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회
물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9.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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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먹고 싶다고 ㅠㅠ.’ 딸이 뜬금없는 문자를 보내왔다. 먹고 싶으면 사 먹을 것이지 문자까지 보낼 일인가 의아했다. 곧이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서명서가 날아들었다. 가리는 음식이 많은 딸은 회를 무척 좋아한다. 우연찮게 독립을 수산시장 근처로 하게 됐고 싱싱한 회를 손쉽게 즐기는 기쁨을 자랑삼았다. 그런 소소한 기쁨마저 누릴 수 없게 될까 봐 딸은 울상이다.

여기저기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반대 서명서를 퍼 날랐다. 의도치 않은 곳에 서명서를 보내기도 했다. 정치적 이야기는 삼가 달라는 글을 받고 실수였다고 하니 죄송하다는 답이 왔다. 특정 당의 서명서를 보냈으니 정치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걱정스러운 엄마였고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의 심정이 앞섰다.

생명과 안전은 정치 논리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평범한 주부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정부는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소금값이 고공행진을 한다. 소금만 사놔서 될 일도 아닌데 주부들은 앞다퉈 소금 사재기에 들어갔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없었던 사재기가 펼쳐졌다. 주부들에겐 작금의 상황이 전시나 다름없다. 이렇듯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조금도 해소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30여 년 전 러시아 핵잠수함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문제를 두고 러시아에 강력하게 항의해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국제 협약인 런던협약을 개정하면서까지 오염물질 해양투기를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그랬던 일본이 얼굴을 바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고 하니 내로남불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오염수를 정화해도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는 제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체에 유입될 경우 체내에 축적돼 내부피폭으로 유전자의 변형을 초래할 수 있고 암과 같은 중증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숨이 절로 난다. 먹이사슬로 이어진 생태계가 어찌 될지는 뻔한 일이다. 일본은 안전성을 IAEA를 통해 검증받고 안전한 상태로 방류한다고 떠든다. 안전하다면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 방류하지 말고 자국의 생활용수나 산업용수로 써야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주변국들의 반발을 사가면서 버릴 일이냐 말이다.

2023년 8월 24일 일본은 전 세계인의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쏟아냈다. 137만 톤이나 되는 오염수가 30년 이상 바다에 뿌려진다니 무력감이 몰려왔다. 10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바다는 인류의 공공재다.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본의 행태는 가히 테러 수준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해양 방류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일본에 오염수를 대기 방출할 것을 요청했으나 처리 비용이 10/1수준인 해양 방류를 선택한 일본이다. 가장 빠르게 가장 경제적으로 오염수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전 세계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연일 강한 어조로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 여행 취소 등과 같은 반일 감정이 일본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정부는 항의는커녕 이해를 구하는 일본 정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 있다.

“국민들은 오염수 방류를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일본에 전해야 한다. 딸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90년대생인 딸은 이제 결혼을 해서 자식 가지란 소리는 하지 말란다. 90년대 생 친구들은 이제 아기 낳을 생각 싹 다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는 참치랑 김이랑 계란이 키우는 거 아니냐며 이제 어떻게 아이를 키울 거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얼마 전 놀러 온 딸 친구의 세 살배기 아들은 바다를 사진으로 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오염수 방류와 함께 미국 국방부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다는 뉴스까지 더해져 딸은 잠을 설쳤다고 했다.

얼마 전 초등 3학년 아이의 편지가 화제에 올랐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계곡과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라면서 오염수 방류를 대통령님이 허락을 안 하실 줄 알았는데 허락을 해서 울 것 같았다며 환경이 안 좋아지면 다음 세대 아이들은 어떡하냐고 그 생각에 잠이 오지 않고 대통령이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편지글이었다.

일본은 해외 지지와 이해가 방류 결단을 뒷받침해 주었으며 일본 외무성 간부는 한국이 긍정적으로 말해준 것이 컸다는 발언을 했다. 더하여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오염수 방류 문제를 의제로 두지 않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싶다. 다음 세대 아이들까지 생각한 초등학생과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딸이 잠을 설친 이튿날 물회를 먹으며 전화했다. 화를 많이 가라앉힌 듯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좋아하는 물회나 실컷 먹자며 자신이 오염수 방류 문제에 과몰입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조금 숨을 고르자고 했다. 하루 이틀 걸릴 문제 아니니, 예의주시하자고, 끈기를 갖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치지 말고 하자고. 딸은 오늘 먹는 물회가 자신이 먹는 마지막 물회라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딸이 소금 판매 링크를 보내왔다. 소금 자루에 신안 소금이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사놓아야 하긴 할 텐테, 김치가 제일 문제다. 소금 사놓고 나며 젓갈은 사시사철 식탁에 오르는 김은 생일상 미역은 생선은 어쩌란 말인가. 머리가 일순간 복잡해졌다.

글 김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