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보다 무거운
침묵보다 무거운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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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늦장마가 시작된 걸까. 어둡고 칙칙한 습기가 주변을 감싼다. 며칠째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는 듯 갑갑했다. 마음에 환기와 바람도 쐴 겸 비옷과 장화를 걸치고 큰 우산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집 근처 공원 안 정자에 앉아서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포말과 동그라미를 넋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승용차 소리가 나서 보니 사람이 내려서 무언가 팻말 같은 것을 여러 개 포개어 공원 입구에 내려놓고 다시 차를 타고 사라진다. 곧이어 누군가 피켓을 안고 공원 안쪽으로 이동 한다. 무심코 그들의 행동을 눈으로 따라가며 지켜보게 되었다. 신부동 평화공원 자그마한 광장에 세 남자가 서성인다. 서로가 무슨 얘기를 하며 피켓을 한쪽에 세워놓고 조끼처럼 생긴 천을 각자 어깨에 두르며 묶고 있다. 비는 오는데 우산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매우 불편해 보인다. 우산 속 실루엣이 얼핏 70대 어르신도 있고 대부분 50~60대 남자들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각자가 맡은 무언가가 있다는 듯 배낭을 메고 잠시 서성이더니 피켓 하나씩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 글씨를 얼핏 읽어보니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결사반대’ ‘전쟁 위기 굴욕외교 XXX OUT!!’라고, 쓰였다. 내 눈길도 덩달아 바빠진다. 그것들을 챙겨 들고 건널목을 건너 신세계백화점 앞을 지나 터미널까지 행진하며 많은 이들이 오가는 길에서 보이며 알리려는 것 같다. 비가 계속 내리 퍼붓고 있다. 건널목까지 내 눈길이 뒤쫒으며 그들을 지켜보는데 함께 나온 남편이 저만치서 소리치며 빨리 가자고 손짓한다. 눈길은 그쪽을 향하고 몸은 남편 쪽을 향해 빠르게 걷는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 그 장소에서 모여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삼보일배(三步一拜)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나라 정치의 허술함과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저 이 땅의 평범한 아빠, 아저씨들이다. 다들 생업을 뒤로하고 잠시 틈을 내어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을 향해 발 벗고 나선 참이다.

무심하게 몇 주인가 시간은 흘렀다. 늦은 오후 장 볼 일이 있어서 마트 쪽을 향해 공원을 지나치고 있었다, 공원 안쪽 저만치 먼젓번 그 복장의 남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슬그머니 다가가 그들의 모습을 관심 갖고 지켜보았다. 비 오던 날 그때와는 다르게 여러 명이 모여서 몸을 풀며 맨손체조를 하고 우르르 건널목을 건넌다. 일순 일렬로 정렬을 하고 삼보일배(三步一拜) 오체투지(五體投地)다.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휴대용 확성기와 마이크에 대고 구호를 외친다. 나머지 남자들이 따라 구호를 외치며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을 한다. 맨 뒤쪽에서 그들을 따르는 남자의 손에는 먼저 번 구호를 쓴 피켓이 여러 장 들려있다.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른 가을날이다, 오후의 석양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이글거린다. 지나치는 대부분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관심도 없다. 몇 사람은 뒤를 돌아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힐긋거린다. 나도 마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뭔지 모를 뭉클함과 찔림이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그 며칠쯤 안과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건널목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주부를 보았다. 앞치마 위에 천 조끼를 입고 큰 사거리 건널목 모퉁이마다 서너 명이 같은 모양으로 서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히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천주교 여성단체에서 나온 사람들 같았다.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었다. 앞치마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염수를 먹일 수 없다.’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피켓에는 ‘핵 오염수 투기 결사반대’라고 쓰여 있다. 아무 말도 행동도 없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웃집 엄마, 아줌마들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절대 아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대단한 그들의 의지를 보면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점점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저들은 자기가 서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적 시위로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국민들에게 알 권리와 찾아야 할 권리를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 땅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향해 함께 한목소리를 내자고 온몸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솔직히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를 얼마 앞두고 국회는 물론 국내외 여론이 뜨겁게 시끄러웠었다. 핵 오염수 투척 시작 이후 언론과 방송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양은 냄비근성’ 국민들이라고 일축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식어버린 핫 이슈 여론이다. 이 시대에 언론은 뭘 하고 있는지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과 시청 앞, 청계로는 뜨거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어 행진하는데 공영 방송사 그 아무도 보도하는 프로가 없다. 국민들 귀 막고 눈 가린다고 못 듣고 안 보일까? 보통의 서민들과 함께 방송의 흐름에 따라 뜨겁게 흥분했다가 맥없이 조용한 상황에 적응하며 답답함을 안고 있었다.

외교와 국익이 국민의 생사보다 더 중요할까. 국민은 없는데 나라만 존재할 수 있을까?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교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눈앞의 것에 연연하여 국가의 거시적인 안목이 묻혀버린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산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순간도 없으면 인간은 죽음이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은 농약과 살충제로부터 땅으로 슬그머니 스며드는 공포를 걱정한다. 바다로 소리 없이 스며드는 더 큰 공포를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생명 보존권을 지켜주는 안전한 나라에서 보호받으며 살기를 국민 누구나 꿈꾼다.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예의를 지켜 얼룩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두 손 모은다.

가을비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심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다. 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 아스팔트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마치 꼼짝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 같다. 그리할지라도 봄은 다시 꼭 오겠지.

글 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