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그림책 속 친절한 면지”
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그림책 속 친절한 면지”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0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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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표지는 대부분 단단합니다. 앞표지를 넘기면 왼쪽 면도 단단합니다. 오른쪽은 얇은 종이입니다. 이 양쪽을 면지라고 합니다. 면지는 재질이 다른 표지와 본문을 이어줍니다. 서로를 풀칠로 이어줘서 풀칠면이라고도 합니다. 앞표지가 있으니 뒤표지도 있습니다. 면지는 앞과 뒤, 두 곳에 있습니다.

면지는 표지와 본문을 이어주는 경첩 역할로도 충분해서 아무 그림 없이 공란으로 놓이기도 하고, 하나의 색깔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그림이 가득 차기도 하고 간략한 그림으로 그림책 내용을 응축하여 보여주기도 합니다. 앞면지, 뒷면지 그림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면 면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관심이 갑니다. 앞면지는 표지와 마찬가지로 전개될 그림책에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뒷면지는 다 읽은 그림책의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면지를 특색 있게 살린 그림책을 살펴보겠습니다.

<강아지똥>(권정생 글·정승각 그림)은 길에 떨어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강아지똥이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거름이 되는 내용입니다. 저는 <강아지똥>을 읽기 전에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그림에 더 집중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림 작가라면 강아지똥이 빗물에 녹아 거름이 되는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저는 <강아지똥>을 다 읽은 후 면지 그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앞, 뒷면지는 자기 몸을 녹여 거름이 된 강아지똥을 상징했습니다. <강아지똥> 그림책의 최고 그림은 면지라고 봅니다. 이 그림을 유아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했습니다. <강아지똥>은 앞면지와 뒷면지가 같은 그림입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이게 뭘까?”라는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앞면지에서는 “별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이게 뭔지 알게 될 거야. 다 읽고 또 얘기하자.” 뒷면지에 이르니 아이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게 뭘까?”라는 질문으로 앞면지에서는 전개될 그림책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뒷면지에서는 다 읽은 그림책의 내용을 상기합니다.

<리디아의 정원> (데이비드 스몰 그림·사라 스튜어트 글)은 표지를 넘기면 앞면지에 잘 자란 꽃과 채소가 가득합니다. 꽃과 채소에 눈길을 주니 흐뭇해지면서 결말도 해피엔딩일 것 같습니다. 리디아는 부모님과 헤어져 당분간 삼촌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리디아는 삼촌 집에 갈 때 봉투에 꽃씨를 담아갑니다. 삼촌 집에서는 할머니, 엄마, 아빠께 편지를 씁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삼촌에게 커다란 선물을 드리고 이야기는 끝납니다. 뒷면지는 집으로 돌아온 리디아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여전히 할머니와 꽃과 채소 가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바구니에서는 봉투가 떨어집니다. 씨앗이 든 봉투일 수도 있고, 리디아가 보낸 편지일 수도 있습니다. 리디아는 씨앗을 담아 삼촌에게 편지를 쓸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그림은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에서 앞으로 리디아에게 펼쳐질 희망이 느껴집니다. <리디아의 정원>은 앞면지에서는 공간적 배경을 알려주고, 주인공의 성향을 눈치채도록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뒷면지에서는 해피엔딩 결말을 부각합니다.

<슈퍼 거북> (유설화 글·그림)은 그림책을 보기 전에 작가가 직접 공연하는 1인극으로 먼저 만났습니다. 이야기에 흠뻑 빠진 저는 빨리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한 가지 걱정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슈퍼 거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계층의 어린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토끼와 거북이’를 모르는 아이도 있을 텐데 염려가 되었습니다. <슈퍼 거북>의 앞면지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6컷의 그림으로 실려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 출판사의 의도인지는 모르나 저의 고민을 해결해준 앞면지가 고마웠습니다. <슈퍼 거북>은 그림책 이해에 필요한 사전 정보를 앞면지에서 주고 있으며 뒷면지에서는 이야기가 끝난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사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색깔 손님>(안트예 담 글·그림)은 앞면지, 뒷면지가 공간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배경을 통해 주인공의 변화까지 알려줍니다. 이야기가 전개된 공간은 엘리제 할머니의 거실입니다. 똑같은 거실이 앞면지와 뒷면지에 있습니다. 다만 색깔이 다릅니다. 이웃과 소통 없이 혼자 사는 엘리제 할머니의 거실은 어둡습니다. 에밀이 찾아온 거실은 색깔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뒷면지를 본 아이들이 색깔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왜 달라졌을까?”라고 물으니 아이들은 엘리제 할머니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아이가 “선생님, 잠깐만요. 그림책 좀 줘 보세요.” 하고는 면지, 앞뒤를 번갈아 가며 다른 그림 찾기에 몰두합니다. 몇몇 아이들도 같이 찾습니다. “여기가 달라요.” 어둡게 표현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굳이 찾아내고는 뿌듯해했습니다. 아이들은 면지도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히 보는 독자임을 확인했습니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허은미 글·조은희 그림 / 나는별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허은미 글·조은희 그림 / 나는별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허은미 글·조은희 그림)은 앞면지에 그림도 글자도 없습니다. 노란색만 있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주인공 동구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또 해바라기 도서관 선생님의 재치에 감탄합니다. 뒷면지로 넘기니 많은 아이들이 쓴 글자가 나타납니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동구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받침 틀린 글자들이 반갑습니다. 저도 노란 접착메모지에 동구한테 힘을 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동구가 듣고 싶은 말뿐만 아니라 제목처럼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도 써봅니다. 이 뒷면지의 글자들이 그림책을 읽은 후 놀이 활동까지 안내하고 있습니다.

면지에 글자가 차지한 그림책으로 <지각대장 존>(존 버닝햄 글·그림)이 있습니다. 앞면지와 뒷면지에 주인공 존이 쓴 반성문으로 채워있습니다.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긴 반성문을 쓴 한국 아이가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 작가 존도 주인공 존도 영국사람이니까요.

병천고등학교 미용과 학생들
병천고등학교 미용과 학생들

그림책에서 면지는 앞과 뒤, 두 곳에 있습니다. 재질이 다른 표지와 본문 부분을 이어주는 기능을 합니다. 또 그림책 이해에 필요한 정보를 주며 다 읽은 그림책의 여운을 느끼게도 합니다.

앞면지는 주로 주인공을 알려주고 주인공의 성향과 공간적 배경도 알려줍니다. 주인공의 변화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감상에 필요한 사전 정보를 독자에게 미리 보여주기도 합니다. 뒷면지는 다 읽은 그림책의 이야기를 상기시켜 줍니다. 해피엔딩 결말을 더 부각합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독자가 주인공을 위로할 수 있는 자리로도 충분합니다. 그림책 읽기가 끝난 후 놀이 활동까지 알려줍니다.

그림책은 읽는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도입, 전개, 결말이 그림책 한 권에 있습니다. 도입은 표지와 면지, 속표지이며 전개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입니다. 뒷면지와 뒤표지는 결말에 해당합니다. 이 중 앞면지, 뒷면지는 친절합니다. 책 읽기와 친숙하지 않은 아이라면 그림책의 면지부터 살피길 바랍니다. 면지에는 글도 그림도 많지 않아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면지까지 볼 준비가 된 독자입니다. 그림책이 주는 정보를 놓치지 마세요. 그림책을 다 읽었다고 먼저 덮지도 마세요. 뒷면지와 뒤표지를 따라가세요. 내가 받은 감동을 다독여줍니다. 면지를 품은 그림책은 친절합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