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그림책 읽기, 이미지 읽기”
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그림책 읽기, 이미지 읽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7.02 08:4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기계와 마주합니다. 키오스크라는 전자 메뉴판을 들여다봅니다. 스크린 안에 있는 글자는 모르는 글자가 아님에도 당황합니다. 전자 기계와 소통이 어렵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읽기 능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은행도 마트도 공원에도 우리 주변에 즐비한 전자 기계의 언어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들 기계는 단순히 글자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디자인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각종 도형, 여러 색깔, 반짝임, 움직임 등 글자는 다양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미지로 둘러싸인각종 그래프, 인터넷 주문 앱, 휴대전화의 이모티콘, 자막, 동영상까지 시각 언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시각 언어를 익히는 데 적합한 매체입니다. 그림책은 그림도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그림이 이야기의 분위기와 의미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 언어입니다. 그림책을 읽는 것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 읽기’도 함께 해야 합니다.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의 그림을 읽어야 합니다. 그림책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키오스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시각 언어로 숙제합니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과제를 글과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어떤 슬라이드에서는 글자를 강조하고 어떤 슬라이드에서는 그림만 넣기도 합니다. 색깔, 크기, 위치 등을 고려합니다. 단번에 알아보면 안 돼서 서서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이 그림책과 닮았습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여러 형태로 관계합니다. 글과 그림이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 그림이 글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도 하고, 과장되게 보이고도 하고, 일부러 알아볼 수 어렵게 그리기도 합니다. 글은 사건의 진행을 맡고 그림이 시간과 공간의 배경을 말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단서를 글은 전혀 말하지 않고 그림으로만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글과 그림이 서로 대립하듯 다른 내용을 말하는데 묘하게 얽혀 스토리가 완성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글이 사라지거나 그림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다양하게 관계하여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림책은 이미지를 읽어야 하는 현대인의 의사소통 능력에 도움을 줍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자에게 표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야기입니다. 글과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글과 그림은 효과적으로 관계하여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그림책도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그런 책에도 주제는 있습니다.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그림책에 담습니다. 글이 먼저든 그림이 먼저든 글과 그림을 뗄 수 없는 것이 그림책입니다. 앞으로는 글을 모르는 문맹률보다 이미지를 읽을 줄 모르는 문맹률이 더 심각해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림책을 보세요. 그림책은 짧아서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혼자가 힘들면 여럿이 함께 보는 경험도 해보십시오. 서로의 이해가 더해지고 더해집니다. 파워포인트로 만드는 과제에도 도움을 줍니다. 디지털 시대에 눈이 밝아집니다. 미세먼지 알림판이 ‘좋음’으로 반짝거립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