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둥이
업둥이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9.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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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둥이가 들어왔다.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이름을 축복이라 했다. 유난히 애교가 많고 잘 웃었다.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컸다. 예쁘다고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입 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가고 자동으로 눈꼬리는 내려오며 웃었다. 하는 짓이 예뻐서 오가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축복이가 온 뒤론 산책길이 즐거웠다. 눈 내리는 겨울도, 밤 산책길도 축복 이와 함께 라면 든든했다. 덕분에 운동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사랑을 주었다. 이름 그대로 우리에겐 축복이었다. 업둥이가 들어오고 집안에 웃음이 많아졌다. 예쁜 숙녀로 자라난 축복이가 어느 날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 시커멓고 덩치 큰 녀석이 왠지 정이 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지 남자 친구라 하니 건성건성 봐 주었다. 어느 날 부턴가 배가 부르기 시작하더니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아이쿠, 임신을 한 거였다. 조심을 시켜야 했는데……. 이걸 어쩌지? 때는 이미 늦었다.

축복이는 갈색 얼룩무늬의 믹스견이다. 배부른지 두 달 조금 지나자 새끼가 태어났다. 강아지 임신 기간이 62~68일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밤새 진통을 혼자 겪으며 첫 출산인데도 스스로 탯줄 끊고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흡족한 얼굴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때론 동물이 사람보다 월등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비를 닮은 시커먼 녀석과 검은 얼룩이, 어미를 닮은 누런 얼룩이와 백구 이렇게 네 마리 강아지가 태어났다. 눈도 뜨지 않은 꼬물꼬물한 새끼가 더듬더듬 어미젖을 찾아 가는 것이 신기했다.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느라 엄청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여름에 태어나 산후조리 하느라 축복이도 주인도 애를 먹었다. 새끼들이 점점 자라면서 장난기가 늘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꽃 마당과 잔디를 다 헤집어 놓고 자기 집 밖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두 달쯤 되어 젖을 떼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분양을 했다. 예쁜 애들부터 간택되어 사라지고 비실비실 제일 연약한 백구 한 마리만 남았다. 남겨진 백구는 축복 이와 함께 본 집을 사수했다. 어미 사랑을 제일 많이 받는다 하여 이름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랑 이는 수컷이라 성장 속도가 축복이 와는 다르게 빨랐다. 어느 결에 자라나 어미보다 더 큰 등치를 자랑했다. 울음소리는 쇳소리를 내며 우렁찼고 낯 선 사람들을 경계했다. 암컷도 아닌 것이 질투심은 강해서 항상 밥 주는 것도 먼저 주어야 집안이 조용했다. 기다릴 줄을 몰랐다. 외출했다 들어와서 축복이 먼저 아는 척했다가는 온 집안이 다 떠나가도록 짖어댔다. 한마디로 인내심이 부족했다.

축복이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자존감이 높았다. 누구나 자기를 예뻐하고 당연히 사랑하는 줄 알았다. 사람이 다가가면 꼬리 흔들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쓰다듬으라고 애교를 떤다. 한 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준다. 날이 갈수록 얼굴이 평안하고 도도해보이기까지 했다. 긴 털을 날리며 목을 길게 빼고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는 고고한 늑대의 혈통 같았다. 그래봤자 믹스견 출신인데 언제나 자신감이 눈빛에 충만해있다. 사랑을 받는 만큼 기쁨을 주는 축복이는 함께 하고픈 존재였고, 더 많이 사랑하고픈 존재였다.

반면 사랑이는 태어나 젖먹이 때부터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연약하고 의기소침했다. 다행히 어미사랑은 실컷 받았지만 슬슬 눈치 보는 버릇이 남아서 비굴해 보일정도로 저자세였다. 먹는 양은 많고 그 만큼 대소변 양도 많아 청소거리도 많았다. 당연히 눈총이 뒤따랐다. 전원주택이지만 밤낮으로 눈치 없이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에게 핀잔 듣는 횟수가 잦았다. 은근히 민패를 끼치는 녀석이었다. 큰소리 한 번에 당장 꼬리 내리고 포복자세로 엎드린다. 아비혈통이 흔치 않은 검은 진도 개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사랑이는 태어나서 집 마당 밖을 나가 본 적도 없는 우주가 집 마당 안이었다. 목줄에 묶여 살다가 가끔 목줄이 풀려도 밖으로 나갈 줄도 몰랐다. 게다가 어느 날 부턴가 밤낮없이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울어대고 있었다. 이웃들이 쑥덕거렸다.

“키우던 개가 울면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어느 날 주인은 사랑이 집과 사랑이를 차에 실었다. 마침 주변 지인 집에 개가 필요했던 터라 아쉽지만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사랑이가 떠난 자리는 싹싹 쓸어내고 예쁜 꽃과 잔디로 그 자리가 채워졌다. 사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순구 서양화가 작품

아침이 밝았다. 다시 축복이의 전성시대가 왔다. 그녀는 높은 곳을 좋아했다. 새벽녘 해가 뜰 무렵이면 자기 집 지붕꼭대기에 올라가 뜨는 동쪽 해를 바라보며 주변을 살폈다. 제주 중산간 사방이 확 트인 그녀 집 주변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밝아온다. 일광욕을 즐기며 스르르 눈을 감은 그녀의 모습이 평안해 보인다. 감은 눈꼬리와 혀를 내민 입 꼬리가 웃고 있다. 때마침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여우꼬리처럼 길고 풍성한 꼬리 갈퀴가 빛을 받아 금빛으로 우아하게 흔들거린다.

축복이는 담 없이 살고 있는 옆집 언니네 강아지 이름이다. 담이 없다보니 나 또한 축복이 아기 때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한 이모이다. 축복이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가족이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문으로 만복이 들어온다는 옛말이 있다. 살다보면 고달프고 힘든 순간이 더러 있다. 그때 눈물 흘리기보다 웃어야 할 때이다. 고통이 없어야 웃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기 때문에 더 크게 웃는 것이다. 헛웃음이라도 웃으면 좋은 기운이 몰려온다. 크게 한번 웃어 보라. 안되면 소리 없이 웃어보라. 사람은 날개가 없는 대신 웃는다고 한다. 웃음은 가슴의 날개 짓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웃음꽃이란다. 웃음꽃이 여기저기 활짝 피어나 그 나비효과로 어지러운 현실세계가 조금씩 더 밝아지기를 두 손 모은다.

글 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