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이 계신 그곳은 편안하십니까
아버지, 당신이 계신 그곳은 편안하십니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9.0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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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지난 2011년 해일로 터진 원전 항아리 단지에 농축된 핵 오염수를 2023년 8월 24일 13시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상용하는 바다에 방류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흘려보내겠다고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무려 100년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당신이 소년기에 다녀왔다는 일본과 중국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강과 바다가, 섬이 그림처럼 잘 어울려진 곳은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 식구들이 시골 골짜기 밑자락에 살고 있을 때를 기억합니다. 흐르는 도랑으로 폐수를 버려도 무방하던 시절에 위 동네에서 잔치를 끝내고 폐수를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랑에 피라미 사체가 둥둥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죽은 물고기를 신문지에 쌓아 못쓸 물을 흘려보낸 당사자와 동네 사람을 불러모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역 감고 빨래하는 물에서 물고기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 모두 같이 모여 삽으로 도랑 주변 논을 깊이 파 웅덩이를 만들어 폐수를 받아 정화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과 동네 어른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피했다면 우리 철없던 아이들은 오염된 도랑물에서 미역을 감고 피라미 사체를 갖고 놀았을 것입니다. 모두 현명하신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는 건강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 오염수가 이미 바다에 방류되었습니다. 몇 개월 안에 우리나라 해변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연안에서 잡힌 생선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공상 영화에나 나오는 이상한 괴물이었습니다. 일본 총리 기시다가 텔레비전에 나와 오염수를 방류한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먹방을 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제 바다는 사진 찍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어질 것 같습니다. 방파제에 모여 낚시하던 태공과 모래사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대신 해변 방파제에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접근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세워질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조선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했던 독립 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을 비롯 5인의 흉상을 육군 사관학교 교정에서 뽑아내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민이 나서서 ‘그것은 아니다. 이유를 대라’고 항의하니 그들이 사회주의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독립투쟁을 하는 중에 어쩔 수 없이 러시아(구소련)에 몸을 의탁했고 다른 한 분은 반공적 사고가 강했던 분입니다. 다섯 영웅의 공통점은 좌우를 떠나 조선 독립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싸워 위대한 전공을 세운 분들입니다.

아버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세상이 요사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먼 여행을 떠나던 2015년 6월 어느 날, 유언처럼 했던 말들이 새록새록 되새김질하게 하는 요즘입니다.

그날 당신은 일터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아들을 찾았습니다. “바쁘냐, 집에 잠깐 들려라.” 나는 “네”라고 대답하고 퇴근 시간이 한참이 지나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 당신은 몇 번 더 전화로 어서 좀 오라고 했으나 일터가 바빴습니다. 빨리 가봐야지 하면서도 한편 구순 아버지가 항상 해오던 푸념을 하시겠지 하고 늦장을 부렸습니다.

일터에서 집까지 약 4Km, 차량으로 5분이 조금 넘었습니다. 넘어지면 코 닿는 정도의 거리였지만 저녁이면 일터 숙소에서 잠을 청하기 일쑤였습니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가면 당신께서는 종일 방안에서 접한 텔레비전 보도부터 고향 이야기까지 하나 놓치지 않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매번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자정을 훌쩍 넘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상적 푸념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저녁은 먹었고? 라고 묻던 물음도 없었습니다. 무엇에 쫓기듯 급하게 다짜고짜 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니 깐깐한 훈장처럼 구십 노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불행은 모두 일본 왜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이어온 남북분단은 물론 좌우 이념적 문제와 동족상쟁인 1950년 남북전쟁 모두 일본이 만들어 놓았다. 미쓰비시, 혼다 등 일제 물건이 좋다고 열광하는데 정신 나간 자들이다. 사실 그놈들 물건이 좋은 것은 우리 조선인의 피가 용광로에 녹아내린 탓이다. 왜놈들이 처음에는 돈을 벌게 해준다고 감언이설로 우리 동포를 꾀어 데려갔다. 그들의 거짓말은 얼마 가지 않아 들통났다.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모두 기피하자 강제로 끌고 갔다. 당시 강제노역에 끌려간 동포들의 나이는 열 살 정도의 아이들도 있었다.

그뿐 아니다. 왜놈들은 사람이 죽으면 뫼도 못 쓰게 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민뫼다(봉우리 없는 뫼). 우리 조선 사람 씨를 말리려고 했다. 항일 운동 혐의자를 연행해 가면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 손톱, 발톱 사이에 바늘을 넣고 고문을 했다. 왜경(일본경찰)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열 손가락, 발가락이 온전히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놈들이 오늘 다시 호시탐탐 독도를 넘보고 있다. 그들의 물건을 하나 팔아줄 때마다 왜놈들에게 독도를 어서 가져가시라고, 조선 침탈을 위한 준비를 하시라고 돈을 대어주는 것과 같다.”

밤이 깊어졌습니다. 옆에서 장단을 맞추던 어머니가 애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르는데 그만하고 자라고 했지만 못 들은 척 당신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태어나 열넷 나이에 만주로 어른들 심부름을 다녀왔던 추억을 더듬으며 중국은 땅이 넓은 것은 사실이지만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너무 더워 사람이 살기가 적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사방에서 바람이 너무 불어 뗏목 위에 집을 지어 놓은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 정상인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한 자연과 지역을 탓하는 것 같아 무어라 대꾸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분단과 남북전쟁을 겪고 비민주적 세월을 살아오면서 갖게 된 편향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논쟁과 그를 이은 박근혜 정부의 일본 강제 침탈과 친일매국노를 미화한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당신은 1940년대, 일본이 패망하기 전 십 대 때 친구들과 어울려 남원 읍내에 조선 독립을 촉구하는 항일 벽보를 왜경(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밤새 붙였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왜경이 눈이 뒤집혀 읍내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모두 잘 피해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전 벽보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선전전을 이끌던 청년 조직은 기민하게 일본 경찰을 무장해제 시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건국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때의 에피소드를 말씀하실 때는 구십 평생 과묵하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넘쳤습니다. 그 웃음을 대할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백 살 이상 사실 줄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한 달을 못 채우고 정신을 놓을 줄은 짐작조차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자행하고 있는 역사 왜곡에 대해 크게 상처를 받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습니다.

왜놈들을 무장해제 할 때 왜경(일본이 패망하고 왜경이 물러날 때)은 100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꼭 돌아올 것이니 기다리라며 일본도를 뽑아 들고 날뛰었다고 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들의 발악적인 표현이 100년이 안 된 지금 현실이 될 줄은 아예 짐작 못 했습니다.

지난 2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기념하는 다케시마 날(2월 22일) 독도 인근 해역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전범 국기인 욱일기를 달고 자위대가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또 며칠 전 경술국치일(8월 29일)에도 일본 자위대 군대와 함께 한국 해군이 독도 인근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저들이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우연이었을까요?

아버지,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유언 같은 말씀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너무 침통하고 가슴 아파 독립기념관을 다녀오며 아들이 당신을 부릅니다. (終)

글 최기영 마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