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어쩌다가?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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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쇠파리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윙윙거렸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 쓰기 반 반장으로 일하면서 의무감이 발동한 건지 어렸을 적 매미를 잡던 힘이 발휘된 건지 옆에 놓인 잡지를 들어 쇠파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일 후, 속이 편치 않았다.

산골 마을에 밀이 익어갈 즈음이면 수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긴 나무막대기 하나씩 어깨에 걸치고 밀밭으로 갔다. 밀 목을 잘라 밀 껌을 만들어 막대기 끝에 붙이고 감나무, 배나무, 살구나무에 우는 매미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매미들은 날마다 좁은 나무상자 안에서 푸드덕거리다 죽어 갔다. 곤충 채집명목하에서였다. 땅속에서 7·8년을 인내한 매미 처지에서 보면 황당한 죽음이라는 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간 대학살을 보여준 박홍규 소설 『아돌프 히틀러』 빅터프랭클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나 엘리 위젤 『나이트』 소설 속에서의 죽음들이 내가 잡은 매미들과 겹쳐졌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곤충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었다.

1947년 3·1절 제주 관덕정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사내아이가 채여 넘어지고 그냥 지나친 기마경찰을 향해 그걸 본 군중들이 소리쳤고 경찰이 총을 쏘았다. 소년의 죽음, 그 후, 종북이니 빨갱이니, 죄를 씌워 죄 없는 사람들을 총살했다. 그리고 일 년 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이 불을 켰고 어머니 젖무덤같이 평온하던 오름 들에서 불길이 솟았다. 임시정부에 맞선 무장대가 봉화를 올린 것이다.

역으로 대청 단원 등 우익청년단원들은 좌익활동가로 알려진 사람들의 집만을 골라 민가를 불태웠고 제주학살을 점화시킨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무장대원과 서북 청년단원(정부의 하청원)과 정의의 철퇴라고도 불리었던 경찰이 뒤섞여 급기야는 자기편을 죽이는 진퇴양난 進退兩難이 벌어졌다.

이러한 일들은 5·10일 선거를 앞두고 제주사태를 조기 진압하기 위한 미군정 수뇌부의 조치였다고 한다. 1947년 3월 1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8개월. 가장 오랜 기간 살상이 행해졌다. 제주도민 삼만 명 정도가 희생됐다.

송악산 둘레 길에서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탄약고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일본이 파놓은 굴을 이용해 동족을 죽인 곳이 아니던가. 섬뜩했다. 한을 품은 채 푸르렀을 한라산과 바다, 녹색 산허리에 구름이 하얀 띠를 둘렀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는 진하게 쓸쓸해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났다고 평화를 꿈꾸던 제주 사람들의 참극은 제주 전역에서 행해졌다.

그 당시 만들어진 일본의 격납고인 정뜨르비행장(제주 비행장)과 알뜨르비행장(모슬포 비행장) 등지에서 무장대원을 처형하고 바다에 수장시켰다.

알뜨르비행장 일본격납고
알뜨르비행장 일본격납고

제주도엔 한날한시에 제사를 맞아 집집이 불이 켜지는 이유다. 무덤사잇길을 걸어 나온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알 리 없다. 그저 어렴풋이 먼 나라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어쩌다가 남의 나라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던가, 어쩌다가 동족을 사살하는 험난한 고통과 고충을 직면하고 억울한 죽음까지 맞았단 말인가.

제주가 고향인 하영선 작가는 그녀의 저서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에서 4·3을 중심에 두지 않고는 우리 현대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유채꽃이 만발하고 맥주보리 익어가는 아름다운 섬, 청정바닷물이 시원하게 답답한 가슴을 열어주는 힐링의 섬, 그런데 알고 보면 돌도 사람도 속을 비워내고 바람을 품고 산다. 예전에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신 제주 공항과 탑동은 유령 세력인 임시정부의 경찰들로 짓밟혔던 곳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국제도시답게 세계인을 부르는 반듯한 호텔들도 의연하기만 했다.

민족의 평화를 지키려 했던 제주도민들은 타의에 의한 분단을 원치 않았고 반쪽 정부수립을 반대했으며 수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의의 제주도는 유혈이 낭자했으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됐다. 9월 9일 북쪽에서도 수립이 되고 민족 분단체제는 이때 확정됐다. 그런데도 이미 8월 중순께부터 경찰의 특별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다 한다.

모든 게 지나간 것인가. 어린 시절 개구리와 매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수많은 수와 나, 또한 그들은 어디서 목숨 부지하며 살고 있을까.

70년이나 흐르고 난 지금 제주도는 평안한가. 더불어 이 나라와 국민은 평안한가?

그런데 그날 쇠파리는 어쩌다가 강의실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글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