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노래 부르며 그림책을 읽어요”
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노래 부르며 그림책을 읽어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3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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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 주변 가까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고, 한때 자동차 후진도 ‘엘리제를 위하여’가 알려주었습니다. 특정 음악을 들으면 해당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장학퀴즈가 그랬습니다. 그 음악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었습니다. 영화 죠스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상어 등장 음악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 드라마나 영화가 기억되는 건 음악이 한몫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우리 뇌를 자극하여 기억을 도와줍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락은 기억하기 쉽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읽어준 그림책을 아이가 잘 기억했습니다. 음악의 힘이란 걸 모르고 아이가 신통방통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그림책을 읽는 방법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읽어줍니다. 주인공 구리와 구라가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들 이름은 구리와 구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요리 만들기와 먹는 일’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니 읽어주는 엄마도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림책에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악보가 있다고 해도 볼 줄 모르니 난감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불렀습니다. 랩인지 민요인지 동요인지 알 수 없는 가락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같은 그림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가락은 수정되고 굳어졌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구리와 구라’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글자는 몰라도 가사와 가락을 외워버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노래를 부르라는 글은 없는데 노래를 부르고 싶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글이 운율에 맞게 쓰여 있습니다. 오선지만 놓이면 그림책 한 페이지는 악보가 될 것입니다. “만두 만두 설날 만두 아주아주 맛난 만두, 숲 속 동물 모두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리듬이 느껴집니다. 전래 동요, 잘잘잘 가락에 맞춰 불렀습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작가가 쓴 글이라 다소 수월했습니다.

우리 작가가 쓴 글이라고 다 성공한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그림책의 첫 페이지는 “봄이 왔어. 순이네 집에도 꽃들이 활짝 피었어.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개나리꽃…….”입니다. 제 맘에 꽃이 앞서 피었습니다. 우리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이 그림책을 우리 소리로 부르고 싶었습니다. 민요답게 한껏 부르고 있는데 딸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엄마, 그렇게 하지 마.” 어린 딸은 민요도 처음이었을 테고, 서툴게 부르는 엄마도 처음이었을 테니 얼마나 낯설었을까요?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윤규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림

<홀랄홀라 추추추>는 글이 없는 번역 그림책입니다. 글이 없는데 번역가는 있습니다. 다양한 곤충들의 소리가 그림책에 있습니다. 그중 귀뚜라미가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귀뚜라미는 실력 있는 연주자이란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 소리가 양쪽 페이지를 가득 채웁니다. 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어주느냐였습니다. 바이올린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친숙한 멜로디를 찾았습니다.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주제가 always with me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곡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가장 친숙한 부분을 허밍으로 소리 냈습니다. 허밍으로 표현한 바이올린 소리가 그림책을 넘어 교실을 채웠습니다.

꽤 긴 문장도 읽다 보면 멜로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리 왕자>에는 “다섯 번째 오리가 네 번째 오리에게 물어봅니다.”라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첫 번째 오리에게 갈 때까지 반복됩니다. 반복되는 문장을 노래로 읽어줍니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문장을 노래로 읽어주니 아이들이 외워버립니다. 노래가 끝나면 “앞에 엄마 있어?”라는 대사를 합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기에 <오리 왕자>는 극놀이를 하기에 적합한 그림책입니다. 노래를 부른 <오리 왕자>는 짧은 뮤지컬이 되었습니다. 대본은 그림책입니다. 대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극놀이 장이 마련되니 “앞에 엄마 있어?”의 대답은 배우마다 새롭게 만들어 냈습니다. 즉흥 뮤지컬이 펼쳐졌습니다.

<똥방패>는 자기 등에 똥을 싸는 똥 벌레 이야기입니다. 전체 이야기를 노래로 간결하고 쉽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달달 무슨 달’ 가사에 ‘똥똥 무슨 똥’을 넣어봤습니다. “똥똥 무슨 똥, 방패같이 둥근 똥, 어디에다 싸나?”까지 부르고 잠시 멈추자 “내 등에 다 싸지.” 아이들이 바로 이어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랫말이 완성되었습니다. 노랫말 만들기는 그림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야 가능합니다.

『똥방패』를 보는 아린·아윤·아인, 삼둥이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주고자 노래를 활용한 방법은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그림책에 노래 부르는 내용이 나오니 읽어주는 이도 노래를 부르며 읽어야 합니다. 둘째, 그림책 글이 운율에 맞게 쓰여있습니다. 리듬감 있는 글을 읽으니 알맞은 동요가 떠오릅니다. 그 동요에 맞춰 읽어줍니다. 셋째, 그림책에 악기 연주 내용이 나옵니다. 그 악기 연주를 허밍으로 부르며 읽어줍니다. 넷째, 그림책의 반복되는 문구를 노래로 부릅니다. 단순하고 익숙한 가락의 반복으로 쉽게 외워져 놀이 활동으로도 가능합니다. 다섯째, 그림책 감상 후 스토리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후, 노래로 마무리합니다.

다섯 가지 방법은 모두 잘 아는 동요의 멜로디를 활용했습니다. 물론 새롭게 만들 수도 있으나 기존 동요나 익숙한 노래를 활용하는 것이 수월합니다. 읽어주는 이도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거나 익히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듣는 이도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저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딸이 제 노래 듣기를 거부하는데도 노래 부르며 읽어주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활용해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었던 것은 가수처럼 잘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한 소절이나 일정 부분으로 짧기에 부담이 적습니다. 어설프게 불러도 듣는 이가 즐거워하고 그림책을 오래 기억합니다.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랍니다. 노래 부르며 읽어주기의 효과, 충분하지 않나요? 음악의 힘이 크다는 것을 재차 확인합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