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 바다에 갈 수 있을까
손자와 함께 바다에 갈 수 있을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6.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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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네가 태어나 두 돌이 되어가는데 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너를 할아버지가 안아주기는커녕, 아직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구나. 손바닥만 한 전화기를 통해 너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다였지. 그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중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다니, 화면으로만 보던 손주가 온다니, 할아버지는 기대에 들떠 손주와 어떤 추억을 만들지 궁리 중이다.

우선 할아버지 나라, 대한민국 지도를 펼치고 우리 삼대가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서해안부터 남해까지 형광펜으로 그어본다. 제일 먼저 서천 갯벌체험을 하려 한다. 네 엄마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지. 서천 갯벌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2021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으로 해안선을 따라 72.5㎞나 되는 긴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갯벌을 대부분 뻘 갯벌을 생각하는데 그곳은 모래 갯벌, 펄 갯벌, 혼합갯벌, 자갈 갯벌 등으로 형성되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좋다. 그곳에서 하루를 쉬고 남해로 갈까 한다.

남해,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곳이지. 그뿐 아니다. 남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일곱 척의 거북선으로 까마귀 떼처럼 몰려오는 왜구 함선을 궤멸시킨 위대한 역사가 있다. 이순신해로 명명돼도 좋을 그곳에서 며칠 머물며 넓고 길게 펼쳐진 해변에서 너희와 함께 모래집과 성을 쌓고 싶다. 또 네가 좋아한다는 조개를 갯벌에서 캐 삶아 먹을 것이다. 네가 몸으로 흠뻑 할아버지 나라를 오래, 오래 간직하도록 해 주고 싶다.

그런데 아가야! 할아버지 계획은 안타깝게 먼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기대와 설렘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해일로 파괴되어 나온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한 핵 오염수를 일본 정부가 칠월 중에 바다에 흘려버리겠다고 한다. 너희가 한국에 온다는 팔월 하순쯤이면 일본에서 버린 핵 오염수가 매일 파도를 타고 우리나라 해안까지 밀려올 텐데, 근심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 일본에서 과학의 힘을 빌려 핵 오염수를 모두 정화한다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는 너를 해안 모래사장에서 뛰어놀게 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방사능은 우리 인체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물질이라는 건 사실이다. 방사능을 연구한 마리 퀴리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었고 연구 노트는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방사능이 방출되어 밀봉되어 있단다. 일본 제국주의를 몰락시킨 히로시마 원폭 피해는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과학이 발달했다지만 원전 항아리에서 새어 나온 핵 방사능을 완전히 처리한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

그런데 핵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했을 때 먼저 피해를 보게 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이해한다면서 오염수가 충분히 희석되어 바닷물을 마시거나 해수욕을 해도 괜찮다며 오염수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인체에 유해하다는 괴담을 퍼트리지 말라고 한다. 한편,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해군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에 대비해 매일 1천만 원 정도 예산을 들여 비상 식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국민들도 일본 정부가 오염수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의 걱정과 불안이 과한 것일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핵 오염수를 염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이런 여러 상황을 접하면서 할아버지는 우리 아가와 우리나라 해안을 둘러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할아버지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아끼고 사랑하는 너에게 솜털만큼이라도 해가 되는 환경을 접하게 하고 싶지 않다.

아가야! 할아버지는 두렵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만약, 방류수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 판명되면 이제 바다는 네가 커서 한국을 찾았을 때 해수욕을 하고 모래찜질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밀물과 썰물, 조류에 의해 핵 오염수는 갯벌을 삼킬 것이고, 모래알에 축척 된 오염물질은 우리 몸으로 타고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림처럼 파도가 푸르게 넘실대는 은빛 모래 해변은 관상용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옛날, 한국에는 조개를 캐고 모래찜질을 할 수 있던 갯벌과 해변이 있었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청정바다였다.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해안 모래밭에 들어가면 안 된다.”

마치 공룡이 지구에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바로 전 세대 이야기를 오랜 옛날 얘기하듯 하게 될까 봐 할아버지는 두렵다. 우리는 선조에게서 받은 위대한 자연유산을 제대로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안타깝다. 다음번에 올 때는 할아버지랑 이번에 미룬 여행을 함께 하기를 소망해 본다.

글 최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