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철학사산책 01] 철학이 바르면 세상도 바로잡힌다
[천안철학사산책 01] 철학이 바르면 세상도 바로잡힌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2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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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천안지역사 산책노트를 8회 정도 연재하다가 갑자기 개인 일정이 너무나 바빠져서 중단했었다. 그후 몇몇 분들의 요청(심지어는 독촉)이 있는데다 미진한 이야기를 채워야 한다는 나름의 생각에 다시 일정을 정리하고 마음먹고 글 쓸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어지간히 시간이 난다 싶으니까 이번엔 역대 최고였던 그 엄청난 폭염이 찾아와 도저히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었다. 그러고는 마냥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 토요일 그러니까 20231118일 충남학생교육문화원 소공연장에서 천안과 충남의 동학관련단체들이 마련한 <도올 김용옥 선생 초청강연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에 행사준비팀으로 함께 하면서 하루종일 도올 선생의 천안동학 유적지 동행 답사와 강연장 안내활동을 했는데 무슨 마음이 그리 동했는지 다시 힘을 내 천안지역사 이야기를 하자는 뜻이 생겼다.

세성산 동학위령탑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
세성산 동학위령탑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생겼어도 몸이 잘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중단됐던 연재를 다시 잇는다고 생각하니 좀 지겨운 느낌이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다른 컨셉으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궁리를 한 끝에 옳거니! 용감하게 천안철학사를 글감으로 삼으면 되겠다, 두루뭉수리 천안사상사를 쓰는 것보다는 아예 뚜렷한 인상을 던질 수 있는 철학이란 말을 써보자, 이건 분명히 철학자 도올 선생의 강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생긴 아이디어겠지만 그러니 더욱 재미있지 않은가, 도올 선생을 핑계로 거창하게 한번 천안철학사를 소개해보자, 이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실실 웃고 말았다.

그렇다. 그 실실 웃음 때문에 약간 마음이 가벼워져서 지금 이렇게 겨우 글을 쓰고 있다. 연재글의 큰 타이틀을 천안철학사산책으로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번씩 천안이 품고 왔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설렁설렁 풀어보고자 한다. 아마도 예상하건대 천안에 무슨 철학자들이 있었어?” 하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같다. 하하하.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천안에 인연을 맺은 철학자들이 의외로 많다. 아직 그 명단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궁금하게 해야 이 연재글을 더 많이 찾아보기라도 할 것이 아닌가.

사실 천안 출신의 현대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에 관한 글만 전문적으로 써도 아마 평생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쓴 철학책들이 오죽 많은가! 그런데 그의 고향인 이곳 천안이란 도시가 그런 철학자를 배출할 만큼 특별하고 매우 철학적인 도시인가를 되돌아보면 저으기 계면쩍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유명한 철학자가 태어난 곳이니까 한 마디로 천안은 철학도시다!’ 이런 주장을 하기가 좀 민망해진다 이 말씀이다. 철학자가 자기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철학자가 된 것이지 어찌 그 철학자의 태생지 도시가 알아서 먹여주고 가르쳐줘서 그렇게 고매한 철학자를 만들어준단 말인가. 오히려 도시는 몸을 조신하게 굽히며 당신이 훌륭한 철학자로 성장하고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읊조리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의 변화를 고대하며 천안은 철학도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싶다.

1883년 목천판 동경대전 간행의 주역 김은경 접주 묘소에서 절을 올리는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
1883년 목천판 동경대전 간행의 주역 김은경 접주 묘소에서 절을 올리는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

도올 선생의 강연장 무대에 커다랗게 비춰졌던 큰글자 인내천안(人乃天安)”은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이용길 회장의 전언에 의하면 사람이 하느님이 돼야 세상이 평안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용길 회장이 그 넉자를 만들고 도올 선생이 그 풀이를 밝혔다고 한다. 원래 19세기 중반 창시된 동학이 내걸었고, 그래서 한국의 근대를 열었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내걸었으며, 내친 걸음으로 19193.1대혁명의 주역이자 동학의 후신 천도교가 내걸었던 인내천(人乃天)’ 세 글자가 천안(天安)’이라는 지명과 합성된 인내천안(人乃天安)”은 그 역사적 내력을 알고 보면 더욱 무게감이 커짐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나는 사람이 하느님이라는 표현 속에서 사람이 철학자라는 표현을 끌어내보고 싶다. 철학자가 따로 있어서 철학자가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철학자라는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사람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하느님같은 철학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다면 철학도시란 특정한 철학자들의 도시를 일컫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함께 살고 있는 모두가 철학자인 도시가 바로 철학도시인 것이다. 그런 고로 나는 주장한다. “천안은 철학도시다!”

아울러 이런 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웬만한 철학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다 보면 줄줄이 맨 남성들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비록 숫자로도 적고 역사적인 주목을 별로 못 받았다 하더라도 여성들의 관련 이야기를 빼먹지 말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주 흥미로운 해월 선생의 말씀이 있다. 해월 선생은 동학 제2 교조 최시형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최근 진본이 발굴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1883년 목천판 <동경대전> 출간을 총지휘했으니 천안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천도교 경전 중 <해월신사법설>에 실려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의미심장하다.

<부인수도(婦人修道)>

묻기를 우리 도 안에서 부인 수도를 장려하는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아이를 기르고,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을 부인이 감당하니, 주부가 만일 정성없이 음식을 갖추면 한울이 반드시 감응치 아니하는 것이요, 정성없이 아이를 기르면 아이가 반드시 충실치 못하나니, 부인 수도는 우리 도의 근본이니라. 이제로부터 부인 도통이 많이 나리라. 이것은 일남구녀를 비한 운이니, 지난 때에는 부인을 압박하였으나 지금 이 운을 당하여서는 부인 도통으로 사람 살리는 이가 많으리니, 이것은 사람이 다 어머니의 포태 속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

위의 인용한 말씀 중에서 이제로부터 부인 도통이 많이 나리라라는 예언적 구절을 매우 관심깊게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도통(道通)’을 이룬 사람을 그야말로 철학자라고 한다면 부인 도통을 특히 명시했으니 그때로부터 여성철학자가 많이 세상에 나오리라는 예언이 아니겠는가. 지금에 와서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천안철학사산책연재글의 예비편으로 끄적여보았던 이 글을 마무리지어야 하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학이 나오고 동학농민혁명이 이뤄졌고 결국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철학이 바르면 세상도 바로잡힌다.”

글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송길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