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민주화운동의 성지 천안역 ‘민주광장’
천안민주화운동의 성지 천안역 ‘민주광장’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4.1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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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지역사 산책노트 07]

매번 산책길의 출발점으로서 역할을 하는 천안역은 과연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고속버스 터미널이 외곽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천안역과 터미널이 매우 인접해 있어서 당연히 유동인구가 많았고, 더욱이 그때만 해도 조금만 걸어도 되는 거리에 천안시청과 천원군청이 있었으니 천안역은 명실공히 천안시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천안역은 1905년에 경부선 철로의 개통과 함께 건립되었고 근대도시로서 천안이 발전해나가는 데에 거의 언제나 중심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썰렁해진 원도심 분위기 속에 역사건물 하나 변변하게 생긴 것 없이 천안역은 옛날의 위용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천안역 동부광장도 그게 광장인가? 사람 모이는 장소이기는커녕 덩그마니 주차장이 들어서있을 뿐이다.

하여간 갑자기 짬이 나서 천안역에 대해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와중에 아주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천안시청 홈페이지의 보도자료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4월13일자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문 ‘천안역사 디자인’ 공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우연히 읽어보게 되었는데, 아 글쎄 현재 천안시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천안역사 증개축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 디자인 중간보고회까지 개최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지역사를 공부한다는 내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더구나 사업비의 규모도 800억원에 달한다 하니 여러 모로 보아 천안시 지역사의 측면에서 결코 작지 않은 역사적 사건이 될 만함직 아니한가 이 말이다.

물론 누가 알아주는 유명인도 아닌, 한낱 아마추어에 불과한 한 지역사연구자에게 누가 그런 소식을 화들짝거리며 일부러 알려주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대대적인 큰 공사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공공연한 소식으로 알려져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분명 천안시에서는 대대적으로 디자인 발표회를 널리 알렸을 것이 분명하고, 초대받아 함께 검토해보는 시민들의 참여 시간도 이뤄졌을 것이겠거니 하는 짐작도 생긴다. 아마도 천안시 소식에 귀가 어두운 나 같은 시민만이 그 소식을 모르고 있었겠지. 어련히 알아서 성대하게 행사가 치뤄졌을까. 뭐 그런 마음으로 뒷북을 치듯이 나는 나대로 천안역에 대해서 다시금 열심히 알아보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천안의 민주화운동사를 간직한 천안역 동부광장
천안의 민주화운동사를 간직한 천안역 동부광장

천안역이 1905년에 건축되었다는 사실은 곧바로 일제식민지 시기의 천안시를 떠올려보게 한다. 이때의 풍경을 그려보는 데에는 1933년에 신문에 연재되고 곧이어 단행본으로 출판된 장편소설 <고향>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돼줄 것같다. 아산에서 출생했으나 세살적에 천안으로 이사와 성장하면서 급기야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한 사람이 된 민촌 이기영의 작품이다. 일제식민지 시기의 천안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나의 관점에서는 1960년 4.19 혁명 당시의 천안역이 가장 인상깊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도심지에서는 학생시위가 연일 이뤄지고 있던 혁명 시기였기 때문에 천안만 유독 유별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서 2021년 발행한 <충남민주화운동사>라는 책에서 볼 것 같으면 이런 내용이 주목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한 다음 날인 27일에는 천안공고와 천안북중 학생 1백여명이 오전 10시 천안역 광장에 모여 가두시위를 벌였다. 천안고와 계광중 학생 2백여명도 계광중에서 출발하여 가두시위를 벌였다. 두 시위대는 천안 읍내에서 합류하여 “이승만의 사퇴를 환영한다”, “민주주의 주권을 찾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아마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가두시위가 이전부터 전개되고 있었을 터이나 충남 전체를 다루는 부분에서의 서술이라서 아주 간략히 이승만 하야 다음날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개연성 있게 상상해보자면 천안역을 중심으로 하여 시내 전역의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연일 벌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그 다음날의 풍경을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아주 귀중하고 각별하다.

28일에는 재경천안학우회와 학도호국단 주최로 천안역 광장에서 8개 중·고등학생과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19 혁명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추모집회를 가졌다. 특히 4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의 발포로 숨진 김영기를 추모하였다.

1960년 4월 28일에는 천안역 광장에 1만명이 넘는 인파가 혁명 성공을 자축하고 이어서 장엄한 열사 추모집회를 했다니 어떤가?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가?

저 날에는 김영기 열사만이 추모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 윤지섭 열사도 함께 추모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곧 있으면 다가올 2023년 4월 19일 오후 3시에는 충남학생교육문화원에서 김영기, 윤지섭 열사를 포함한 충남 출신 열사 11명의 합동 추모행사가 개최된다.

천안역 광장이 간직하고 있는 천안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비단 4.19혁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후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격동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천안역 광장에 대해 ‘민주광장’이란 이름을 헌정하고 혁명과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제대로 ‘민주광장’을 복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