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들과 퉁
작은 발들과 퉁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7.2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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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았지만 정신 사나운 발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무도 통제를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 약이 올랐다. 신경질적으로 외투 낚아채 걸치고 슬리퍼에 급히 발을 들이밀었다. 내 미간은 찌그러질 때로 찌그러졌다. 한쪽 눈은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고 머리는 누워있었던 쪽으로 심하게 눌려 있는 상태였다.

며칠 전 이사 온 위층 벨을 눌렀다. 아래층에서 왔노라 했더니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아이들에게 몇 마디를 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문틈으로는 서너 살가량으로 보이는 남자애와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마 뒤에서 빼꼼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침, 소란 꾼은 오간 데 없는 순한 표정이다. 내 가상한 몰골에 모든 상황을 눈치챈 아이들 엄마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죄인이라도 된 양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그녀 모습에 화가 좀 삭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올라온 이유에 대해선 분명히 말해 두고 싶었다. 팔짱을 낀 채 말에 날을 세웠다. 이른 아침부터 뛰면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조용히 해줄 것을 나무라듯 당부했다. 아이들 기상 시간이 너무 이른 탓에 이런 일이 생겼다며 조심하겠다고 했다. 선처를 바라는 애절한 표정을 보니 전의에 가득 찼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위층 이웃과 첫 대면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눈망울이 서글서글하고 순박하게 생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푸념 섞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용은 7년 전 이곳에 일곱 살 남자아이가 이사 와, 우리 집 천장을 종횡무진 누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진이 나는 듯했고, 별스러운 아이가 중학생이 돼서야 평온을 찾을 수 있었는데, 또다시 위층에 어린아이들이 이사를 왔다는 내 불운한 이야기였다. 지지리 운도 없는 상황을 하소연했고 그녀도 나도 울상이 됐다.

그 후 작은 발들은 아침을 조심스레 맞았고 요란하게 뛸 때는 엄마의 호통 소리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벼락같은 소리가 우리 집까지 내리쳤다. 그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공동생활에 대해 한마디 한 것뿐 이었는데, 좀 참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만 잡게 생겼으니 말이다. 말이 통할 나이도 아니고 아이들 기만 죽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첫 대면이 후회가 돼 아무리 시끄럽게 뛰어도 올라가 주의를 준 적이 없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했는데 위층에 산 다 길래 그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불쾌한 민낯을 보인 나를 외면할 수도 있었으련만 단박에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시끄럽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라고 얼굴에 써놓고 아이들이 조심해야 할 시간대를 물어왔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만 피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곁에선 통제 불능 두 꼬마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채근에 멀뚱 거리며 인사를 했다. 피할 곳도 없는 곳에 꼼짝없이 범인을 몰아 논 기분이었다. 오호라! 몸을 낮춰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천진난만한 작은 발, 난동꾼들은 뻘쭘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 눈망울을 들여다보니 마음이 녹았다. 본능이 앞설 나이에 무슨 말이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들 엄마가 너무 미안해하지 않길 바라며, 이 나이에는 엄마도 대책이 없겠다는 말을 하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쩌겠는가. 작은 인내심이나마 발휘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뒷짐 지듯 서 있는 아이들 엄마 등에 업혀있는 꼬물꼬물한 아기를 보았을 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셋이었다. 좀 있으면 걷고 뛸 본새였다. 셋이서 뛰는 상상을 하니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은 아이 생일이라며 맛은 없지만 드셔보라고 약식을 들고 내려왔다. 생일 떡을 그냥 받아먹자니 멋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고마워서 어째요 했더니, 맛은 없다’는 말로 고마움을 무마시켰다. 그녀는 정직했고 떡 맛은 둘째치고 마음 씀씀이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뻤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 다툼과 분쟁이 큰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하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오름을 견딜 수가 없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 고충을 모른다.

그렇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배려하다 보면 오해는 이해로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층의 소음을 참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이들의 엄마는 마주치기만 하면 서둘러 우리 집 걱정을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며 아래층에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맘씨 고운 그녀를 생각하면,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내가 좀 참자 하고 이해를 하게 됐다. 나도 엄마가 아닌가. 서로 마음을 헤아려 주니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사죄하듯 고개를 조아리는 그녀와 ‘아래층 아줌마’다 하며, 아이들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딱히 반가울 것 같지 않은데 아이들은 낯이 익다는 이유만으로도 반가운 모양이다. 그런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선물같이 마음에 온기가 든다.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벽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웃이다. 그런 아이들이 고맙다.

건강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칸칸이 모여 사는 이곳의 특성상 주의가 필요할 뿐이다. 내가 참아야 할 시간이 많겠지만 엄마의 호된 꾸지람에 마음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묶인 발들이 걱정스럽다. 순간순간 마음도 묶일 테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의 작은 발소리가 천정을 울리면 ‘씩씩하게 잘 크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도 세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 치고 소음은 퉁 치고 지내기로 했다.

글 김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