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항아리
소금 항아리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7.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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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따갑게 내리쬔다. 과일 야채들이 지천인 풍요의 계절이다. 더위에 집 나간 입맛 챙기려면 신선한 과일 야채들이 최고다. 마트에 갔더니 커다란 봉지에 신선하게 담긴 오이지용 오이들이 자꾸만 나를 유혹한다. ‘저걸 담가? 말어?’

결국, 오이지를 담았다. 오래전 영흥도 바닷가에서 시루떡처럼 납작한 돌을 주워 깨끗이 씻어 말려두었다. 오이지 담글 때 쓰려고 두었던 것인데 매년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오이가 항아리에서 삐져나가지 못하게 돌로 잘 눌러 놓았다. 며칠 후 잘 익었는지 들여다보는데 오이 몇 개가 둥둥 떠 있다. 분명 뜨지 못하게 무거운 돌로 꼭꼭 눌러놓았는데, 소금이 부족했나 보다. 몇 년 전에 사 놓은 소금이 다 쓰고 없어서 살짝 덜 넣었더니 결국 일을 냈다. 다시 사다가 항아리에 부어 간수를 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깜빡 잊어버렸다. 굵은 소금을 포대로 사다가 놓고 간수를 빼고 먹어야 오래 쓰고 몸에도 유용하다. 부랴부랴 마트로 향했다.

카트를 끌고 소금이 쌓여있는 장소로 향했다. 잔뜩 쌓여있던 소금 더미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평소 2만 원 미만이던 소금값이 배 이상 올라 그 가격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단 급한 마음에 한 포대 싣고 이것저것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방송에서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얼핏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음식에 대부분 소금이 없으면 맛을 내기도 어렵고 부패를 방지하는데 소금만 한 것이 또 없는데…. 그런 생각이 미치자 ‘이놈의 후쿠시마 방사선 오염수’ 욕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식품업, 제과 제빵업, 대기업, 가맹점 식당 등이 앞을 다투어 소금 사재기로 소금값이 금값되어가고 있다.

소금은 86종의 미네랄 성분으로 인체 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신의 선물이다. 우리 몸은 0.9%의 염분에 의해 기초적 면역시스템을 작동한다. 병이 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몸에 0.9%의 염분이 모자란다는 신호이다, 또한 맛을 내는 가장 기초 양념이며 식품의 부패를 막아주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거나 김장할 때도 대량의 소금이 필요하다. 된장은 콩으로 만든 단백질 영양덩어리이다. 된장에 소금이 부족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 구더기들이 바글거린다. 부패한 된장이 세균 덩어리만 키우는 꼴이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그 바닷물로 만든 소금, 우리가 핵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구의 종말이 너무 가까이 스며들고 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지구촌 곳곳이 기후. 환경오염 외에도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다. 거기에 이번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사건은 기름을 붓는 꼴이 되는 실정이다.

사람이 직접 먹고 마시는 일과 관련된 가장 기본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일본 환경단체들과 후쿠시마 어민들조차도 반대 시위가 만연한데 함께 사멸하자는 건지. 핵 오염수를 보관하는 비용을 아끼려고 바다에 흘려보내어 바다가 오염되면 일부 국가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구 전체의 파괴를 재촉하는 일인 것을 설마 모를까? 바다만 그리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 사는 동식물들 모두가 기형화되고, 바다에 기대어 생존하는 실업자가 늘어가고, 이런 일들이 돌고 돌아 인류가 세계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척 넘길 수 있는 사안일까.

결국, 모두가 예견했던 것처럼 IAEA 보고서는 ‘바다에 방류해도 큰 이상이 없음’을 표명했다. 세계 언론들도 앞다투어 발 빠른 일본 로비스트들의 활동 결과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힘’ 앞에서는 인류도, 미래도, 진실도, 평판도 안하무인이 되고 만다. 결론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방사선 오염수는 날짜만 정해지면 태평양에 방류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국민들이 화가 나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해서 그 나팔수가 되는 것이 어이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과 주변 나라들인데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쌍수를 들어 핵 오염수 방류 환영을 표명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정치는 100년을 내다보는 것이라는데, 눈앞의 것에 연연하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그런 정치를 그 누가 지지할지 유권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이 나라가 어찌 이룩한 민주주의던가. 뉴스를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이 현실을 어디에 하소연할까? 날씨는 더워지는데 이런저런 소식에 더욱 열기만 솟아오른다.

마트에서 사 온 소금을 한 바가지 퍼서 오이지 항아리 안에 골고루 뿌려 놓았다. 자루에 남은 것은 소금 항아리에 쏟아 놓았다. 간수가 빠지려면 일 년은 족히 걸릴 텐데. 사는 데까지는 살아야겠으니 나도 두어 포대 더 사다가 부어놔야 하나? 장독대에 고추장, 된장, 간장 항아리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머잖아 저 항아리들도 유물처럼 굴러다니는 오브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허전, 허무, 허탈이 한꺼번에 우르르 밀려 들어와 나를 어지럽힌다.

글 김순례 

<마음속 풍경> 외 동인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