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근대사의 출발점 세성산 앞에서
천안근대사의 출발점 세성산 앞에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3.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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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지역사 산책노트 01] 

3월의 마지막 주로 접어들며 아직은 서늘한 기운을 품은 봄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동시에 따사로운 봄 햇살의 싱그러움을 즐길 만한 시절이 왔다. 지난 3월 20일에서야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권고사항으로 풀리면서 4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방역체제도 어지간히 해제수준으로 낮춰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답답한 마스크 3년 끝에 드디어 해방, 이제는 제법 마음 놓고 여행을 다닐 법도 하다.

여행을 생각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 또는 도시를 떠나 어떤 경계를 넘어 머나먼 장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언제부터 우리는 먼 곳으로의 여행을 여행의 전형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내가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싶은 천안이라는 도시도 산책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결코 작은 공간이 아니다. 천안의 역사유적만 찾아다녀도 산책을 넘어 여행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다. 마스크를 벗고 역사이야기가 깃들어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마당에 천안에서 다시 천안을 여행지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천안지역사를 공부하며 줄곧 느껴온 바이지만, 천안은 대단히 풍부한 역사콘텐츠의 도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독립운동의 도시라는 성격 이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역사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말 그대로 다채로운 역사의 도시다. 하지만 천안시민들에게 천안지역사는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학술세계로서의 역사에 갇혀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책하며 설렁설렁 이야기를 풀어가듯이 천안지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쓰는 취지가 거기에 있다.

천안지역사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나는 세성산에서부터 실마리를 잡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그곳이 천안근대사의 출발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대사란 현재를 규정하는 일정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 그 현재성의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올라가 그것의 전개과정을 통해 살펴보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근대사는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시작되어 흘러왔는가를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세성산은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장소다. 지금 우리의 역사가 출발한 곳이다.

세성산에 버스 타고 가보자

현재 천안시청이 자리잡고 있는 불당동 일대를 신도심이라고 한다면, 천안역 동부광장에서 더 동쪽으로 천안의 진산인 태조산 앞자락에 이르기까지의 구역이 구도심이다. 이 구도심은 예전부터 향토사 연구자들이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오룡쟁주(五龍爭珠)의 땅이라고 신비로운 의미를 부여하던 곳이다. 오룡쟁주는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전진기지 신도시 천안을 건설할 때 제시됐던 풍수지리적 표현이다.

구도심의 북쪽과 남쪽을 관통하는 시내버스 노선이 매우 중요한 구도심 교통로인데 이 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들이 대단히 많다. 그 중에서 400번 버스가 중요하다. 이 버스는 구도심 북쪽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구도심 남쪽 천안삼거리를 거쳐서 목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지나 아우내만세운동의 고장 병천까지 운행한다. 아닌 게 아니라 400번 버스는 천안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기행 노선을 늘 질주하며 오간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세성산에 당도하려면, 특히 자가용의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자면, 400번 버스를 타고 독립기념관과 병천 사이에 있는 북면 연춘리 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한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연춘리까지는 버스로 약 50분 정도 걸린다. 정류장에서 내려서 둘러보면 연춘리의 자그마한 상가 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상가 거리는 아주 작기 때문에 정류장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서 고개를 돌려 한쪽 끝과 다른쪽 끝을 다 알아볼 수 있다.

바로 그 정류장에서 방금 버스가 떠난 방향, 그러니까 병천 방면으로 작은 다리를 만날 때까지 걸어가보자. 이 다리 아래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은 병천천이다. 북면의 북쪽 끝 우뚝한 산이 위례산인데 거기서 발원한 병천천은 계곡을 형성하며 길게길게 흘러내려온다. 위례산은 백제 첫 도읍지로 전해내려오는 위례산성을 품고 있다. 이 병천천 상류를 따라 거슬러올라가는 길은 봄날 벚꽃의 향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도 벌써 벚꽃이 많이 봉우리를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 잠깐! 세성산 가는 길은 병천천 상류 방향이 아니다. 하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하류쪽 남쪽으로 인도를 따라 5분 정도 조금만 더 걸어가면 또 하나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의 이름은 복구정교다. 복구정은 원래 정자의 이름인데 동시에 이곳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휴업중이기는 하지만 유명한 맛집 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복구정교에 왔으면 이제 다 온 것이다. 세성산 앞에 당도한 것이다.

복구정교에서 바라본 세성산
복구정교에서 바라본 세성산

복구정교 아래에서 위례산에서 흘러온 병천천과 성거산에서 흘러온 산방천이 합류한다. 바로 앞 남쪽에서 이 합류점을 위엄있게 굽어보고 있는 산이 바로 세성산이다. 1894년 가을 목천, 천안, 전의에서 모여든 동학농민군들이 저 산 능선을 온통 오색깃발로 줄지어 장엄하게 펼쳐놓았던 저 산이 바로 그 세성산이다. 한국근대사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출발점으로 하여 흘러왔으니, 동학농민혁명 세성산 전투가 벌어졌던 바로 이곳이 천안근대사의 출발점인 것이다.

세성산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성산의 전면 풍경을 먼저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안내해 보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천안지역사 이야기를 풀어가도 되겠다.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