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면 되잖아
검색하면 되잖아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3.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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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몇 가지 꼽으라면 단연코 자식 키우는 일이고 서너 번째쯤이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내 손이 닿기만 해도 바이러스에 걸리고 심지어 가만히 놔둬도 스스로 망가지니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성미가 사나워진다. 그러니 그깟 기계에 대고 눈 흘기기 일쑤다.

몇 년 전 아이들 키우며 부지런히 나 하고 싶은 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이웃의 소개로 무료 웹콘텐츠 전문가 교육이 있다는 운명적 정보를 입수했고 냉큼 원서를 냈다. 인터넷 쇼핑도 성가셔서 하지 않던 주제에 ‘웹콘텐츠 전문가’라는 어마어마하게 들리지만, 정확히 그 뜻을 모르겠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극도도 싫어하는 것과 마주하는 첫 시도. 지레 피곤하지만, 한편으론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극복해보자는 설렘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컷 배웠더니 설렘은 오간데 없고 오히려 더 막연해졌다. 배울수록 모르는 게 툭툭 튀어나와서 그 수많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길을 잃기도 했다.

포토샵을 하나씩 배우는 과정은 피로했지만,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놀라웠고 신기해서 오늘은 뭘 배울까 늘 기대했다. 중간중간 블로그 운영전략과 광고 홍보를 위한 문구를 만들며 팀을 이뤄 상세페이지도 완성해봤다. 수료를 며칠 남겨두고 그동안 배웠던 모든 기술을 꺼내어 마지막 작품이 될 포스터를 제작하는데 늘 사용하던 도구 몇 개만 갖고 끙끙 앓았다. 그런데도 포스터가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자 뭐든 배우면 인생 허투루 보낸 시간이란 없겠구나 싶어 스스로 기특해했다.

두려움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이걸 배워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운 기술을 사용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늘 그랬듯이 취미로만 남고 그냥 여기서 끝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배웠더니 외려 더 막연해졌지만 나도 알지 못하는, 혹은 내가 짐작하지 못한 내 가능성을 발견했다. 쉰한 살에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수료 후 교육 시설에서 제안한 재택근무를 패기 있게 받아들였다.

결혼 이후 직장을 가져 본 적 없던 나로선 진정 고마운 마음으로, 나를 선택해준 기관장에게 마음속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품고 일을 시작했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컴퓨터를 깡통 취급하던 컴맹이 2년을 그렇게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았다.

그때부터 생긴 버릇이 궁금하면 즉각적으로 검색하는 일이다. 음식점, 옷가게, 여행 정보, 시청 블로그. 원하기만 하면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그곳. 필요한 정보만 찾고 그 넓은 바다에서 바로 헤엄쳐 나오면 되겠지만 여기저기 한눈을 팔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빈둥거리게 된다. 얼마 전 어느 온라인 카페에 우연히 들렀다가 ‘미소를 잃지 않는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라는 질문을 읽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한 일은 ‘글쎄 오늘 난 무슨 일로 미소를 지었지?’ 묻기에 앞서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미소 짓게 하는 일’이라는 키워드를 찾아 남들은 대체 언제 미소를 짓나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고유한 질문에도 무턱대고 검색부터 하고 보는 반응에 놀라 잠깐 컴퓨터 자판에서 손을 떼고 멈칫했다.

깊은 성찰은 사라지고 즉각적인 대답을 찾는 버릇이 언제 적부터 생긴 습관이었나. 빠르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굳이 ‘생각’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나. 밀도 있게 고민하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귀찮아서 잠깐 남의 글을 내 것인 양 각색하는 일도 온라인 세상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어쩌자고 ‘생각’ 대신 ‘검색’ 하느라 씨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묻는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정확하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테고, 컴퓨터로 할 수 없는 일을 몇 가지나 하고 사는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어 본다. 그게 눈에도 좋을 테니.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의 ‘미소를 잃지 않는 방법’을 진정 알고 싶다.

글 우영미 (인문학공간 산새 주말글방 ‘말술’ 운영)