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책 읽기는 듣기부터!
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책 읽기는 듣기부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8.01 05: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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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글자가 빼곡합니다. 쓱 넘겨봐도 그림 하나 없이 글자만 촘촘합니다. 두껍기는 또 얼마나 두꺼운지 몇백 페이지입니다. 말 그대로 벽돌 책입니다. 이런 책에 코 박고 읽기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반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책 두께에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작은 글자로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합니다. 한 해 두 해, 작은 글자는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이럼에도 우리는 책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는 삶은 다르다는 걸 압니다. 몸이 잘 따라주지 않지만, 책을 읽고 싶습니다. 책 읽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금세 핸드폰을 보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책은 발견일까요? 발명일까요? 인류가 존재한 최초에 책은 없었습니다. 그 시절 인류의 뇌는 생존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생존이라는 유전인자는 우리 몸 깊숙이 들어 있습니다. 독서라는 발명품이 나타나고 우리 뇌는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도 뇌는 읽기에 적응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읽기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시기가 되었다고 해서 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훈련해야 길러집니다. 읽기 능력은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입니다.

이인숙 선생님(아침 독서 현장)
이인숙 선생님(아침 독서 현장)

그럼, 후천적으로 습득해 봅시다. 독서 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독서는 글자를 알아야만 가능할까요? 글자를 모르면 책을 볼 수 없는 걸까요? 인간의 어떤 행위가 독서의 시작일까요? 글자를 알고 눈으로 읽는 행위 이전에 어떤 것이 있길래, 그것이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길래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와 즐기지 못하는 아이가 있는 걸까요?

읽기의 시작은 듣기부터입니다. 주의 깊게 듣는 태도가 먼저여야 합니다. 엄마나 할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나 노래 듣기가 읽기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다음의 듣기는 누군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이나 옛날이야기입니다. 듣기의 시작이 독서의 시작입니다. 내가 들은 말들이 책 속에 글자로 존재합니다. 모든 말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옛날이야기나 읽어주는 그림책 듣기를 얼마나 자주 경험했느냐는 한 인간의 독서 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림책 속의 단어를 듣고 이해하고 생활에서 사용하려면 뇌의 어느 부분에 단어들이 저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장된 단어들이 많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누가 더 유리한 입장일까요?

『일러스트레이터 에런의 첫 번째 이야기』 안드레아 비티 (지은이),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천개의바람
『일러스트레이터 에런의 첫 번째 이야기』 안드레아 비티 (지은이),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천개의바람

성인은 벌써 유년기가 지나 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독서 능력은 노력과 훈련으로 길러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어린 시절의 풍부한 듣기 경험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혼자 하기 힘들면 같이 하십시오. 독서 모임 활동을 권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읽어주기를 실천하십시오. 손주들에게 자식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를 하십시오. 그림책에는 그림이 있어 듣는 이가 덜 지루합니다. 이야기를 전부 외워야 하는 옛날이야기보다 부담이 적습니다. 그림책을 손에 쥐고 목소리로 읽어주십시오.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십시오. 한 인간의 독서 능력을 길러주는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