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고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고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6.28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극의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206: 사라지지 않는>은 희생된 유해들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발굴단’이라 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제목에 있는 숫자 206은 인간을 구성하는 뼈의 개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해방 이후 치열했던 좌우익 이념 대립은 4.3항쟁, 여순항쟁으로 그 골이 더 깊어졌다. 결국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군과 경찰 그리고 좌익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75만에서 100만명까지 희생되었다. 역사의 비극이다. 정전 7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여 실종자로 있는 분들이 허다하다. 허철녕 감독은 밀양송전탑 투쟁 현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어르신들 구술을 받다가 한국전쟁시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김말해 할머니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여동생도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 및 우리시대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기록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덕분에 <206: 사라지지 않는> 제작과정에 참여하여 써치를 하면서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는데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내 이름 석자가 자막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새삼 그때 했던 작업이 떠오르며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힘들었던 생각이 떠 올랐다. 오늘도 역시나 가슴이 너무 아파 꾹꾹 눌러가면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보는 내가 이런데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은 어찌할거나.

영화 소개를 보면, 

“1960년 4.19 혁명 이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노력으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살 현장 실태조사에 돌입했지만, 1년 뒤인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정부는 한국전쟁유족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유해 발굴을 중단시켰다. 역사 아래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40여 년 만에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그마저도 5년 만에 해체되고 만다. 그렇게 2014년, ‘시민 발굴단‘이 결성되었다. 시민발굴단의 상당수는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직 조사관 출신이었으며 대부분 위원회에서 일하던 시절, 진실 규명을 다 하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었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기도 했다고. 여기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 등이 자발적으로 합류한 시민발굴단은 2023년 현재까지도 유해발굴 진행을 하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 묵묵히 유해발굴을 이어간 그들의 노력으로 지난 2020년에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출범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2023년 올해에도 최소 8곳에 이르는 학살터 발굴을 앞두고 있는 등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은 국가 주도로 감춰진 역사를 다시금 재조명하는 시의적절한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먼저 인류학자인 박선주 교수는 일본 홋카이도에 묻힌 한국인 징용 피해 유해발굴을 시작으로 국군 전사자, 안중근 의사, 태평양 전쟁에 이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등을 진행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대한민국에서 유해발굴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만큼 그가 없이는 유해발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정도다. 70세의 나이를 넘긴 그는 명예퇴직을 한 지금도 현장 발굴과 유해 감식 등 전 과정을 오가는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어 시민 발굴단의 좋은 귀감이 되기도 한다. 노용석 교수, 안경호 팀장, 홍수정 실장, 추모연대 임영순 사무처장, 김나경과 김소현, 한국전쟁유족회 아산지회장 김장호와 부회장 김광욱 두 사람 모두 7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발굴단원들과 유해 노출을 위해 동고동락하는 그 열정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발굴 전문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대학생 등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결성된 '시민 발굴단'이 학살 직후 불에 태워지고, 아무렇게나 버려져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참담한 현장 속에 숨죽인 유해를 묵묵히 수습하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유해를 수습한 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약식 제례를 지내고 수습한 유해를 감식을 통해 가족의 품에 돌려주기까지, 유해 발굴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시민 발굴단의 모습에서 감동의 파장이 마음 속에 퍼진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후퇴한 반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역사적 상흔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명하고 국가권력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껏 역사 속에서 공권력에 의한 학살사건이 너무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과오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에 시민발굴단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다. 고맙고 부끄러운 일이다.

박선주 교수는 발굴된 유해 및 유물 감식을 통해 유해의 최소개체수부터 성별, 직업, 연령, 사망 원인, 기타 여러 가지 특징들을 밝혀낸다. 간혹 발굴된 유해의 주변에 인감도장이나 이름이 적힌 벨트, 신발 등이 출토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신원을 추적해 가족들을 모시고 DNA 감식을 의뢰하기도 한다. 감식까지 마무리되면 안치식을 진행한다. 안치식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세 종교가 각자 추도 의식을 가진 후 안치소로 옮긴다. 아직까지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를 공식적으로 안치하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로 유해를 안치하고 있지만 모든 유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연구실, 임시 컨테이너, 박물관 등등 유해는 전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며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전 산내 골령골 인근에 2025년 공식적으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모시는 위령 시설이 준공될 예정이라 하니 하루빨리 준공되기를 빌어본다.

내가 써치한 설화산 촬영분에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설화산 매장지'는 유해의 80% 이상이 여성이고 12세 이하 어린아이의 유해만 60구 정도 발굴되었는데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영화 속 마지막 현장이다. 더군다나 거기서 출토된 유해 및 유물들 중 비녀와 어린아이 장난감 및 유골을 나란히 정리해 둔 장면에서는 아우슈비츠 비극의 현장과 오버랩되면서 가슴뻐근한 아픔이 지속되었다. 정말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전쟁의 참상이 오래토록 우리를 아프게 한다.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은 제주4.3항쟁,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국가가 은폐하려 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그 진실을 찾아 나선 시민발굴단의 숭고한 여정에 대한 기록을 담은 영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과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중 대상에게 수여되는 '비프메세나'상 수상을 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6회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러프컷 내비게이팅 선정,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부문 등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 및 수상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제13회 타이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44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초청되는 등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그리고 '시민 발굴단의 숭고한 정신'이 비단 한국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수많은 영령들이 해원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전한 허철녕 감독의 간절한 말처럼 그만의 장기인 따뜻한 시선은 6월,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 나레이션이 오래토록 뇌리에 박힌다. “역사와 기억의 거대한 은유, 70년 전 잃어버린 시간에 보내는 위로와 추모 조각난 기억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글 솔향 유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