이가 걱정됩니다. 엄마니까요. 엄마는 새엄마로, 마녀로 아이 앞에 나타납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엄마와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이를 혼내고 “방에서 꼼짝 말고 있어!” 소리칩니다. 그러곤 아이가 잘 있는지, 심하게 혼낸 건 아닌지 엄마는 아이 방을 몰래 들여다봅니다. 새엄마든 마녀든 모두 엄마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있으면 엄마가 모든 걸 해 줍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엄마가 다 챙겨줍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유치원, 초등학교를 경험합니다. 엄마를 벗어나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걸 아는데 엄마에게 머무는 것이 편합니다. 엄마의 편안함을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는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도 아이를 떼어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이 가는 길에 도움이 되고 싶고, 불을 밝혀주고 싶습니다. 내 새끼만큼은 고생을 덜 했으면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게 두어야 하는데 자꾸만 무언갈 더 해 주려 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엄마가 자기들을 두 번이나 버렸음에도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갈 곳이 집 뿐이기도 하지만 엄마 품이 안전하다는 걸 압니다. 엄마도 아이를 버리고선 걱정이 됩니다. 아이 앞에 먹을 것을 놓아줍니다. 과자 집을 떼어먹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엄마는 멈추지 않고 아이를 조정합니다. 꼼짝 못 하게 가둬놓고서 살이 포동포동 오르길 기다립니다. 엄마가 원하는 욕망의 덩어리로 자라도록 기다립니다. 갇힌 헨젤은 순순히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엄마를 속이면서 생명을 이어갑니다. 아이를 조정하던 엄마는 기어코 죽임을 맞이합니다. 아이의 제대로 된 독립이 엄마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극도의 처방을 <헨젤과 그레텔>이 말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자식의 온전한 독립을 알면서도 자식을 손 놓기 힘든 부모와 그 부모 밑에서 꿋꿋이 독립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이야기의 숨은 뜻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 뜻 하나하나를 아이에게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그저 이야기를 읽고 듣고 즐기면 됩니다. 이야기의 힘을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세요. 나도 눈치채지 못한 내 마음이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이야기는 곧 나이며 우리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끊기 어려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 오랜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합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보다 엄마에게 더 필요한 책입니다. 오늘도 아이를 혼내고 후회하고 계시나요? <헨젤과 그레텔>을 읽으며 엄마를 찾아보세요. 부모인 내 모습을 찾아보세요. 내일은 나아진 내가 되어 있을 겁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